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제’위원회 위원장 최시중 ‘옹’과 관제 ‘국영방송’ KBS 사장(?) 이병순 ‘일병’이 지난해 12월과 올 1월을 모두 공자 말씀으로 장식했다. 최 옹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창립 20주년 기념일인 지난해 12월19일 공자의 이른바 ‘정명’(正名)론을 설파하더니, 딱 이 주일만인 지난 1월2일 신년사에서 이 일병은 정명론과 오십보 백보인 이른바 ‘政治’론을 논했다. 그런데 두 사람 다 공자 말씀 인용에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최 옹은 ‘정명’론의 배경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남의 잔칫집을 발칵 뒤집어 엎는 ‘비례’(非禮)를 저질렀고, 이 일병은 ‘왕이 왕답고 사장이 사장다워야 한다’는 얘기는 쏙 빼놨기 때문이다.

▲ 이병순 KBS사장 ⓒ여의도통신
이 일병은 신년사에서 (KBS 구성원들에게) “자기 자리 찾아가기를 서두르라”고 당부한 모양이다. “기자는 기자 할 일을 하고, PD는 PD 할 일을 하고, 모두가 자기 일에 몰두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며 “남의 일에 대한 간섭이나, 자기 본연의 일이 아니면 나머지 일은 회사에 맡겨”두란 말도 잊지 않았단다. 해서 떠올랐다. 제나라 왕이 정치에 관해 묻자, 공자가 “군군신신, 부부자자”(君君臣臣, 父父子子)라고 답한 대목이 그것이다.

1980년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한테 이와 비슷한 얘기를 참 많이 들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때는 참 무자게 투박했다. “학생들이 하라는 공부하는 안 하고 데모질”이라고 했지, 아마. 그때나 지금이나 대통령이 정치 잘 할 생각은 않고 목도리 벗어주며 “어려우면 전화하세요”라고 국민들한테 즉흥적인 ‘생쑈’를 하지 않나, ‘속도전’을 찾지 않나, 여당은 대통령한테 입바른 소리를 하기는커녕 ‘백이숙제처럼 의로운 명분이 있는지 야당 의원들 한 번 굶겨보자’고 하지를 않나, 시정잡배처럼 구는 판에 ‘군군신신, 부부자자’ 운운이 씨알 먹히기는 애초부터 텄다.

최 옹의 정명론은 또 어떤가. 이 정명론의 배경을 한 꺼풀 벗겨보면 최 옹이 의도한 것과는 정반대의 아주 흥미로운 결론에 도달한다.

수제자의 한 명으로 요절해 공자가 몹시 슬퍼했던 자로가 공자에게 ‘만약 정치적 지위를 얻는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물었다. 공자는 정명, 곧 “이름을 바로잡는 일”이라고 답했다. 이어 다음과 논리를 죽 펼쳤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언어가 도리에 맞지 않게 된다. 언어가 도리에 맞지 않으면 행정은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행정의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나라의 예악은 진흥되지 않는다. 나라의 예악이 진흥되지 않으면 형벌이 적중되지 않는다. 형벌이 적중되지 않으면 백성은 수족 둘 곳이 없어진다.”

일본의 저명한 중국철학사 권위자인 시게자와 도시로(重澤俊郞)는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백성이 수족 둘 곳이 없어진다”는 이 논리가 겨냥하고 있는 공자의 ‘적’은 당시 법가의 확산에 따라 백성들 속에 처진 ‘법의 권위에 의거한 권리 사상’이었다고 갈파한 바 있다. 주나라의 영주제와 신분제가 이상향이던 공자에게 법가가 확산시킨 권리의식은 영주 체제에 대한 반역행위를 부추기는 등 위험천만한 불온 사상이었다는 얘기다. 시게자와는 공자가 <논어>에서 위정자를 ‘사람’(人)으로 부르고, 노동에 동원되는 농민들을 ‘백성’(民)으로 엄격히 구별했음을 치밀한 연구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여의도통신
이제, MBC를 향해 내뱉은 최 옹의 ‘정명’론에서 정반대의 의미가 살아난다. 공자에게 법가가 마음에 안 든 것처럼, 최 옹을 비롯한 현 정권에게 MBC의 보도가 못 마땅하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마음에 안 드는 보도를 하는 MBC를 사영화시켜 ‘조중동 뉴스-재벌방송’ 만들려고 기를 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최 옹이 말하는 MBC의 ‘바른 이름’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조중동 뉴스-재벌방송’이 정명이라고 우긴다면,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일 테니까. 아니면, 강압적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KBS의 현주소처럼, 관제 ‘국영방송’을 선택하라고? 그래서 공자의 ‘정명’은 매우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이다. 현 정권에게 병순씨는 ‘바르고’, 기영씨는 ‘바르지 않다.’ 병순씨에게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내 일만 하자는 ‘파블로프의 개’들은 ‘바르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 기울이고 발언하고자 하는 구성원들은 ‘바르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말은 바로 하자. 현재 ‘바른 이름’이 절실하고 시급한 곳은 MBC가 아니다. ‘공영’방송법이 아닌 ‘국영’방송법, 사회 ‘개혁’이 아닌 사회 ‘불안 조장 및 감시’, 방송통신위원회가 아닌 방송‘통제’위원회, 방송통심의위원회가 아닌 방송통신‘검열’위원회, 공정방송이 아닌 ‘공정’을 가장한 ‘식물’방송, 미디어 ‘선진화’가 아닌 미디어 ‘후진화·국영화’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바른 이름 붙여야 할 데가 수두룩하다. 거기에는 ‘신문인가 범죄집단인가’ 하는 해묵은 작명 문제도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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