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24일 테러방지법의 국회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야당이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이어가고 있는 것과 관련, “이것은 정말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들”이라고 야당을 비난했다. 무식한 반민주적 망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필리버스터에 대한 박대통령의 반민주적 발언이야말로 ‘기막힌 현상’이다.

국회에서 소수파가 다수파의 입장에 반대할 수 있는 최후의 합법적 민주적 수단이 필리버스터이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댓글공작 등으로 선거 개입해 수많은 파문과 분란을 일으키고, 이후에도 고질적인 민간인 사찰의 못된 습성을 버리지 않은 국정원을 ‘스스로 개혁하라’며 ‘셀프개혁’이라는 면죄부를 줬던 박대통령. 또 다시 ‘죄 많은 국정원’에게 ‘더 많은 죄’를 범할 수 있는 ‘법원의 영장발부 없이 할 수 있는 정보수집권’을 부여하려고 하는 이 ‘기막힌 현상.’ 그리고 박대통령의 반민주적 망언에 가까운 ‘기막힌 현상들’과 같은 ‘기막힌 발언’에 가슴이 먹먹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제8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이라는 발언이다. 국회선진화법을 주동적으로 만든 이들 중 한 명이 박 대통령 자신이다. 그 법 안에 필리버스터가 있다. 기억을 못하나? 몰랐나? 그리고 미국에서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와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뛰고 있는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도 필리버스터로 의회에서 합법적 반대를 했던 기록이 버젓이 존재한다.

샌더스는 지난 2010년 12월 10일 정부의 부자 감세에 반대해 8시간 37분 동안 연설을 했다. 크루즈 후보도 2013년 9월 미국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건강보험 개혁안을 막고자 21시간 19분에 걸친 긴 연설을 했다.

신문만 훑어보아도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막힌 현상’이 아니라, 박대통령이 그토록 좋아해서 중국과 적대적 관계까지 감수하면서 ‘사드’ 협상을 벌이고 있는 미국에서도 자주 있는 ‘일상적 현상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무식하면 용감한가? 그것이 알고 싶다.

적어도 대통령이면 현재 여야가 첨예하게 다투고 있는 테러방지법의 쟁점에 대해 설명하면서 국민을 설득하고 야당의 협조를 구하거나, 아니면 여야 지도부가 보다 전향적으로 재협상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입만 열었다 하면 독재자 마냥 국회를 향해 명령하고 야당을 향해 협박 비난하며 남 탓하면서 사실관계까지 왜곡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보면, 이젠 정말 지겹다. 웬만하면 이제 좀 자성하는 시간도 가지는 대통령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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