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독전대장’의 서슬 시퍼런 칼날은 무서웠던 모양이다. 국회의장실 점거농성을 풀고 대화를 하는 와중에, 비상경제내각을 선포하고 중단 없는 ‘속도전’을 강조하자, 한나라당이 다시 날치기 통과를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섰다. 독전대장의 신년사는 ‘타협은 없다! 돌격 앞으로! 아니면 내 손에 죽는다’는 명령을 한나라당에 내렸다. 그것은 ‘전시내각’의 선포였고, 공안정국의 공식 선언이었다.

애초 독전대장의 계획은 이게 아니었을 것이다. ‘날치기’ 하고 ‘전시내각’ 선포한 뒤 ‘공안정국’ 선언하는 수순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판 ‘제5열’들의 준동 때문에 그르쳤다. 할 수 없이 전시내각 선포와 공안정국 선언을 통해 날치기를 돌파하는 방식으로 ‘모양새’를 왕창 구겼다. 청와대 배후설에 대해 완강히 부인하던 홍준표나 박희태 등 한나라당 지도부도 완전히 ‘새’ 됐다. 독전대장의 꼭두각시임이 만천하에 폭로됐기 때문이다.

▲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사 모습 ⓒ청와대 공식 블로그 ‘푸른 팔작지붕 아래’ 페이지 캡처
방해가 되는 세력은 모두 ‘적’을 이롭게 하는 ‘제5열’이다. ‘조중동 뉴스-재벌방송’의 출현에 저항하는 세력, 사이버모욕죄 신설을 포함해 7대 언론악법의 통과를 방해하는 세력, 민족 화해와 협력 등 한가한 소리를 입에 담는 세력, 대화와 타협이니 사회적 합의니 하는 소리를 지껄이는 세력 또한 제5열이다.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데, 자꾸 바른 소리를 하는 세력은 죄다 ‘제5열’이다.

이제까지 수없이 내놓은 ‘경제 살리기’ 방안이 약효를 내지 못하는 것도 죄다 바로 이놈들, 바로 ‘제5열’ 때문이다. 일사불란하게 정부의 방안이 곧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추어올리지는 못할망정, 자꾸 부정적인 평가를 해대는 미네르바니 뭐니 하는 바로 ‘제5열’ 때문에 제 아무리 영험성이 있는 대책이라도 약발이 먹히질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하나. 국토해양부가 발벗고 나서고 기획재정부 어여쁜 ‘만수’씨까지 동의했던 ‘강남 3구에 대한 부동산 투기지역 해제, 분양권 전매제한 폐지’ 등에 대해 ‘독전대장’이 규제완화 효과가 의심스럽다고 막판에 유보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제5열의 주장을 받아들여서 그런 것이라고 여기면 오산이다. 그것은 철저히 계급적이며 정치공학적이다.

‘강남 3구’가 어딘가? 지지율 20% 미만의 독전대장이 끝까지 의지해야 할 ‘최후의 보루’다. 그 최후의 보루에서, 독전대장의 말만 믿고 그나마 있는 자금을 끌어다가 부동산에 쏟아 부었는데, 가격이 오르기는커녕 더 떨어지기라도 해봐라. 어떻게 되겠나. 정치생명 끝이다. 강남 3구까지 제5열에 합세하면 독전대장은 그야말로 물에 빠진 ‘쥐새끼’ 꼴이 되고 만다. 독전대장의 계급적 직관과 정치적 보호본능에 따른 이 애틋한 배려로, 강남에서 ‘부동산 거지’가 폭증하는 사태는 당분간 동결이다.

고문만 부활하지 않았지, 완벽히 ‘파시즘’이다. 자국 출신 ‘제5열’들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슬며시 ‘제5열’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미국이 9·11 테러 직후 외국인 입국자들에게 적용하고 일본이 재일 외국인들에게 수십 년 간 적용하고 있는 지문날인 제도를 도입한단다. MBC를 비롯한 공영방송들이 <느낌표>나 <아시아, 아시아>와 같은 공익 연예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식과 수준을 대폭 개선해 놨더니만, 이걸 거꾸로 돌린다.

다행스러운 것은, 수신료 인상 앞에서만 서면 물불 가리지 않고 침을 흘리는 KBS 구성원들 중에서 ‘파블로프의 개’ 실험을 거부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징후가 보인다는 점이다. 4년 간 켜켜이 쌓인 근성이 집행부 바뀌었다고 하루아침에 바뀔 것이라는 의구심이 강하긴 하지만, ‘투쟁의 선봉에 서겠다’는 말을 속는 셈치고 믿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이제 ‘국’자 돌림 동네에서 ‘파블로프의 개’ 실험을 거부하는 시늉이라도 나오지 않는 곳은 딱 한 곳인 듯싶다.

공안정국 선포의 한편으로, 방송통신심위원회가 ‘방송 보도의 가이드라인’을 정하겠다고 지랄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자기들이 마치 순수 민간기구인 것처럼 ‘쌩쇼’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국가기구가 ‘방송 보도 가이드라인’ 정하는 나라가 도대체 어디에 있냐? 이걸 명색이 언론학자란 자들의 상당수가 동의하고 있단다. 학자의 양심이라곤 독수리가 다 파먹은 모양이다.

그들에게 들려준다. “여론 형성을 감독하는 것은, 국가의 절대적 권리다(It is the absolute right of the State to supervise the formation of public opinion).” 국가사회주의(나치)와 파시즘의 언론관을 보여주는 이 말은 나치의 선전장관 조제프 괴벨스의 말이다. 그가 또 뭐라 그랬는 줄 아나? “당신이 충분히 큰 거짓말을 하고 이를 계속 반복한다면, 궁극적으로 사람들은 믿게 된다. 국가가 그 거짓말이 낳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결과로부터 사람들을 차단할 수 있는 동안에만 그 거짓말은 유지될 수 있다. 따라서 국가가 이견(dissent)을 억압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권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진실은 거짓말의 치명적인 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연장하면, 진실은 국가의 가장 큰 적이기 때문이다.”

멍청하게 군 민주당을 지금 욕할 시기도 아닌 것 같고. 바뀐 건 하나도 없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7대 언론악법 포기할 때까지 싸운다고 했다. 모두가 다 잡혀가도 싸운다고 했다. 설사 지더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싸움, 퇴로가 없는 싸움이기에 그렇다고 한다. 이제 그 싸움은 1라운드가 끝났을 뿐이다. ‘파블로프의 개’가 되기를 거부하는 단 한 명의 언론노동자가 남을 때까지 ‘정의의 전쟁’은 계속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