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실험과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 침범 등 잇따른 ‘도발’ 이후 정부가 남북협력의 최후 보루로 여겨지는 개성공단을 ‘전면중단’하면서 남북관계는 점점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영방송 KBS가 “우리도 북한에 대항해 핵 무장하자는 응답이 50%가 넘었다” 등 위기 상황을 고조시키는 설문조사를 발표하고, 구체적 증거 없이 “개성공단 자금이 핵 개발에 사용됐다”는 통일부 홍용표 장관 주장도 비중 있게 보도하는 등 ‘위기감 조성’에 힘을 싣고 있다.

KBS 메인뉴스 <뉴스9>는 14일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촉발된 남북 긴장과 관련해 강경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며 최근 안보와 정치 현안에 관한 긴급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KBS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북한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물었다.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응답이 40.1%로 가장 높았고 경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30.9%로 그 뒤를 이었다. 북한 핵 시설 제거를 위한 군사적 수단까지 검토하자는 응답은 18%,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응답은 7.7%였다. KBS는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 가장 높게 나왔는데도 ‘경제 제재 강화’와 ‘군사적 수단까지 검토’ 응답률을 묶어 “강경 대응 입장이 48.9%”였다는 내용을 우선적으로 보도했다.

▲ 2월 14일 KBS <뉴스9> 보도

북한 핵 위협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는 한반도 비핵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41.1%로 가장 높았다. 핵무기를 독자 개발해야 한다는 응답은 29.3%, 미군 전술 핵을 재배치해야 한다는 응답은 23.2%였다. KBS는 이때도 핵무기 독자 개발 및 미군 전술 핵 재배치 응답률을 묶어 “우리도 핵 무장을 해야 한다는 응답이 50%를 넘었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KBS 여론조사 결과는 논란이 되고 있는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THAAD) 배치나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 결정에 대해서도 정부입장을 지지하는 응답이 높았다. <뉴스9>는 “사드배치는 찬성이 67.1% 반대가 26.2% 로 찬성 의견이 2배 넘게 많았다. 개성 공단 가동 중단 조치 또한 잘한 일이다가 54.4%로 계속 가동해야 한다(41.2%)는 의견보다 10% 포인트 이상 높았다”고 전했다.

이 여론조사는 KBS와 연합뉴스가 (주)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13명을 대상으로 2월 11일부터 2월 12일까지 유·무선 RDD 전화 방식을 통해 조사한 내용이다. 응답률은 10.1%였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였다. 1013명의 응답자 중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인 연령대는 60대(276명)였다. 40대(210명), 50대(199명) 등 중장년층의 비중이 높았던 반면 20대 이하와 30대는 각각 163명, 165명에 그쳤다. 중장년층의 견해가 과대표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짧은 리포트 시간 때문이었을까, 이 같은 내용은 별도로 언급되지 않았다.

구체적 증거 제시 못한 ‘민감 발언’도 여과 없이 보도

KBS는 또한 그동안의 개성공단 자금 70%가 북한 당 서기실 등에 상납돼 핵 개발 등에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는 통일부 홍용표 장관의 발언을 자세히 보도했다.

14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한 홍용표 장관은 “(개성공단에 지급된) 돈 중 70%가 서기실 등으로 전해져서 쓰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면서 “서기실이나 (노동당 중앙위원회 산하) 39호실로 들어간 돈은 핵무기, 미사일 개발, 치적 사업 등에 쓰이고 있다는 것이 파악되고 있다”고 밝혔다. 홍용표 장관은 “관련자료는 정보자료라서 공개하기 어렵다”며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지만 KBS는 메인뉴스 <뉴스9>에서도 2번째 리포트로 이 소식을 전했다.

▲ 2월 14일 KBS <뉴스9> 보도

홍용표 장관의 발언은 ‘개성공단 임금 지급액의 70% 정도가 순수하게 북한 근로자 몫으로 돌아간다’는 역대 정부의 공식 견해를 뒤집는 발언으로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니다. 북한 핵 실험이 시작된 2006년 이후, 이명박 정부~박근혜 정부에서도 정부의 공식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충분한 근거 제시도 없이 ‘북풍몰이’에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더구나 홍용표 장관의 주장대로라면 ‘대량 현금 등의 대량파괴무기 전용 우려가 있을 시 신고할 것’을 UN 회원국의 의무로 결정한 UN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2094호를 위반했다는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다. 그간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 임금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쓰인다고 보고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KBS는 “정부 고위 당국자가 개성공단 자금의 전용 경로와 규모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고 “홍 장관은 특히, 정부가 여러 경로를 통해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상납 자금이 핵무기 개발 등에 사용됐다고 거듭 강조했다”면서 홍 장관의 발언에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KBS는 북한이 7일 쏘아 올린 발사체를 두고도 ‘미사일’이라는 표현을 썼다. 로이터,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외신들이 “한미 두 나라 등이 미사일 발사 기술에 적용될 로켓을 사용”, “UN이 북한의 위성 발사도 제재 대상으로 결정했다” 등의 설명을 덧붙여 ‘장거리 로켓’(Long range rocket)이라고 보도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MBC·TV조선·채널A·MBN·YTN도 ‘장거리 미사일’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13일 발표된 총선보도감시연대 보고서는 “미사일과 로켓의 차이는 발사체 꼭대기에 탄두를 실었는지 여부, 그리고 발사 후 궤도 조정 가능 여부로 나뉜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위성 발사로 통보했고 탄두 장착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서 군사용 미사일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부정확한 정보를 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언론은 확인된 사실을 기반으로 용어를 확정해야 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남북 대치 국면에서 ‘뭔가 일이 벌어질 것처럼’ 위기감을 조성하는 것은 주로 북한의 관영매체 조선중앙TV의 몫이었다. 그러나 ‘미사일’ 표현 고집, 우리의 핵 무장 필요성을 강조하는 설명을 곁들인 여론조사 발표 보도, 큰 파장이 예상되는 ‘민감 발언’을 면밀한 검증 없이 내보내는 일련의 행태를 볼 때 ‘공영방송’ KBS도 크게 다른 보도를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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