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우뇌만 사용하는 계산에 따르자면, 2000년대는 지난 20세기의 마지막 2년을 더해 통째로 잃어버린 시간인 셈이다. 지금 우뇌 사용자들은 그 10년의 끝자락을 바투 붙잡고 있다. 이런 비감함, 뭔가 비범이라도 하면 덜 비참할 텐데 올해의 마무리도 역시 변함없이 상투적이다.

이견의 여지없는 급박한 정세와 장담하기 어려운 내일을 앞두고 있건만, 하릴없는 각종 시상식의 풍경은 올해도 여지없다. 화려한 장면을 장황하게 중계하는 버릇은 여전하고, 그것이 다른 모든 것들을 압도하는 것은 그저 시원찮을 뿐이다. 많고도 같은 시상식의 향연은 계속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올해의 그랑프리 파이널은 단연, <연예대상>이다.

▲ KBS 연예대상 사이트 캡처.
방송3사 중 KBS는 가장 먼저 강호동을 선택했다. KBS에 단단히 박혀 있는 미운털 때문일까, 네티즌들의 볼멘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KBS가 만들어낸 올해의 아이콘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는 ‘왕비호’를 수상자 목록에서 제외한 것은 너무 낙후된 선택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채로웠던 것은 KBS의 선택 이후 나머지 방송2사의 영광을 유재석이 싹쓸이했으면 좋겠다는 포스팅이 잇따르는 매우 역설적인 합의이다. 유재석에게 네티즌들은 ‘대인배’라고 하는 가장 영예로운 호칭을 선사했다. 그리고 어제 MBC 연예대상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유재석-강호동’ 국면의 난데없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1

80년대의 웃음은 치밀한 질서를 갖는 각본에 의한 반응이었다. <유머1번지>와 심형래는 80년대의 웃음이 어떠한 제조공법을 갖는지를 효과적으로 대표한다. 임하룡의 북채가 돌아가는 횟수가 만드는 예측 가능한 긴장감과 이를 비껴가는 심형래의 엇박자가 만드는 박진감에 80년대는 자지러졌다.

이에 비해 훗날 문화 폭발의 시대라고 명명된 90년대의 웃음은 확실히 달랐다. 그것이 전진이었는지 퇴보였는지를 확정할 순 없지만, 이동을 단행한 것만은 명백하다. 아무리 자지러져봐야 80년대의 웃음은 기껏해야 그 원천이 제 몸 하나였던 시절이었다. 90년대의 웃음은 긴장감과 박진감의 무대는 ‘몸’이 아닌 ‘말’로 전환했다. 본격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90년대의 대표 웃음 공장 <일밤>은 한계 없는 변주가 가능한 말의 자유로움을 보여줬다. 주병진의 근사함, 이휘재의 신선함, 김국진의 재치는 90년대의 세련된 웃음이 지향했던 궁극이었다.

#.2

밀레니엄이란 알쏭달쏭한 외래어로 시작된 2000년대는 존재했던 모든 것의 잡종화하는 스타일로 만개했다. 모든 것은 알싸하게 버무려지고 아스트랄하게 합체했다. 힙합과 복고가 공존하더니, 미니멀과 멀티플이 동시에 구현되고, 근대적 물량과 탈 근대적 전략이 주거니 받거니 경합을 벌이는 형국이 복잡하게 얽혀들었다. 웃음은 ‘잡종’ 혹은 ‘자연스러운 복잡함’이란 2000년대의 흐름을 정교하게 집약하는 코드가 됐다.

80년대의 웃음 제조공법은 <개그콘서트>류의 공개 코미디 형태로 승계/확장되어 원형이 보존되는 진화를 이뤘고, 90년대 웃음의 특징인 자유로운 말은 ‘리얼 버라이어티’라고 하는 독특한 형태의 ‘모사 특산품’으로 변주됐다.

#.3

촛불이 개벽했던 2008년은 웃음이 가파른 절정에 이른 때이다. 다 때려치우고, 경제 하나만 살리라는 지상 명령을 받든 대통령은 웬걸, 경제를 4대 강가 정비하는 공사판으로 끌고 가서 삽질로 묻으려 하고 있다. 약간의 이름 바꾸기,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 전혀 새로운 몸빵 만능, 삽질 개그의 시대는 도래했다. 그리고 필연적 허술함을 메우기 위해 우연인 척 예능이 만개했다.

올 한 해, 대중문화는 절대적 예능과 찌질한 그밖의 나머지 것들로 구성됐다고 하면 얼추 얘기가 된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 부박한 절대 예능의 시대를 해석해 낼 수 있는 복잡한 능력이 내겐 없다. 그저 이 절대 예능의 시대가 당대의 불우함 때문이라는 아둔한 믿음을 버릴 수 없을 뿐이다.

어찌되었건,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가 예능으로 모든 것을 풀이할 수 있는 시대를 꾸역꾸역 살아냈다는 점이다. 지난 여름 촛불은 모이기만 하면 <1박2일> 일정이었고, 청와대에는 고소영/강부자/S라인 <패밀리가 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론노조는 <무한도전>이라 명명된 총파업을 하고 있다. 개인과 시대의 견딜 수 없는 불화, 하나의 꼭짓점에 모여든 모든 경계와 분노를 두고 한바탕 웃음으로 제쳐 버리지 않고선 도저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시간이다.

#.4

이제는 신화 수준으로 열반되는 것이 마땅할 <개그콘서트>는 지금이야 말로 주화입마에 들 순간이라는 호들갑이 난무할 때마다, 벌떡벌떡 일어서는 신묘한 재주를 선보이며 감히 추산하기 벅찬 위력적 내공을 보여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절대 예능의 시대의 단독자를 꿈꿨던 KBS, MBC, SBS의 영토 전쟁은 21세기 첫 10년의 대중 문화사를 마무리할 장면으로 기록될 ‘신적벽대전’을 전개했다.

절대 예능의 시대는 문자 그대로 자고나면 영주가 바뀌는 난전 중의 난타전이었다. 그리고 그 혈전은 다시 간결하게 압축하면 단 두 명의 이름이 남는다. 사상 최악의 지지리 궁상들을 이끈 강호동과 토요일에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들과 일요일에는 유사 가족들을 불러 모아 결국 뭐라도 해내던 유재석이다. 경망스런 비유일지 모르겠으나, 그건 나훈아-남진 이후 가장 볼 만한 승부였다.

#.5

그렇다. 올 한 해 시대는 가장 급박하고 강렬하게 ‘웃음’을 불러 세웠다. 웃음은 모든 경계와 분노를 일거에 해체한다. 따라서 시대는 언제나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그리고 어려움이 깊어질수록 계속 웃을 것을 강요한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웃음은 시대와 언제나 불화할 수밖에 없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끝끝내 당대와 화해할 수 있는 웃음 따윈 존재할 수 없다는 냉소는 나도 피하고 싶다. 하지만, 불우한 시대와 화해하는 웃음은 차라리 아니 웃는 것만 못함을 너무 오래 봐왔다. 올 한 해, 나도 당신도 웃었다. 그리고 지금 그 결산서를 받아들었다. 님들은 어떠신가? 받아든 결산서를 보며 또 마냥 웃을 수 있겠는가?

#.6

KBS의 수상 이후, 유재석이 나머지 대상을 탈 것이라 생각했다. 나 뿐만 아니라 누가 봐도, 마땅한 결론이었다. 나 역시 심각한 ‘무도빠’였나 보다. 내게 무도의 베스트는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무한도전보다 내일의 무한도전이 좀더 진일보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포기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것은 이 비루한 시대의 참담함과 그걸 마냥 속없이 웃어넘기고 있는 평균 이하의 내 비겁함에 대한 두려움, 자기 고백일지도 모르겠다. 엊그제, 김태호 PD가 마무리 짓지 못한 무도가 얼마나 속절없이 형편없어 질 수 있는지를 목격했다. 동시대 감각의 절대치 혹은 상식의 평균을 이해한 중요한 경험이었다.

▲ MBC 연예대상 사이트 캡처.
언론 총파업이 절정을 치닫던 순간, 예능 PD들의 불참 속에서 진행된 MBC 연예대상은 허술했다. 흔들리는 무대의 뒷배경은 유난히 눈에 거슬렸고, 시상자들의 잦은 실수는 한심한 수준이었다. 그 예고된 부실을 바라보며 김태호 PD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끝끝내, MBC마저 강호동을 선택했다. 무한도전이 ‘작품상’을 받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유재석에서 3연속 대상을 주기가 부담스러웠을까. 그 많던 수상자들 중에 유재석은 이문식과 함께 유이하게 파업자들의 부재에 대해 언급했다. 대상을 받은 강호동은 (물론, 그의 스타일이긴 하지만) 심각한 우뇌 사용자처럼 ‘대한민국이여 영원하라’를 외쳤다.

#.7

망측하지만, 강호동의 대상은 오히려 무도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든다. 파업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무도빠들이 강호동에게 대상을 안긴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만약, 유재석이 대상을 타고 유례없는 올바른 지지를 보내고 있는 무도빠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이 모든 영광을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김태호 PD와 파업 중인 아내에게 돌린다는 소감을 밝혔다면 어땠을까? 생각만으로도 짜릿하고 견딜 수 없이 불온하다.

#.8

그리고 또 한 명 김태호 PD, 그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를 또 뭐라 불러야 할까. 이미 오래 전에 평범한 PD 한 명의 위상을 훌쩍 뛰어 넘어선 그는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지금, <아고라> ‘파업원정대’의 아라곤쯤으로 여겨지고 있다. 얄궂은 운명이다. 그는 예능이란 매트릭스의 네오이고, 절대 예능 시대의 손석희 쯤 되는 위상이다. 제도적인 영역에도 쿨한 사람이 있고, 공적인 영역에도 올바른 사람이 있다는 상징으로 해석되고 있다.

대중의 문법에는 반드시 영웅이 필요하다. 조건 반사적 웃음이 있듯,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숙명적 선택의 시간을 맞아야 하는 누군가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그 개인에겐 가장 영예로운 축복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OUT-TRO>

또 하나의 연예대상은 끝났다. 웃지, 그럼 울어? 각설하고, 웃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상황 아닌가. 어느 민주 공화국에서 73개의 법률을 직권 상정하는 광경을 연출할 마음을 잡순단 말인가. 대한민국 평균을 고민하는 김태호 PD여, 올 한 해 정말 수고하셨다. 나의 망측한 상상은 흘리시고 그냥 편히 웃으시라. 유 반장이여, 어제의 그 호방한 웃음 진정 멋졌다. 이 비릿한 세상을 향해 그렇게 맘껏 웃자. 한껏 시대를 비웃자. 또 모두가 따라 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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