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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해어화’, 사랑 지상주의에 침몰한 여성들의 우정[블로그와] 박정환의 유레카
박정환 | 승인 2016.04.11 12:32

영화 <아마데우스>만 보면 모차르트에게 있어 살리에리는 ‘운명의 라이벌’로 둔갑된다. 푸시킨의 ‘덧칠’에 의해 그동안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예술적인 천재성을 질투한 나머지 모차르트의 죽음을 앞당긴 교활한 작곡가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살리에리는 푸시킨에 의해 대중에게 각인된 협작꾼, 질투가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모차르트와 함께 ‘오필리아의 건강을 위하여’라는 칸타타를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남편 모차르트가 죽은 뒤 그의 아내는 모차르트의 아들을 살리에리가 가르치게 만들었다. 푸시킨의 덧칠 마냥 실제로 모차르트가 살리에리와 라이벌이었다면 그의 아내가 남편의 명줄을 앞당긴 라이벌에게 아들을 맡길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푸시킨에 의해 윤색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로 되돌아가 본다면,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질투’한 나머지 그의 죽음을 앞당기게 된다. 질투가 라이벌의 명줄을 재촉한 셈이다.

영화 <해어화> 스틸 이미지

영화 <해어화>는 푸시킨의 설정, 그러니까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시기하고 질투한 동인을 ‘사랑’으로 바꿔놓았다고 보면 된다. 1940년대 경성의 제일 가는 기생학교, 대성권번에서 둘도 없는 친구인 소율(한효주 분)과 연희(천우희 분)의 우정에 금이 가는 건 소율이 사랑하던 남자가 변심하는 바람에 일어난다. 세상 끝까지 소율만을 사랑할 것 같았던 소율의 연인 윤우(유연석 분)가 연희와 친해지고 급기야는 연희와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바람에 소율과 윤우의 애정 전선은 금이 가고 만다.

그렇다. 소율이 연희의 음악적인 재능을 질투해서 연희와의 우정이 깨지는 게 아니라 소율이 사랑하던 남자가 둘도 없는 친구와 사랑에 빠지기 때문에 연희와의 우정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한다. 삼각관계를 이루다가 두 사람이 연인으로 발전하면 한 사람은 사랑에서 소외된다. 우정보다 사랑이 소중하다는 걸 보여주는 이 영화는 사랑 지상주의에 침몰한 두 절친 여성의 ‘우정 몰락기’를 보여준다.

영화 <해어화> 스틸 이미지

그렇다면 소율과 연희가 얼마나 끈끈한 우정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좀 더 치밀하게 보여주었어야 연희를 향한 소율의 배신이 대비효과로 극명하게 다가올 수 있었을 텐데, 영화는 소율과 연희의 우정이 얼마나 견고한가를 보여주는 데는 등한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버지가 대성권번으로 팔아넘긴 연희에게 소율이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것, 대성권번에서 소율과 연희가 졸업하던 날에 일패 기생을 뜻하는 붉은 양산을 두 사람이 받고는 함께 기뻐하는 시퀀스 이상으로 소율과 연희의 우정을 세밀하게 묘사했어야 후에 이어질 사랑의 비극이 대비효과로 극명하게 다가올 수 있었겠지만, 영화는 소율과 연희의 우정을 치밀하게 직조하지 않는다.

영화 <해어화> 스틸 이미지

<해어화>가 사랑 지상주의에 천착한다는 것은 여성의 우정이 사랑 앞에서는 얕을 수밖에 없다는 걸 관객에게 은연중에 내비칠 수 있다는 위험을 내포한다. 남자들의 우정은 끝까지 갈 수 있는 반면에 여성의 우정은 사랑 앞에서는 친구도 연적이 될 수 있다는, 여성의 우정이 얄팍하다는 걸 내포하고 있어서 이 영화는 ‘사랑 지상주의’가 얼마만큼 위험한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 역할을 담당한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박정환  js7kei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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