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초재기에 들어간 박승규 KBS 노조 위원장이 전국언론노동조합 총파업을 두고 “MBC 외에는 파업하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임기내내 ‘상상하는 것 이상’의 노동조합을 보여준 그가 하는 말이어서 마음 쓸 일은 아니지만…, 중앙일보는 옳다구나 싶었던지 고려대가 올 수시시험에서 특목고 출신에게 부여한 것보다 훨씬 큰 가중치를 부여해 29일치 1면에 대서특필했다.

아무리 실없는 허언이라지만, 그의 세치 혀끝에 상처받은 이들도 뜻밖에 많았다. 바로 ‘파업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이들’이다.

2002년 이후 입사한 KBS 평기자 104명은 30일 실명으로 언론노조 파업 지지 성명을 내어 “우리는 자괴감을 감출 수 없다. 모든 방송인이 어깨를 겯고 싸우는 현장에서 유독 KBS만 모습을 감춘 탓”이라며 “방송계의 투쟁을 앞장서 이끌었다던 지난 투쟁은 이제 말 그대로 무용담이 돼버린 것인가”고 개탄했다.

이들은 “‘KBS 동지들을 믿는다’는 여의도 공원에서의 함성이 가슴을 후벼 판다”며 KBS노조에 총파업 동참을 촉구했다.

▲ 지난 9월 3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 민주광장에서 'KBS 젊은 기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방송독립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의를 밝히고 있다. ⓒ레디앙 손기영
이들은 쉽게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벼렸다. 이들은 “KBS의 동료, 선후배들을 믿는다.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는 ‘재벌 방송’, ‘조중동 방송’의 폐해는 KBS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고, 들끓는 반대 여론에 아랑곳 않는 정부 여당에 대한 분노는 너나 없을 것”이라며 “다만, 이 분노를 쏟아낼 물꼬가 막혔을 뿐이고, 물꼬만 트이면 KBS도 언론 노동자들의 연대 투쟁에 한발 늦게나마 힘을 보탤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이들은 “우리가 조금 앞서 물꼬를 트기로 했다”며 “가능한 모든 연대와 동참의 길을 찾아볼 것이고, 힘을 모을 길을 열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에 앞서 KBS 기자협회도 29일 성명을 내어 “한나라당이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보수적인 언론환경을 만들어 장기집권을 위한 기초를 닦으려 하고 있다”며 “우리는 언론노조 파업을 적극 지지하며 집권 여당이 민의를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강행처리에 나서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KBS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집행부가 가로막아 파업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면, ‘신분의 제약’ 때문에 파업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이들도 있다. 누구보다 언론의 자유와 시청자 알권리를 실천하는 데 앞장서온 MBC 시사교양 작가들도 프리랜서라는 신분에 묶여 파업에 직접 나서지 못하고 있다.

MBC 시사교양 작가 52명도 30일 성명을 발표해 “방송의 한 축을 담당하는 주체로서 MBC 시사교양 작가들은 언론노조의 파업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국민들로 하여금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웃게 해주던 <무한도전>의 결방만큼이나, 우리는 다가올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의 공백이 안타깝다”며 “지금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다시는 저 거리의 추운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음을 예감한다”고 밝혔다.

또 “시사교양프로그램의 최일선에 서 있던 우리에게, 지난 1년은 자본권력이 지배하고 정치권력과 결탁하고 언론권력이 장악한 방송의 미래가 어떠할지를 비감하기에 차고도 넘친 시간이었다”며 “언론법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그것은 곧 언론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자본, 정치, 언론권력이 거꾸로 언론을 지배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갖게 됨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경제논리만이 프로그램 제작과정에 통용됐다면, 지구 온난화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20억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북극의 눈물>을 만들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고, 대기업이 방송사의 주인이 되는 순간, 생활환경감시프로그램 <불만제로>는 더 이상 이윤을 목적으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기업들의 횡포를 문제 삼지 못할 것”이라며 “이미 한국사회에서 막강한 힘을 휘두르고 있는 보수언론들이 MBC를 소유하게 된다면, 18년 역사의 한 시사프로그램(PD수첩)이 폐지 1순위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고 우려했다.

작가들은 “한국 언론의 미래가 걸린 이 싸움에 지지 않기 위해 미약하나마 보태야 할 힘이 필요하다면, 우리 작가들도 그 길에 함께 나서겠다”고 밝혔다.

한편, 언론노조 총파업에 대한 지지 선언은 국내 시민사회와 원로인사들에 이어 국제연대로도 번지고 있다.

전세계 연예, 스포츠, 문화, 언론, 예술 분야의 140여개 노동조합으로 구성된 국제사무전문서비스노조연맹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부문(UNI-MEI)은 29일 성명을 내고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총파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UNI-MEI는 “우리는 새롭게 추진되고 있는 미디어 관련악법에 항의하기 위해 12월26일부터 파업에 들어간 한국의 수천명의 미디어 노동자들에게 뜨거운 국제연대를 보낸다”며 “우리는 대기업이 방송사 지분을 최고 30%까지 소유할 수 있고, 인쇄 매체와 시청각 미디어 등을 교차소유하도록 허용하는 법안은 미디어의 다양성을 약화시키고 대기업들이 미디어산업과 공공의 의견을 장악하는 것을 허용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UNI-MEI는 “우리는 한국정부와 한나라당이 즉각적으로 미디어 관련법을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 만일 한국 정부가 파업을 저지하고, 노조원의 파업권을 박탈하고 노조간부를 구속한다면 한국정부에 대항하여 한국의 미디어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대대적인 국제연대 캠페인을 전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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