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벽두부터 MBC <뉴스데스크>의 신경민 앵커의 마무리 발언이 단연 화제다. KBS의 영상 조작을 빗대어 1월1일 뉴스데스크 말미에 던진 “화면의 사실이 현장의 진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언론, 특히 방송의 구조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시청자들이 새해 첫날 새벽부터 현장실습교재로 열공했다”는 발언이다.

▲ 1월 1일 신경민 앵커의 클로징 코멘트 화면.
먼저 ‘화면의 사실과 현장의 진실’이란 발언으로 사실과 진실의 의미 차이를 설명했으나, 보다 분명히 표현하면 ‘화면의 조작과 현장의 진실’이 맞다. 신 앵커가 KBS를 보다 우아한 언어로 비판한 것으로, 이 또한 오해를 낳을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다.

1987년 노태우 김대중 김영삼이 경합했던 대통령 선거에서 KBS는 노태우의 유세장면을 스케치하는 보도에서 ‘무대 가장 앞 쪽에서 열광하는 수많은 유권자들의 얼굴과 함성’을 주로 내보냈다. 하지만 김대중 김영삼의 유세장면은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유권자들이 듬성듬성 떨어져 앉아서 막걸리 마시는 장면’을 주로 내 보냈다.

이는 카메라가 어디를 바라보고 누구를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현장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언론학자들이 KBS의 불공정 선거보도를 집중적으로 비판하면서 학문적 사회적 논란이 불거진 사례다. 그 후 공정한 선거보도에서 이런 영상장난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 활동이 벌어짐으로써, 더 이상 영상편집을 통한 현장왜곡은 거의 사라졌다.

한데 2008~2009년. 20년 전에 이미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한 여론조작의 한 수단인 영상편집 및 영상구성의 조작이 등장한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역시 KBS에 의해서 저질러진 영상편집의 악의적 현장 왜곡은 말 그대로 ‘현장의 진실을 악의적으로 조작한 사건’이다.

‘함성소리 구호소리 갖가지 희망과 비판을 담은 손팻말 현수막….’ 수많은 시민들이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하면서 정치 사회적 희망을 소망할 수도 있고, 개인적인 바람과 기대를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런데 KBS는 ‘기획의도’와 다르다는 이유로 현장의 모습과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거세하는 만용을 저지른다.

‘기획의도’는 시민들의 송구영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을 터. 그것이 개인적인 평가와 기대가 아니라 정치 사회적 평가에 기대면 기획의도로부터 벗어나는 것인가? 특히 정치가 시민의 삶에 직접적이고 민감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금, KBS 오세영 예능국장의 반론 ‘기획의도’ 운운은 궤변이요 억지일 뿐이다. 아니면 무식하든지.

▲ 철저하게 무대와 영상을 중심으로 진행된 KBS 제야의 종소리 생중계 모습 캡처.
화면을 조작해 놓고, 뻔뻔스럽게 기획의도에 맞춘 편집이라고 우긴다. 조작과 편집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일시적으로 몇몇 시위대가 제야의 종소리 타종 현장을 소란스럽게 했다면, 백번 양보해서 다른 평가를 내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타종을 전후해서 일관되게 시민들이 자신들의 분노와 희망을 표현한 현장을 통째로 도려내고 조작의 악의성을 담은 편집을 했다. 즉, 편집행위 자체를 프로그램의 구성상 단순히 기술적 영역으로 평가하는 것은 그 악의성이 너무나 도드라지기에 불가능하다. 프로그램 구성상 청와대나 한나라당 그리고 방송통신위원회의 ‘높은 양반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한 ‘지독한 아부성 조작’의 증거만 고스란히 방송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MBC 뉴스데스크의 신경민 앵커는 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나은, 예리한 비판으로 공영방송의 뉴스가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격조 높은 발언을 한 것은 분명 칭송할만 하다. 하지만 신경민 앵커는 뉴스시간에 행위자인 ‘KBS’를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화면의 조작’을 ‘화면의 사실’이라고 표현하면서 ‘사실과 진실’을 대비시켰으나, 사실과 진실이 전혀 다른 의미인 것처럼, 조작과 사실도 천양지차의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놓쳐버렸다.

조작-사실-진실의 개념을 KBS의 화면을 통해서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KBS의 화면’은 ‘조작’이고, ‘KBS의 화면 조작’은 ‘사실’이며, ‘KBS의 지독한 아부성 현장왜곡’은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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