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지난 8일 긴급 체포되고 결국 구속 수감됐다. 서울중앙지법 영장담당판사는 미네르바가 외환시장 및 국가신인도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 중대성으로 비춰 구속수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그동안 미네르바를 눈엣 가시로 여기며, 그에 대한 형사처벌 가능성을 공공연히 내비쳐왔다. 그러다 지난 12월 29일에 올린 ‘대정부 긴급 공문 발송’이라는 제목의 글이 전기통신기본법에 위배된다며 결국 긴급 체포했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남탓으로 돌리려고만 하는 정부의 속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이명박 정부는 단 한 번도 진심으로 현재의 경제위기가 자신들로 인해 증폭됐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국민들의 강만수 장관에 대한 경질 요청을 거셌지만 강만수 장관은 꿋꿋하게(?) 그 직을 고수하고 있다. 그리고 미네르바를 체포 구속하면 정부 정책 실패의 논란은 수그러들 것으로 기대했다.

▲ 1월 9일자 경향신문 4면 기사 캡처
그러나 미네르바를 붙잡은 이후 분위기는 오히려 반대로 흐르고 있다. 국민들의 ‘화’는 부메랑이 되어 정부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오히려 꺼지던 불씨에 기름을 들이부은 격이 돼버렸다. 잠잠해지던 ‘미네르바’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체포 이후 급속도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미네르바가 체포 소식은 8일 지상파 3사 메인 뉴스에서 주요 뉴스로 등장했고 다음날 주요 일간지는 ‘미네르바’에 대해 집중보도했다. 또한 네티즌들은 “주가 3000 간다는 분 왜 체포 않는지….”, “30대 백수보다 못한 강만수 장관”이라 이명박 정부를 비꼬았고, 진중권 교수는 “기는 만수 위에 뛰는 백수”라고 평했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는 “미네르바, 경제기자로 특채하겠다”는 글을 썼으며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기획재정부의 장관 옆방에 특실을 내주어 과외선생으로 모시는 것이 공익에 도움 되겠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바야흐로 이명박 정권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 다시 들춰지는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 실패 : 이명박 정부는 이번 금융위기 때 파산한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를 인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이에 대해 미네르바는 “제발 사지 마세요. 마지막 기회입니다… 제발 협상 취소하고 그 돈으로 국내 중소기업 살리기를 하거나 투자해 고용 보존이나 할 생각을 하세요”라고 강하게 비판했었다. 결국 어떻게 됐나? 리먼 브라더스는 파산했고 리먼 브라더스를 인수하려던 정부정책이 얼마나 허구였는지 만천하에 드러났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 논객미네르바는 인터넷 경제대통령으로 등극하게 된다.

미네르바가 국가 경제에 미친 영향을 낱낱이 수사하겠다는 것이 검찰의 의지다. 그러나 어쩌랴. 이를 조사하게 되면 정부가 그동안 취했던 경제정책 역시 수사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오늘자 한겨레에서는 “국가 신용등급을 결정하는 데는 정부의 정책 방향이나 경제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정책능력도 중요한 평가 요소”라며 “지난해 10월 에스앤피(미국의 신용평가회사)는 ‘한국 정부의 정책이 실패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정부 정책의 성공 여부에 따라 한국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말했다. 이에 비춰 보면 강만수 장관을 비롯한 현 정부 경제팀의 오락가락한 상황인식과 잘못된 정책 대응이 오히려 국가신인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라고 설명했다.

▲ 1월 12일자 한겨레 3면.
지난해 10월 강만수 장관은 은행장 간담회에서 “외화 자산을 빨리 처분하라”고 했고 곧바로 외환시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지난해 3월에도 “금리에 대해서는 현재 한-미 전체 금리 차가 2.75%다. 뭐든지 과유불급이고,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겠다”고 말해 물가보다 성장을 우선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자 전날 급락했던 원-달러 환율이 다시 급등하는 등 외환시장은 롤러코스트 장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급기야 무디스의 자회사인 무디스이코노미닷컴이 지난해 10월 8일 “강 장관의 가벼운 발언이 한국 금융시장의 위기를 증폭시켰다”고 보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 학벌지상주의에 대한 자성과 인터넷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갈구 : 한나라당은 미네르바의 사건을 통해 ‘사이버모욕죄’를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미네르바의 정체가 밝혀지고 국민들이 자성하고 있는 지점은 오히려 ‘학벌지상주의’였다.

▲ 1월 12일자 한겨레 5면.
오늘자 한겨레 5면을 기사를 통해 이러한 자성의 목소리를 전했다. 한 네티즌은 “만약 미네르바가 서울지역의 4년제 대학 정도만 나왔더라도 이 정도로 신빙성을 의심받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그만큼 학벌의 벽이 높은 사회라는 걸 깨닫게 하고 보여준 사건”이라고 했다. 또한 일부 누리꾼들 역시 “비전공 무직자에게 놀아났다”는 식의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비판했다고 전했다. 이철호 학벌없는사회 정책위원장은 “‘전문대 출신에게 농락당했다’는 시각 자체가 학벌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전제로 한다”며 “간판보다는 지식과 진실을 치밀하게 추적하는 전문성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해야할 언론이 오히려 학벌주의를 기정사실화하거나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국민들의 인터넷 표현의 자유 위축에 대한 위험성을 직감했다. 오늘자 경향신문 4면에서 “논객들 글 지우고 서버까지 옮겨 ‘사이버 망명’”이란 기사를 통해 ‘미네르바’ 구속 이후 인터넷 공론의 장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 ‘아고라’ 경제토론방 논객 중 일부는 자신의 글을 삭제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예측이고, 저의 분석입니다. 이것이 무조건 맞는다는 보장도 없고 항상 틀릴 수 있습니다”라는 ‘추신’을 달았으며 “3년 동안 쌓은 콘텐츠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해외 서버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글들도 올라오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인터넷 산업 전체가 축소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했다.

▲ 1월 12일자 경향신문 4면.
◇ 미네르바 체포 탓에 국제적 위상 악영향! : 검찰은 미네르바로 인해 국가신인도가 하락했다고 주장했지만 오히려 미네르바 구속에 대한 외신들의 보도가 이어지며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더욱 떨어지고 있다고 분석된다.

한겨레는 “체포 당일 8일 AP, AFP, 로이터 등 주요 통신과 <아사히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 <중국 신문망> 등 중국 언론이 ‘미네르바 사건’을 잇달아 주요 기사로 보도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미네르바의 부정적 전망이 정부를 화나게 만들었다”며 “한국 정부는 경제에 대한 부정적 전망에 대해 점점 민감해지고 있다”고 전했다고 한다. 또한 한국의 한 경제분석가는 “신문에 외환보유고가 걱정스럽다는 글을 썼더니, 한국은행 고위 관료한테 전화가 걸려 왔다”고 말해 당국의 언론 통제를 시사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달했다. AFP는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한국에서, 미네르바의 체포는 사이버 공간에서 언론의 자유에 대한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고 보도했다. 또한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네르바 같은 인터넷 소문의 진원지에 대해 보이는 한국 정부의 패닉은, 인터넷의 정치적 역할을 얼마나 우려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 이명박 정권 기반 분열 시작? : ‘미네르바’의 구속을 둘러싸고 보수권 역시 분열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부터 검찰의 ‘과잉수사’에 대한 문제와 정부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가 터져나오고 있다. 검사 출신의 박민식 의원은 “일반적으로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에 따라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데, 그런 점에 비춰보면 미네르바의 구속은 과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 역시 “구속수사는 조금 지나친 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제2, 제3의 미네르바가 나올 수 있는데 그때마다 구속 수사하는 것은 사이버세계의 현실세계 대두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고 한다. 정두언 의원도 지난 11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네르바 구속’은 이명박 정부에 부담만 주는 결정”라고 비판하면서 “구속은 도주우려가 있는 사람들이 대상인데, 그 사람은 자기가 글 쓴 것을 다 인정했기 때문에 구속까지 한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명박 정권과 지지기반이 겹치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실정법을 위반하기만 하면 처벌 대상으로 보는 형식적 법치주의는 국가 독재시대의 유물”이라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미네르바 논평의 주된 의도가 허위사실을 유포해 경제상황을 혼란스럽게 하고, 내용 또한 주요내용이 허위사실이었다면 모를까, 한두 가지 허위사실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처벌하는 것은 실질적 법치주의에 반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또한 “미네르바가 많은 국민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고 못박았다.

미네르바에 대한 무료 변론을 자청한 변호사가 박찬종 전의원이라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한때 신한국당(현 한나라당)의 대선 경선후보였던 박찬종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MB정부는 97년 외환위기의 책임있는 자들을 총리, 장관으로 앉혀 놓고 현재 위기의 책임을 시민논객인 미네르바의 위기 예견에 있다고 단정하고 있다”며 “하늘을 우러러 웃을 일이다. 누가 진정 혹세무민의 죄인인가?”라고 강만수 장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미네르바가 체포됐다는 소식에 무료 변론을 자청하고 나섰다. 박찬종 변호사는 구속수사가 결정된 것에 대해 “망연자실한 심정”이라며 “아마 미네르바도 같은 심정일 것이라고 본다. 평소에 사법부를 전폭적으로 신뢰하지 않은 나의 입장에서는 다시 한 번 우리의 사법풍토를 되돌아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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