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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본분 금메달>, 그냥 ‘아이돌 괴롭히기’였다[기자수첩] 공영방송 KBS가 걸그룹을 소비하는 방식
김수정 기자 | 승인 2016.02.12 19:25

그야말로 ‘아이돌 홍수’의 시대다. 1년에만 수십 팀의 아이돌이 데뷔하고 사라진다.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진다. 아예 ‘국민이 만드는 아이돌’이란 컨셉으로 101명의 연습생들의 순위를 매기는 프로그램까지 나왔다. 이미 높아진 대중의 시선에 ‘1/n’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로 각인되기 위해 아이돌은 보이는 곳에서든 보이지 않는 곳에서든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한다.

문제는 이 같은 약자의 위치를 고약하게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는 것에서 온다. 특히 누군가를 주목해서 비춰주기도, 철저하게 소외시킬 수도 있는 ‘힘’을 가진 방송이 이런 흐름에 앞장서고 있다. 누가 봐도 가학적인 상황을 만들어 놓고 ‘다 웃자고 하는 예능’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 2월 10일 방송된 KBS <본분 금메달>

지난 10일 설 연휴에 방송된 KBS <본분 금메달>은 현재 방송계가 아이돌을 어떻게 바라보고 소비하고 있는지, 그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모든 분야에 다재다능한 ‘만능 엔터테이너’가 추앙받는 세상! 정작 가장 중요한, 자신의 본분은 얼마나 잘 지키고 있을까?”라며 “베일에 싸인 미션 수행을 통해 화려한 이면의 진솔한 속내를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을 자처하고 나섰지만, ‘진솔한 속내’ 대신 ‘불편한 웃음’만이 가득했다.

‘본분 찾기’ 명목 하에 이루어진 다채로운 ‘아이돌 괴롭히기’

<본분 금메달>은 출연한 아이돌 그룹 멤버들에게 이른바 ‘비주얼 유지 테스트’, ‘정직성 테스트’ ‘분노 조절 테스트’, ‘상식 테스트’를 진행한 다면서 이와는 관계없는 ‘몰래카메라’ 류의 진짜 미션을 연출했다. “당신이 몰랐던 숨겨왔던 무허가 테스트를 지금부터 공개”,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이미지 관리가 가능할지 바로 확인 들어갑니다” 등의 자막과 편집을 통해 ‘여기가 웃어야 할 지점’이라고 친절히 알려주기도 했다.

이 숨은 미션들은 대부분 ‘아이돌 괴롭히기’로 수렴했다. 가장 악질적인 것은 ‘정직성 테스트’였다. “아이돌의 본분은 무엇보다 정직”이라는 거창한 구호 아래 최소한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몸무게를 쟀다. 그러고는 프로필 상 몸무게와 실제 몸무게를 비교해 오차가 얼마나 나는지 따져 순위를 매겼다.

졸지에 시청자들 앞에 ‘몸무게 강제 공개’를 당한 피해자는 출연한 아이돌인데도, <본분 금메달>은 몰카에 당했다는 분노보다는 왜 프로필보다 실제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지에 대해 해명(?)하는 아이돌을 비추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몸무게가 프로필보다 많이 나간다는 사실은 단숨에 ‘죄송한 일’이 되어버렸다.

   
▲ 2월 10일 방송된 KBS <본분 금메달>

‘예능’이자 ‘방송’이라는 명목 하에 괴롭힘이 지속되는 판이 깔리자, MC들은 아이돌을 더 궁지에 모는 진행 솜씨를 뽐냈다. 몸무게 차이에 대해 “화장실 한 번 갔다 오면 2kg는 빠진다”고 항변하자 MC 김구라, 전현무는 “2kg은 인분 수준이네”, “3번은 갔다 와야겠네”라며 무안을 주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몰카에 대한 문제의식은 표현될리 만무했다. ‘몰카 촬영’에 대해 항의하는 아이돌에게 대수롭지 않은 듯 “이거 속이는 프로다”, “그렇게 한꺼번에 움직이실 거면 노조를 설립해서 KBS에 대항하세요”라고 대꾸하는 MC와 패널들의 발언은 <본분 금메달>이 지향하는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과 거 MBC <뉴스데스크>의 PC방 전원 차단 실험을 떠올리게 하는 ‘분노 조절 테스트’도 있었다. 음료수 캔 탑을 쌓는 미션을 수행 중인 아이돌을 갑자기 큰 소리를 내는 방식 등으로 집중력을 흩뜨려 제작진이 집요하게 방해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제작진의 방해 때문에 미션 달성에 실패해 아이돌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를 보인 것처럼 편집됐다. 반면 미소를 잃지 않은 아이돌에게는 “실패해도 웃을 수 있고 어떤 고난이 와도 이겨내는 분노 조절의 달인”이라는 수식을 붙여 치켜세웠다. “아 정말 보살”이라는 평가와 금, 은, 동메달도 ‘상’으로 수여됐다.

공영방송 KBS가 걸그룹을 소비하는 방식

제작진이 원하는 것은 놀라우리만치 일관되고 분명했다. 체제 순응적인 아이돌에게는 ‘칭찬’이라는 보상을 수여하면서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는 아이돌을 ‘응징’하는 것으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어떤 대리만족을 느끼도록 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 다른 또래와 달리 학교에 잘 나가지 못했거나, 외국인 출신이거나 하는 등의 특수성은 당연하게도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중국 묘족 출신 피에스타 차오루가 한국 속담을 못 맞춘 것도 관용과 이해의 대상이 되기 보다는 그저 비웃음의 소재로 소비됐다.

숨은 테스트뿐 아니라 겉으로 보이는 테스트 역시 언론과 사회가 걸그룹에게 요구하는 ‘비정상적’이고 ‘모순된’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제작진은 정직성 테스트에서 몰래 몸무게를 재기 위해 아이돌들에게 ‘섹시 포즈 취하기’와 180초 동안 ‘섹시댄스 추기’를 요구했다. 체감온도 영하 13도의 추운 날씨에 대부분 외투 없이 무대의상만 입은 아이돌은 3분 동안 꼼짝없이 추위와 맞서며 춤을 춰야 했다. 얇은 스타킹에 핫팬츠를 입었든, 크롭티를 입었든 상관없었다. “요염한 섹시미”, “어떤 음악에도 멈출 수 없는 섹시댄스”, “뇌쇄적인 눈빛”,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섹시”… 걸그룹을 ‘당연히’, ‘마땅히’, ‘말할 필요도 없이’ 섹시해야 하는 존재로 묘사한 요란한 자막들은, 이미 고착화된 뒤틀린 역할규범에 다시 한 번 도장을 꽝꽝 찍었다.

<본분 금메달>은 원초적인 방법까지 동원해 아이돌들을 괴롭혔다. 몰카 설정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상황’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편집을 통해 ‘굴욕샷’까지 선사한 것이다. 놀라서 일그러진 아이돌 얼굴을 클로즈업해 슬로우 모드로 반복 재생하는 화면을 보고, MC들은 “투턱 투턱(턱이 접혔다는 뜻)”이라며 괴롭힘을 거든다. 가학과 예능용 웃음 유발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빈곤한 상상력 속 점점 더 고통스러워지는 ‘아이돌 예능’

<본분 금메달>의 이런 폐해가 단지 일회적이지 않다는 것에서 더 큰 문제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MBC <아육대>(아이돌 스타 육상선수권대회의 준말이었으나 현재는 육상, 풋살, 씨름, 양궁까지 확대됐다)의 대히트와 점점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아이돌 공급 상황이 맞물린 이후, 방송사들은 명절 때마다 주요 프로그램에 아이돌을 전진배치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점은 잦은 부상과 지나치게 긴 녹화 시간 등 <아육대>가 비판 받는 지점을 오히려 벤치마킹해, 아이돌에게 더 부담을 지우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제목에서부터 그 압박감을 가늠할 수 있는 SBS <사장님이 보고 있다>(2월 6일 방송)는 무려 ‘소속사와 사장님의 명예’를 걸고 출연한 아이돌이 괴롭힘과 압박을 견디는 내용의 프로그램이었다. 여기에 출연한 아이돌들은 매트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닭싸움을 해야 했고, 장난처럼 엮는 러브라인을 견디면서도 ‘통편집’의 위협을 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모든 사원은 회사의 이윤과 명예를 위해 몸 바쳐야 한다!”는 관념을 전제한 <사장님이 보고 있다>는 괴롭힘 당하는 아이돌에게 두 배의 부담을 얹어줬다는 점에서 나름 새 길을 개척했다.

   
▲ 2월 10일 방송된 KBS <본분 금메달>

<본분 금메달>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제작진은 “어떤 상황에서도 웃어야 하는 숙명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여자아이돌을 눈요기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녹화현장 역시 분위기가 굉장히 화기애애했다고 주장했다. 결코 답이 될 수 없는, 그마저도 성의없는 답변이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이 지나쳤을 수도 있고, 애초에 ‘아이돌’과 ‘예능’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문제의 결과가 아이돌을 괴롭히는 걸로 귀결된 것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뒤틀린 의식이 반영돼있는 걸로 보인다. <본분 금메달>의 교훈은 역설적이게도 이 대목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사회 전체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 아닌가.

김수정 기자  girlspeac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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