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하다. 배우 송중기가 KBS <뉴스9>에 나온다고 한다. “130억 제작비는 이미 벌었다”는 말까지 들으며 시청률 30%를 상회하는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 유시진 역으로 출연한 덕이다. 이 드라마의 높은 인기는 드라마가 시작 직후 생중계 수준으로 쏟아져 나오는 포털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김은숙 작가의 전작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 <신사의 품격>, <상속자들>과 비교하는 글들도 많다. 덕분에 송중기는 중국 내 인기 1위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거워 <별에서 온 그대> 김수현과 현빈의 인기를 넘어섰다는 기사에 팬들 간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SBS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물론 tvN <시그널>까지 놓친 SBS에 대해 “감사하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태양의 후예>가 아무리 인기라도 KBS 메인뉴스까지 여기에 편승하는 건 문제가 있다. KBS 뉴스에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단골손님처럼 등장하고 있다. 2월 24일 드라마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전조가 있었다. 지난해 4월 3일 <아침뉴스타임>의 <[연예 인사이드] 송혜교·송중기 ‘태양의 후예’ 출연 확정> 기사가 시작이다. ‘연예 인사이드’ 코너에서 이 소식을 전한 것은 최소한의 양심이다.

KBS, 이제 메인뉴스에서도 <태양의 후예> 사랑

그러나 <태양의 후예>가 첫방영을 앞둔 시점에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한류’, ‘전편 사전제작’, ‘중국과 동시편성’ 등 키워드의 리포트들이 본 뉴스에 등장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22일 <뉴스광장>, <뉴스12> 등 뉴스 프로그램에 <“배우만으로 안 돼”…‘스토리의 힘’ 한류 잇는다> 리포트가 대표적이다. KBS는 한 제작사의 “한류스타만이 아니라 스토리가 가진 힘, 연출의 완성도, 전체적인 작품의 완성도가 중요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설명과 함께 그 예로 KBS <태양의 후예>를 언급했다. “중국과 한국에서 곧 동시 방송되는데 이례적으로 배우가 결정되기도 전에 계약이 성사됐다”는 자랑도 나왔다. 올해 들어서는 KBS <뉴스7>, <뉴스광장>, <뉴스12> 등 주요 뉴스프로그램들이 <한류 드라마, 한·중 동시 방송으로 공략!>, <드라마 ‘태양의 후예’ 오늘 제작발표회>, <윤미래·백지영…실력파 가수들 귀환> 등의 리포트를 아침, 점심, 저녁을 가리지 않고 내보냈다. KBS <뉴스9>에 <태양의 후예>가 등장하지 않은 건 마지막 자존심으로 보여질 정도였다.

KBS '뉴스9'

그러나 <태양의 후예> 시청률이 기대 이상으로 높게 나오자 KBS는 '마지막 자존심'까지 던져버렸다. KBS 메인 <뉴스9>에 <태양의 후예>에 대한 자화자찬이 본격 등장하게 된 거다. 3월 3일 KBS <뉴스9>는 <“KBS 콘텐츠 글로벌 한류 첨병”> 리포트를 배치했다. KBS는 “한국을 알리는 건 뉴스뿐만이 아니다. KBS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등을 일 년 365일,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전 세계로 방송하면서, 글로벌 한류의 선봉에 서있다”고 스스로를 높였다. 이어, ▲<‘태양의 후예’ 중국서 열풍…드라마 ‘한류 새 장’>(3월 9일), ▲<‘태양의 후예’ OST, 음원 차트 싹쓸이>(3월 11일), ▲<‘태양의 후예’ 열풍!…中공안 ‘송중기 상사병’ 주의보>(3월 14일), ▲<‘태양의 후예’ 동남아 열풍…태국 총리도 ‘팬’>(3월 20일), ▲<박 대통령 “태양의 후예, 문화 콘텐츠의 힘 보여줘”>(3월 21일), ▲<‘폐공장의 변신!’ 젊은 한류 공략하는 K패션>(3월 22일), ▲<‘태양의 후예’ 열풍, 아시아 넘어 세계로!>(3월 23일), ▲<드라마 한류 ‘부활’…경제 효과 ‘톡톡’>(3월 23일) 등의 리포트가 연일 쏟아졌다.

다른 사안에 대한 보도량과 비교해보면 KBS가 <태양의 후예> 띄우기에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를 더 쉽게 알 수 있다.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는 제20대 국회의원을 뽑는 4·13총선, 그를 둘러싼 공천 갈등이다. 새누리당의 유승민 의원에 대한 ‘찍어내기’ 공천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였다. 그러나 KBS는 해당 사건 보도에 소극적이었다. 총선보도감시연대가 “KBS는 24일 유승민 의원 관련 보도를 단 1건도 내지 않았다”며 “KBS는 ‘유승민 찍어내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정도였다. 세월호참사와 관련한 청문회(14일~16일) 보도 역시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달랑 2개로의, 그것도 ‘단신’으로 처리됐기 때문이다. 출석한 공무원들 모두 ‘모르쇠’ 태도로 일관해 논란이 됐으나 KBS는 이런 소식은 전하지 않았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보다 이 문제들이 덜 중요했다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분량 뿐 아니라 내용도 문제다. ‘한류’, ‘사전제작’, ‘중국 동시편성’을 언급하는 건 볼썽사납긴 했지만 그래도 참을만했다. 그러나 '음원 싹쓸이'를 했다는 보도나 중국 공안의 ‘송중기’ 주의보 리포트, '태국 총리도 팬' 등 내용의 리포트는 확실히 도를 넘어 것이라 할만하다. <박 대통령 “태양의 후예, 문화 콘텐츠의 힘 보여줘”> 리포트는 그야말로 화룡점정이었다. “급기야 오늘 대통령 주재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도 태양의 후예가 화제가 됐다”며 “대통령이 ‘태양의 후예’가 사전제작과 판매, 한중 동시 방영 등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호평했다”며 기뻐하는 KBS 보도는 그야말로 민망한 수준이다.

KBS는 이 리포트에서 “(박근혜 대통령은)특히, 군부대 원격 의료나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을 수 있는 시간 선택제 같은 정책들도 인기 드라마에 담기면 자연스럽게 홍보가 되는 만큼, 정부가 문화 콘텐츠 지원에 더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라고 덧붙였다. 드라마를 ‘정책홍보’의 대상으로 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시각을 문제의식 없이 그대로 내보낸 것이다. 공영방송 KBS, 그것도 메인뉴스에서 말이다.

KBS, “‘태양의 후예’가 인기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이승기 씨 복무”

KBS 메인뉴스가 이런 수준이니 다른 시간대 뉴스 프로그램 수준은 보지 않아도 알 정도다. KBS <뉴스광장>을 비롯해 <뉴스12>, <뉴스7>, <뉴스9 경인>, <시사진단> 등에서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더 자주 노출이 됐다. <‘태양의 후예’ 중국 동영상 사이트 조회 수 1억 건 넘어>, <[연예수첩] 중국서 ‘송중기 신드롬’…인기 비결은?>, <[톡톡! 연예광장] 태양의 후예, 중국·일본에서 높은 인기>, <[연예수첩] 송중기, 중화권 팬미팅 개최>, <[연예수첩] 송중기, 중국 내 인기 연예인 1위 선정>, <[연예수첩] 태양의 후예 ‘서대영 상사’ 진구 단독 인터뷰>, <‘태양의 후예’ 한류 성공모델 급부상…비결은?>, <문화콘텐츠의 힘 보여준 ‘태양의 후예’>, <[톡톡! 연예광장] 송혜교·송중기, 열애설 사실무근>, <‘태양의 후예’ 촬영지 주목!…관광 상품 본격화>, <‘태후’ 인기 美·유럽 확산…동영상 조회 1위>, <[연예수첩] 시청자를 사로잡은 ‘화제의 1분’>, <태국 관광청 태양의 후예 송중기에 러브콜>, <‘태양의 후예’ 신드롬…드라마 한류 부활 이끈다!>…. KBS가 <태양의 후예>를 언급하는 이런 방식은 그야말로 흥미롭다. 그래도 뉴스인데, 송혜교·송중기 열애설까지는 너무했다.

KBS는 <[톡톡! 연예 광장] 이승기, 신병 훈련 후 특전사 배치> 리포트에서도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언급했다. 뉴스의 요지는 “지난달 입대한 가수 겸 배우 이승기 씨가 어제 신병 훈련 수료식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며 “특전사령부에서 배치 돼 근무 할 예정인데, 최근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인기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이승기 씨의 특전사 복무가 여러모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다. KBS는 또한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 6월 29일 첫 방송> 리포트에서는 “‘함부로 애틋하게’는 김우빈, 수지가 각각 3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하는 작품으로 방영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이번 드라마는 최근 연일 화제 속에 방영 중인 ‘태양의 후예’에 이어 100% 사전제작으로 완성도를 높일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뉴스의 원칙이 통용되지 않는 세상이라지만 도가 지나치다. JTBC <뉴스룸>은 목요일마다 스튜디오에서 대중·문화 인물을 초대해 인터뷰를 나눈다. 서태지를 비롯한 강동원, 싸이, 정우성, 유해진, 이정현, 이미연, 오달수 등 다양한 연예인들이 출연시켜 화제가 됐다. 서태지의 경우, 뉴스의 30분가량을 차지하면서 논란이 됐다. 이와 비교할 때 누군가는 KBS가 송중기를 메인뉴스에서 인터뷰하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인가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JTBC와 KBS는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 첫째, JTBC <뉴스룸>은 개편과정을 거쳐 오래 전부터 목요일 대중문화 인물을 인터뷰해왔다. 하지만 KBS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 인기가 높아지니 갑작스레 인터뷰를 하겠다고 나섰다. 둘째는 ‘저널리즘’ 측면이다. JTBC <뉴스룸>은 4·13 총선과 각 당의 공천 등 보도에 적극적이다. 세월호 참사는 물론이고 정부정책에 대한 감시 역할 또한 방송뉴스 중에서는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KBS <태양의 후예>라는 콘텐츠의 문제가 아니라 공영방송의 역할 실종이 문제라는 것이다. 인기 있는 드라마를 선택해 시청자들에 소개하는 것 또한 공영방송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거기까지는 인정할 수 있다. 그게 한류에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도 나쁘다할 수 없다. 하지만 뉴스의 영역은 그런 것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KBS 뉴스가 앞장서 ‘시청률 지상주의’를 조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공영방송의 역할은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양의 후예>가 100% 사전제작 하는 등 쪽대본에 머물던 제작시스템의 변경에 있어서 긍정적으로 볼 만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국내 제작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이라기보다는 중국의 규제를 피해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점에서 KBS가 스스로 자랑할 부분 또한 아니다. 이 상황에서 송중기를 메인뉴스에서 불러 또 다시 ‘자화자찬’에 나서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자사 뉴스를 비판하는 기자들을 징계하는 등 적극적으로 단속하면서 말이다. KBS가 송중기를 불러 뉴스 스튜디오에 앉히는 것보다 시급한 건 다름 아닌 뉴스 개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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