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출신의 해외유학파 조영남씨가 지난 10일 MBC 라디오 표준FM ‘조영남·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를 진행하는 중에 한 여성 청취자의 사연을 소개하다 “왜 점쟁이처럼 모르는 남의 말을 추종하는지 모르겠다. 미네르바인지도 다들 믿다가 잡아보니 이상한 사람이고 다 속았지 않느냐”고 말해 ‘지금은 라디오 시대 게시판’이 호떡집에 불난 것마냥 요란하다.

‘점쟁이처럼 모르는 남의 말을 추종하느냐’는 점과 ‘미네르바는 이상한 사람이고 다 속았지 않느냐’는 말이 핵심인데, 이 두 문장에 조씨의 무서운 편견이 숨어 있다.

▲ 1월 12일자 아시아경제 27면.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옮아붙으면서 불황의 넓이와 깊이조차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 지금 한국이다. 세계적인 경향일지라도 ‘이명박-강만수 경제라인’의 실책으로 인해 국민경제는 일본이나 대만보다 3배가량 더 큰 피해를 입었다.

2008년 6월25일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이 낸 보도자료를 보면, 현 정부의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으로 인해 불과 3개월 만에 수십조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작년 3, 4, 5월 3개월 동안 ‘원유 수입시 환율상승에 의한 추가 지불액이 무려 2조원’이었다. 원유 자체의 물가 상승률을 제외한 환율상승에 의한 추가지불액만 불과 3개월 만에 2조원이었는데, 다른 수입물에 의한 손실은 얼마겠는가? ‘이명박-강만수 경제라인’이 국가경제에 수십조원의 손실을 입힌 것이며, 이웃 일본이나 대만보다 훨씬 더 경제적 고통을 가중시켰다.

이즈음, 미네르바는 고환율상황을 예측했고 그게 맞아 떨어진 것. 조영남씨가 말하는 ‘남의 말을 추종한 것’은 정작 ‘남의 말을 듣고, 결과를 보니 맞아떨어진 것’이다. 점쟁이는 ‘찍기’라면, 미네르바는 ‘근거를 갖고 합리적인 분석을 통한 예측’이라는 점에서,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지적은 더 심각하다. ‘전문대 출신 30대 백수’로서 똑똑하고 유명해지면 ‘이상한 사람’으로 비난해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한국에 이런 학력과 경력을 지닌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똑똑한 경제예측으로 유명해지면 조영남씨와 같은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모양인데, 너무 유치하다.

특히 ‘이상한 사람’의 핵심이 ‘경제학 전공의 명문대 출신’이 아니라 ‘공학 전공의 전문대 출신’에 강조점을 둔 모양인데, 이는 땅 속에 파묻어야 할 ‘간판제일주의’를 오히려 땅 속에서 끄집어 내 활개치게 만든 꼴이다.

우리는 지난해 ‘신정아 사태’를 겪으면서 수많은 학력위조 유명인들이 마녀사냥 당하는 걸 아프게 경험했다. ‘학력을 속이지 않으면 출세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오히려 학부모를 자극하여 자녀들에게 반드시 ‘좋은 학교 명문 학교 진학’을 독려하는 사회적 악순환 고리를 더 강화시켰다. 결국 더 많은 학원비라는, 더 많은 사교육비라는, 가구의 경제적 손실을 가중시키는 꼴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항상 미디어가 ‘간판제일주의’를 자극하고 확산시켜 왔다는 점이다. 간판을 속이지 않으면 주류 미디어에서 유명해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심지어 연예인들마저 간판을 속여 입문함으로써 유명세를 타고, 그 유명세 뒤에는 끈적끈적하게 묻어 있는 ‘거짓말’로 평생을 죄의식 속에 가둬버리는 현실이다.

그런데 동시간대 청취율 최고를 자랑하는 ‘지금은 라디오 시대’ 진행자가 이런 발언을 함으로써 상처받을 ‘이상한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모욕일 수 있다. 아니 꿈과 희망을 짓밟는 언어폭력일 수 있다.

전문대 출신 백수로 살아가는 것만 해도 서럽고 어렵다. 한데 나이까지 벌써 30을 넘기니 세상을 살맛이 나겠는가. 하지만 유사한 학력과 경력의 미네르바를 보면서, 위로 받고 다시 재기를 꿈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재를 뿌려도 유분수지… 실력만 있으면 주류미디어가 아닌 인터넷미디어이지만 ‘인정’받고 그 평판을 바탕으로 주류미디어로 진출할 수도 있고, 그 평판으로 인터넷에서 활동하며 ‘직업적인 논객’으로 살 수도 있겠다는 꿈과 희망. ‘미네르바’를 보며 새롭고 많은 영감을 얻었을 한국의 ‘미네르바 학력과 경력’을 향해 무심코 뱉은 조영남씨의 발언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울대 출신의 해외유학파 조영남씨가 전문대 출신의 많은 청취자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간판콤플렉스’와 현실적 ‘차별대우’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는 사건이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서울법대 미국뉴욕대학원 경제학 전공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향해 ‘이상한 사람이고 다 속았지 않느냐’며 그의 경제정책 운영능력을 비판하는 발언에 주저하지 않는 ‘성찰의 기회’로 삼는 것도 또 하나의 바람이다.

소탈한 60대의 천진난만한 라디오 진행자 조영남씨. 그가 나와 다른 입장을 가졌다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입장을 가지되 ‘합리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는 글이다. ‘실력과 학력’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은 ‘합리적 성찰’로 가능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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