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추위가 깊은 산중에 찾아왔습니다. 나무하러 가는 길에 손발이 얼고 얼굴도 얼어 몸이 잔뜩 움츠러듭니다. 얼다 녹다를 되풀이하던 계곡물도 꽁꽁 얼고 산도 땅도 모두 얼었습니다.

잠깐씩 비치던 햇빛도 잿빛 하늘에 얼었습니다. 산중에 살다보면 날씨나 계절에 따라 하는 일이 결정되고 삶이 달라지기 때문에 해가 머무는 시간, 밤하늘의 별 등을 자세히 보게 됩니다. 추위가 찾아오는 겨울은 해가 짧아지면서 옵니다.

해가 짧아지면 하루가 아주 빨리 지나갑니다. 짧은 낮 시간에 겨울 준비한다고 몇 번 움직이면 날이 저물곤 합니다. 해 머무는 시간이 가장 짧은 동지가 지나면 산중에 사는 사람들은 안심을 합니다. 동지 지나고 겨울 추위는 더 매서워지지만 추위보다 더 매서운 건 해 머무는 시간이 짧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추위는 몸 움직여 나무하고 불 때면 이겨낼 수 있지만 짧은 낮시간은 우리 의지로 어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몸이 어는 것은 아궁이 불로 녹이고 따뜻하게 할 수 있지만 얼어버린 하늘과 땅은, 계곡의 물은 길어지는 햇빛만이 녹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겨울바람을 맞으며 산길을 걷다가 겨울나무에 눈길이 멈춥니다. 풍성하던 잎도 화려하던 꽃도 달콤한 열매도 모두 떨구고 앙상한 모습으로 칼바람에 맨몸으로 서있는 겨울나무는 길어지는 낮시간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겨울나무는 아슬아슬하게 겨울을 보냅니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함만 남기고 모두 버린 나무는 물기가 없어 배고픈 멧돼지가 지나가다 부딪히면 부러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겨울나무는 매서운 겨울바람을 이기기 위해선 생존에 필요한 최소함만 남겨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겨울나무에게 최소함은 겨울눈입니다. 아무리 매서운 추위가 맨몸을 몰아친다 해도 겨울나무는 다가올 따뜻한 봄에 새 생명을 피워낼 겨울눈을 비늘조각이나 잔털로 감싸고 겨울을 견디게 합니다.

겨울눈은 봄에 새순을 내는 생명의 씨앗입니다. 찬바람 몰아치는 산길에서 만난 겨울나무는 풍성한 잎, 화려한 꽃, 달콤한 열매도 겨울눈에서 시작해 겨울눈으로 끝난다는 걸 말해줍니다.

나무에게 겨울눈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캄캄한 어둠속에서도 결코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나무에게 겨울눈은 우리에게 마음일 것 같습니다. 따뜻한 마음이 살아 있어야 삶이 풍성해지고 달콤한 열매도 맺을 수 있고 해가 길어지는 봄날이 오면 새순을 피워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겨울바람이 멈추고 굵은 눈이 소복이 내리는 고요한 밤입니다. 겨울나무도 맨몸으로 겨울바람을 맞느라 분주 했을 텐데 소복이 내리는 눈과 함께 고요한 밤을 보내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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