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국방송대학보> 제1523호(2009-01-05) ‘미디어 바로보기’에 발표한 글임을 밝힙니다.

방송 기자가 리포트를 하면서 “나는”으로 시작하는 주어를 쓸 수 있는 상황은 개그 설정(‘개콘’ 안상태 기자의 “나안~ 뿐이고”) 때뿐이다. 저널리즘 문법에서는 1인칭 또는 2인칭 주어가 금지돼 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한 저널리즘의 ‘객관주의’가 규범화된 결과다. 지난해 12월26일 SBS <8시 뉴스>에는 이와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단신이 보도됐다.

“SBS는 ‘현재 일부 노조원이 파업에 가담하고 있지만 대다수가 정상적으로 방송에 임하고 있어서 모든 방송이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SBS는 특히 ‘이번 파업이 불법인 만큼 가담자는 사규에 따라 조치될 것’이며, ‘앞으로도 민영방송으로서 책무를 다하고 미디어산업 발전과 시청자 권익 보호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형식상 주어는 분명 3인칭이다. 언론은 자사 관련 보도를 할 때도 이처럼 3인칭을 쓴다. 그럼 내용도 3인칭일까? 이 물음은 ‘내용도 객관적이고 공정한가’로 치환할 수 있다. 여기서 SBS는 ‘회사’만을 한정해 지시한다. 이 기사가 ‘노조’도 (관계의) 주체로 상정했다면, 주어는 ‘SBS 경영진’이어야 객관적이다. 노조 쪽 입장도 함께 보도했을 때 ‘공정성’은 완성된다.

3인칭 주어가 곧이곧대로 객관성/공정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말을 배운 지 얼마 안 된 어린이나 애교를 부리는 연인이 자신을 3인칭 주어로 바꿔 표현하는 경우를 떠올려보라. 이건 오히려 강력한 주관성을 내장하고 있다. 3인칭 객관주의 문법을 철저히 따르는 한국 언론들을 객관적이라거나 공정하다고 보지 않는 시각이 팽배한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객관주의 문법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는 신화체계 위에서 작동한다. 가장 위력을 떨치는 경우는 자신의 이익을 탐욕할 때다. 객관주의 신화체계는 사익을 은폐하거나 공익으로 둔갑시키고, 타자에게 폭력성을 띤다. 전쟁 당사국의 언론이 자국군대의 전투행위를 3인칭 주어로 미화하고 찬양할 때 (자국 군인을 포함해) 전쟁 희생자들은 철저히 타자화된다.

그럼, 신문사가 방송사를 탐한다면 어떻게 보도할까? 방송 진출을 꾀하는 한 신문의 지난해 말 하루치 지면 제목만 살펴보자. <“대기업·신문이 방송 참여한다고 다채널 시대 여론 독과점 불가능”-정병국 미디어특위장>(중앙일보 12월23일치 1면), <언론규제 가장 심했던 프랑스도 TV·신문 벽 허무는데…>(5면),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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