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를 꿈꾸는 사람이 많은 만큼 연기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교, 학원, 선생님만 해도 상당하다. 오히려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는 이유로 전국의 있는 연극영화과들이 정원 축소 및 통폐합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 연기를 가르친다는 또 하나의 학교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 학교의 교장 및 선생이 배우 박신양이고, 그에게 연기를 배우기 위해 찾아온 학생들은 제법 이름 있는 연예인이다. 그 중에는 이원종처럼 오히려 학생들에게 연기를 가르쳐야할 것만 같은 중견 배우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나이는 2살 어리지만 배우로서는 선배인 박신양에게 연기를 다시 배우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한다.

▲ tvN 새 예능 '배우학교

4일 첫 방영한 tvN <배우학교>는 예능임에도 예능 같지 않은 예능이다. 박신양이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에게 연기를 가르치는 상황이 프로그램의 골자인 만큼, <배우학교>에서 전면으로 내세우는 소재는 ‘연기’이다. 그런데 TV 드라마를 틀면 늘 보이는 ‘연기’가 예능에서는 유독 낯설게 다가온다. 물론 리얼을 강조하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출연자에게도 어느 정도 ‘연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연기는 드라마, 영화뿐만 아니라 대부분 프로그램에 알게 모르게 필요한 덕목이다. 비단 방송, 영화 출연을 업으로 삼는 연예인들뿐이겠는가. 언제부터인가 연기와 전혀 관련 없는 분야에 속하는 정치인이 되는 데 있어서도 탁월한 연기력이 필수가 되어버린 듯한 세상이다.

일단, 연기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개념은 가상의 캐릭터를 배우의 육체, 목소리를 빌려 형상화시키는 작업이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표현해야 하는 연기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강해 보인다. 하지만 박신양은 연기를 잘하기 위해서 학교를 찾아온 학생들에게, 자기가 누구이고 연기를 배우고 싶어 하는 이유를 정의하게 하는 시간을 갖게 하여 학생들 전원을 멘붕에 빠트린다.

▲ tvN 새 예능 <배우학교>

막상 어렵게 발표를 한 이후에도 박신양의 질문 공세를 피할 수 없었다. 학생들의 발표에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박신양의 주된 지적이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비교적 말을 잘하는 축이었던 유병재 또한 정작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지 못한다. 연기를 배우러 온 학생이기 이전에, <배우학교>라는 예능에 출연한 연예인으로서 그 속에서 어떻게 캐릭터를 잡아야하고,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질까하는 생각들이 정작 그의 진짜 이야기를 망설이게 한다.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것. 좋은 연기자, 대중에게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어서 어렵게 <배우학교> 문턱을 두드린 학생들은 첫 관문에서부터 자신이 알던 연기의 정의와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박신양의 교육법에 충격을 받는다. 이는 <배우학교>에 참여한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그 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들도 예상치 못했던 지점이었다.

연기 교습을 주제로 한 새로운 예능을 기대했던 이들에게, 배우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가져야할 진지하고도 솔직한 자세를 주문하는 <배우학교>는 상당히 놀랍고도 불편하게 다가온다. 특히나 연기를 배우지 않았다 해도 교수와의 면담, 취업을 위한 인터뷰 등에서 박신양의 수업방식과 비슷한 경험을 겪은 이들이라면, 박신양의 거듭된 질문에 어쩔 줄 몰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을 법하다.

▲ tvN 새 예능 '배우학교

박신양은 자기소개를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자신을 내려놓고 그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욕구와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낼 것을 주문한다. 하지만 최근 방송 트렌드가 ‘리얼’을 넘어 ‘쌩리얼’을 추구한다고 한들, 진짜 자기 이야기를 방송에서 말하는 것은 어렵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기보다, 세상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 인정받고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이 최선의 삶으로 꼽히는 분위기에서는 더더욱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그런데 박신양은 세상 그 어떤 행위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의도가 다분해 보이는 연기 수업을 앞두고, 자신이 누구이며 왜 연기를 배우려고 하는지 스스로를 증명하게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남에게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솔직해지는 것. 연기를 가르치고 배우기 위해 만들어진 학교라고 하나, 배우를 꿈꾸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학교가 아닌 듯하다. 획일화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본래 모습을 숨기면서 타인과 차별화시킬 수 있는 자신의 개성을 찾는 데 애를 먹는 사람들에게, 그간 감추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그 속에서 스스로 자신을 찾아보게 만드는 진짜 학교가 우리 곁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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