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디어스 독자들에게 보내는 연하장’ 기획은 한 해 동안 각양각색 칼럼들로 독자를 만나온 미디어스 칼럼진들과 함께 2008년을 돌아보면서, 새 기운으로 2009년 새해를 여는 다짐을 나눠보고자 마련했다.
내일모레면 새해로 넘어가야 하는 이때, 우리는 한나라당의 법안 단독처리를 앞둔 국회 대치 상황과 언론노조의 총파업과 촛불집회와 철야 농성 등에 직면해 있다. ‘충격과 공포’가 끊이지 않던 2008년의 마지막을 보내기가 이리도 힘겨운 것인지.
하지만 아무리 여의도 칼바람이 기승을 부려도, 새해 소망을 나누는 연말연시의 짬과 온기까지 그들(?)에게 빼앗길 순 없다는 미디어스의 그 맘을, 부디 독자 여러분은 알아주시길 바란다.

김주완ㆍ김훤주 ‘지역에서 본 세상’

독자에게 드리는 연하장 ―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기자

저는 원래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오는 것을 숫자 이상의 의미로 보지 않으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디어스 독자 여러분께 연하장을 써보라니 좀 난감합니다. 그래서 그냥 평소 하고 싶었던 말을 해보겠습니다.

저는 미디어스를 기존 ‘인터넷신문’ 이상의 ‘실험적 미디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종이매체에서 인터넷으로 공간을 옮겨간 ‘신문’이 아니라, 1인 미디어라 불리는 블로그와 인터넷언론의 결합을 모색하는 과도기적 형태의 매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미디어스는 처음 창간할 때부터 기사를 홈페이지에 ‘업로드’시켜놓고 독자가 읽어주길 기다리는 방식이 아니라, 블로그와 동시에 ‘포스팅’함으로써 다음블로거뉴스와 여러 메타블로그에 적극적으로 ‘발행’하는 실험을 해왔습니다.

이것은 흩어진 개인미디어로서 블로그에 취재력과 전문성, 그리고 공동작업을 보탬으로써 블로그의 전파력과 언론의 권위를 합쳐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로 이해됩니다.

물론 취재력을 갖춘 기자 여럿이 모여 팀블로그를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실험일 수 있지만, 칼럼을 쓰는 다양한 사람들까지 연결시키기엔 팀블로그가 적합하지 않을 뿐더러, 개인블로거들과 언론의 협업모델을 만들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저는 미디어스의 이런 실험을 관심깊게 지켜보면서, 블로그와 기존언론의 장점을 결합한 새로운 매체모델이 탄생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블로그를 시작한 것도 사실은 미디어스의 영향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제넘게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최근 다음블로거뉴스 대상을 둘러싼 ‘기자블로그’ 논쟁에서 미디어스는 ‘기존 언론’의 범주에서 빼주기를 블로거와 네티즌들께 조심스레 부탁해봅니다. 미디어스는 결코 기존 언론의 프리미엄을 이용해 블로그의 파이를 빼앗으려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블로고스피어의 파이를 확대, 발전함으로써 공존공영 모델을 실험해나가고 있는 아군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숫자에 불과하긴 하지만, 어쨌든 새해에는 심기일전하여 언론과 인터넷을 통제하려는 세력과 더 힘차게 싸워봅시다. 미디어스 독자 여러분, 파이팅!


김사은의 ‘라디오 이야기’

사랑하기에도 짧은 시간이예요 ― 김사은 전주원음방송 PD

제게는 아주 사랑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나의 도반이자 자매같은 아주 절친한 친구입니다. 우리는 시간만 나면 하루 종일 전화로, 메일로, 문자를 주고 받으며 시시콜콜 속내를 드러내놓고 울고 웃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고해성사하듯 일상을 보고하고 의논하고 의지합니다. 글로, 말로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해답이 보이고, 해답이 보이지 않을 때는 그녀가 쉽게 정리를 해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멘토’입니다.

그런 그녀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 30대 후반에 혹독하게 암과의 사투를 벌인 그녀는 달라진 인생관과 가치관으로 삶을 더욱 사랑하며 적극적이고 씩씩하게 살아왔지만 암세포가 신체 어느 부위에 전이되었다고 합니다. 그 소식조차 남 이야기처럼, 담담하게 전달하는 그녀의 표정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뛰어넘어 도의 경지에 이른 듯한 경건함마저 듭니다.

이후 나는 그녀에게 나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게 됩니다. 세상사 시시콜콜한 희노애락이 그녀에겐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어느 문제도 ‘삶과 죽음’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나는 그녀의 투병을 지켜보며 ‘그 교훈’을 배웠습니다.

나는 그녀가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겪고 있는지, 얼마만큼 살 수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질문을 하는 것 조차 두렵기 때문입니다. 나는 다만, 허투루 보낸 나의 하루가 그녀처럼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치열하게 하루 하루를 보내고자 합니다.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 누군가를 미워하고 감정을 소모하는 것도 낭비입니다.

한 해를 마감하며 애청자가 이런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올해가 아쉬운 사람은 열심히 산 사람이고, 올해가 만족스러운 사람은 성공한 사람입니다. 내년이 기다려진다면 당신은 무지 행복한 사람입니다.”

신은 우리에게 견딜 만큼의 고통을 주신다고 하더군요. 세상에 극복하지 못할 고난은 없습니다. 올 한 해 어떤 종류의 고난이 길목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와락 위협을 가할지 몰라도 들메끈 조이고 당당하게 맞서야겠습니다. 내 사랑하는 친구의 몫까지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웃고 더 열심히 사랑해야겠습니다. 2009년, 올 한 해 여러분의 가슴에 풍성한 사랑이 넘실거리길 기원드립니다.


김 석의 ‘미디어 책읽기’

연하장 ― 김석 KBS 기자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나날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냉혹하기만 합니다. 역사의 시계추를 수십 년 전 과거로 되돌리려는 위정자들의 집요한 손길에 한국 언론은 또 한 번의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지만, 이 엄혹한 상황을 타개할 돌파구는 쉬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인가 봅니다. 말 한 마디 내뱉고, 글 한 줄 써내려가는 일이 갈수록 힘들고 조심스러워 집니다.

미디어스에 ‘미디어 책읽기’라는 이름으로 글을 써온 지도 어느덧 1년이 되었습니다. 책을 통해 미디어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세상을 읽어내는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인 시각을 제시하고자 나름 애썼습니다만, 어줍지 않은 글 주변에다 번번이 감당하기 힘든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처음의 집필 의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다분히 자기만족적인 일일 겁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책을 잘 읽지 않는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부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게 용기를 준 건 커트 보네거트의 단호한 이 한 마디였습니다.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매체는 책밖에 없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제게는 끊임없는 반성과 자기 성찰의 길인 이유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거역하는 정권의 언론 길들이기가 주도면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이 시점에 언론 장악 시나리오의 정점이 될 공영방송 KBS에 몸담고 있는 내가 과연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것이 요즘 제게는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다.

수많은 촛불들이 KBS를, 공영방송을 지키자며 여의도 본관 앞을 환하게 밝혀준 그 순간에도, 우리 스스로는 늘 방관자였습니다. 고백합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더 바짝 정신을 차려야겠습니다. 오욕과 치욕으로 덧칠된 2008년 한 해는 그렇게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겠지만, 차갑고도 긴 겨울을 몰아내는 약동하는 생명의 봄기운처럼 희망과 결의를 새로이 다지며 다가오는 2009년을 기다리고자 합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윤성호의 ‘山만한 영화’

새해인사 ― 윤성호 영화감독

<히스토리에>라는 만화를 두근거리며 본 적이 있어요. 주인공은 터전을 잃고 반도를 전전하는 그리스 소년. 이 친구가 오랜만에 정착한 마을을 이웃 성의 호전적인 부족이 위협합니다. 이 친구는 분연히 일어서죠. 단, 적이 미워서가 아니라 옆의 누군가들이 소중하고 예뻐서 그 친구들과 계속 함께하고픈 마음으로 식량을 비축하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밤새 연못을 건너지요.

마찬가지. 우리의 소중한 사람들이 의료보장을 받고 의무교육을 받고 정당한 임금을 받고 심미안을 늘리고 의사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투잡 쓰리잡을 꾸리지 않아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할인매장에 가지 않아도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고 주말마다 산책을 하고 농구를 하고 수다를 떨고 경쟁이 아닌 휴식으로 연대할 수 있도록,

그러기 위해 사람들과 토론을 하고 설득을 하고 글을 쓰고 감시를 하고 시위를 하고 연명을 하고 영화를 만들고 회계를 보고 기사를 쓰고 방송을 하고 요리를 하고 목회를 하고 가구를 만들고 사막엘 가고 디자인을 해야겠습니다. 먼저 각자의 자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 되어서 내일과 내일 모레를 도모하도록 해봐요. 2009년 한 해가, 그렇게 절망이 아닌 오히려 새롭고 건강한 이념의 수요 [特需] 로 가빠지는 그런 날들이 되길 바랍니다. 꾸벅.

남상우의 ‘스포츠 프레임’

독자 여러분께 ― 남상우 체육교사

올 해 10월의 끝자락에 미디어스와 만났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만남이었지만, 그 만남이 독자 여러분들과의 만남을 이끌어주었습니다. 혼자 공부하면서 블로그질에 신나하던 내가, 미디어스와의 만남을 통해 홀로 공부하기를 넘어 같이 공부하기 위한 글쓰기를 할 수 있게 된, 뜻 깊은 한 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려운 일도 많았습니다. 해결해야 할 일도 많고요. 개탄할 일도 적지 않습니다.

2008년은 제게, 어려우면서도 즐거운 경험을 건네준 한 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시점에서 올 한 해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상투적이고 일상적이지만-그것에서 나름의 교훈과 비전을 발견해내는 작업,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2009년에는 모두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그 행복에 정말 미약하나마, 함께 했으면 합니다. 2009년엔 올 해 하지 못했던 ‘오늘의’ 문제에 보다 민감한 글쓰기로 여러분과 만나뵙겠습니다. 제가 공부했던 얄팍하나마 여러분께 도움이 될 수 있는 개인적인 지식을 보다 적극적으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그런 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황해윤ㆍ이광재 ‘낮은 목소리’

2008년을 보내며 ― 황해윤 광주드림 기자

노트북 컴퓨터에 띄워놓은 창을 닫다 K의 메신저 대화명이 눈에 걸립니다.
‘행복해졌으면’
여섯 개의 글자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항상 발랄한 K라 별 생각을 못했었는데…….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알기에 그 대화명이 더욱 아픕니다.

K에게 행복은 그런 것들입니다. 하루 12시간 식당일을 하고 100만원 조금 넘는 돈을 버는 함께 사는 늙은 어머니가 조금만 더 편안해졌으면. 낮은 임금과 불안한 미래에 늘 가슴 조마조마한 지금보다 조금 더 편안해 졌으면.

살아남기 위해 항상 누군가와 경쟁하면서 그런 삶이 ‘노력하는 삶이고 치열한 삶’이라고 믿어왔던 K는 이제 그런 경쟁이 싫다고 합니다. 그렇게 악착같이 살았어도 지금은 비정규직일 뿐이고 여전히 가난하고 미래는 불투명합니다. K는 하늘 한 번 올려볼 여유도 없이 살았습니다. 불안한 미래에 현재를 저당 잡힌 젊은 K는 이제 정말 ‘행복해졌으면’이라고 소망합니다.

2008년 우리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차피 모두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인데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분노할 일도 많았습니다. 앞으로 더 큰 한숨을 내쉬게 될 것 같습니다.

다가올 2009년은 어쩌면 모두가 시험대에 서게 될 수도 있습니다. ‘혼자 살아남을 것인가 함께 살아나갈 것인가’ ‘싸울 것인가 순응할 것인가’ 결정의 순간들이 시시각각 찾아오겠지요.

얼마 전 여수 무술목 바닷가에서 여명을 만났습니다.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마음속으론 자꾸 노래가사 하나가 맴돌았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대답은 할 수 없어도. 태양은 다시 떠오르겠지. 내일 우린 여기 없을 테니까~’

‘우리에게 내일이 있을까…’ 자꾸 비집고 들어오는 절망. 2009년에는 정말 절망이 수시로 비집고 들어오겠지요. 겹겹의 어둠이 벗겨지는 바다 앞에서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공평하지 않은 세상이 삶을 짓눌러도 가난한 사람끼리 서로 기대고 가면 될 일입니다. 무술목의 바다는 말합니다. 결국 우리의 어둠을 쫓는 건 ‘우리’라구요.

2009년에는 K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연하장 ― 이광재 광주드림 기자

서울에 한강이 있다면 광주엔 광주천이 있습니다. 한강만큼 넓고 길지는 않지만, 도심 속 수변공간은 시민들에게 좋은 휴식처입니다. 광주천은 남도를 적시며 목포까지 이어지는 영산강의 지류입니다.

광주시는 ‘광주천 자연형하천 사업’이라며, 매년 수십억 원의 예산을 쏟아 부으며 청계천 따라가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가 광주천이 내려다보이는 곳인데, 창밖으로 볼 때마다 긁어내고 콘크리트 붓고 물길을 막았다가 트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공사를 벌이는 업자들의 입장에선, 광주천은 ‘마르지 않는 샘’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광주천엔 이상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바다에서 보는 갈매기가 날아드는가 하면, 여름이나 겨울에만 보이던 철새들이 아예 눌러 사는 겁니다. 덕분에(?) 광주천에선 여름 철새인 왜가리와 겨울 철새인 청둥오리가 텃새들과 한 물에 노는 희한한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갈매기는 아마도 목포에서 영산강을 따라 거슬러 온 모양이고, 철새들의 텃새화 현상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기온 때문이겠지요. 여전히 탁한 광주천에서 고기를 잡아먹겠다는 왜가리 백로를 보면, 반갑다는 생각보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동물들의 ‘철 없는’ 행동은 결국 사람들이 불러온 것일 테지요. 저를 포함한 사람들의 행위가 새해엔 또 어떤 형태로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게 될지 걱정입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자연에 대한 걱정을 하는 사람은 ‘배부른 사람’으로 치부되기 쉽겠습니다. 경기도 어렵고, 나라도 어지럽고, 많은 것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새들까지 챙긴다는 게 쉽지 않겠죠.

그래도 눈길 가지 않는 곳의 작은 변화에 대해, 지금 관심을 갖지 않으면 어느 순간 큰 후회를 할 수 있겠죠. 반대로 작은 노력은 어느 순간 큰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겠죠.

미디어스 독자 여러분, 크고 작음에 대한 균형있는 시각과 함께 새해엔 더욱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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