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다.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 물론 사전적인 의미는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이런 단어를 쓰는지. 하지만 그 상황이 그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일지는 나는 알 수 없었다. 정호승 시인이 <수선화에게>에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했을 때도 시의 느낌이 참 좋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작 외로움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때문에 찬바람이 불어오고 저마다의 약속으로 밤거리가 분주한 계절에, 웃고 떠드는 사이로 비춰지는 사람들의 쓸쓸한 표정들도 나한테는 왠지 내가 경험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이해됐었다.

1.3평 독방에도, 감옥 밖 넓은 세상에도 내 자리는 없었다

2007년은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 한 해였다. 때문에 2008년을 맞이하는 나의 느낌은, 마치 우천으로 중단되었던 야구경기가 다시 재개되었는데 몇 회였는지 기억은 안나고 선발투수는 이미 너무 쉬어서 어깨가 식어서 교체가 필요한 상황의 느낌이었다. 무언가 연속적인 인생의 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느낌은 없었고 갑자기 기억해내야 하는 예전의 감각같은 것처럼 불쑥 2008년이 나에게 왔다. 그것은 전혀 새롭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익숙하지도 않은 내 모습을 기억하는 일이었다. 그 당시 나를 감싸고 있던 감정 중 가장 큰 에너지를 가진 것은 ‘외로움’이었다.

스물 일곱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나의 친구들이었다. 가족들이었다. 나는 전생에 복이 많았던지, 제법 많은 친구들에 둘러싸여 심심하거나 지루할 틈이 없이 청춘을 즐겨왔었다. 그리고 병역거부를 하고(아마도 내 친구들이 나를 응원해준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이 결심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감옥에 갇혀있는 1년이 약간 넘는 시간 동안, 난 외로움이 무엇인지 알아버렸다. 그것은 좁디 좁은 1.3평 독방 안에 내 있을 자리가 없다는 뼈저린 자각이었고, 감옥 밖 넓은 세상에도 내 자리가 없다는 서글픈 깨달음이었다. 방안에서 생명을 가진 유이한(나머지 하나는 내 목숨이었다) 국화 화분이 말라죽어가고 있었다. 물론 친구들의 편지가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왔지만 그토록 철저하게 혼자임을 느낀 적은 없었다. 감옥 안에서도 얼굴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원래 외로움이란 것은 아무도 없는 황량한 사막에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거리에서 다가오는 감정이었다.

2007년보다 더욱 커진 외로움, 2008년

그리고 출소와 함께 찾아온 2008년, 나는 지독한 외로움을 감옥 한 구석에 남겨두고 나오기를 바랐다. 그토록 바라던 나의 친구들과 가족들 사이로 돌아왔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외로움이라는 단어도 2007년과 함께 기억 저편에 묻어두고, 그 의미를 몰랐던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미 알아버린 인생의 비밀은 되돌릴 수 없었다. 때마침 루시드폴의 새 앨범을 들었다. 그는 그 차분하고도 깊게 고요한 목소리로 ‘혼자라는 게 나를 죄인으로 만드네’하며 노래 불렀다. 그 순간 그토록 참아왔던, 1년이 살짝 넘는 외로움의 세월도 참아낸 나의 두 눈에서 눈물 같은 것이 외롭게 떨어졌다.

▲ 루시드폴 ⓒ안테나 뮤직
나는 미친듯이 외로움을 탐닉하지도, 외로움에 맞서서 결연하게 싸움을 걸어보지도 못했다. 그저 누군가 구원처럼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기를 바랐다. 아마도 많은 친구들이 심상치 않은 나를 보고 걱정어린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김연수의 소설 제목처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라고 나에게 말해주는 목소리를 기다렸었다. 지독한 외로움을 끝내 외면한 것은 친구들의 손이 아니라, 내가 인간이라는 변치 않는 사실이었다. 그 무렵 나는 체념처럼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결국엔 살아가기 위해서 받아들여야만 했다. 감옥보다 더 차갑던 사무실에서 쓸쓸히 보낸 겨울의 시간동안에, 그토록 외롭던 2007년보다 어쩌면 2008년이 더욱 외로울 거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확실히 2007년은 그 어느 해보다도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을 많이 받은 한 해였다. 비록 육체의 물리적인 거리는 심하게 멀었지만, 손으로 꼭 꼭 눌러쓴 편지에 담긴 마음은 외로웠던 시절을 버텨내는 커다란 힘이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갔다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맞이한 2008년은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큰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듯이 마치 어제 만났던 것처럼 친구들이 나를 대해주기를 바라면서도,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들었고, 나의 외로움이 마치 그 소심한 마음에서 기인한다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서서히 예전과는 달라진 외로운 나의 삶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때로는 생전 안 해 본 소개팅도 해보는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지만, 아마도 내가 극복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포기였을 것이다. 그것은 외로움에 대처하는 가장 수동적인 방식이었다. 언젠가 폭발할 것을 알면서 지금 당장 버거워 치워버리는 시한폭탄 같은 거였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가고 있었다. 촛불집회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2008년을 촛불 속에서 찾아내고 있었다. 그 촛불의 바다 속에서도 나는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배처럼 자유롭고 또 외로웠다.

너의 외로움이 나를 위로할 때

위안이 되었던 것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외로움이었다. 이길준을 만나게 되었다. 현역전경인데 병역거부를 하고 싶다고 우리를 찾아온 한 젊은이가 그동안 폐쇄된 전경부대 안에서 얼마나 외롭게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지, 그 외로움을 예사롭게 넘길 수가 없었다. 시민들을 진압하면서 헬멧 속에서 보이지 않게 혼자서 울었다는 그 친구의 농성을 좀 더 지켜주지 못해 마음이 아팠다. 사람들은 이길준에 대해서 엄청난 지지를 보냈지만, 그가 감옥 안에서 짊어져야할 가장 원초적인 외로움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한 움큼의 외로움을 간직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 아마 이맘 때 쯤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알고 있는 소박한 진실을 서른을 앞둔 나이에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2008년은 아주 뜨거운 의지들이 정면으로 충돌해서 폭발했던 한 해였던 만큼, 그 눈부심 속에서 때로는 자기도 모르게 감춰왔던 외로움들이 여기저기 나부끼고 있을 것이다. 홀로 외롭게 싸움을 이어가던 기륭전자의 노동자들도, 사람들이 한 점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영세 사업장의 노동자들도, 일제고사에 대한 선택권을 학생들에게 줬다가 어처구니 없는 해고를 당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선생님들도 다들 저마다의 외로움이 가슴 한켠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얼마나 가졌느냐 혹은 얼마나 정치적인 지지를 받느냐와는 별개로 못내 버릴 수 없는 외로움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스스로의 외로움에서 시작하여 다른이들도 외롭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다. 누군가의 외로움을 커다랗게 포장하여 영웅처럼 다룰 필요도 없다. 나 또한 세상 누구 못지않게 충분히 외롭고 또한 그 누구도 나만큼 외로울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지독히 외로운 겨울과 나의 외로움을 비교하는 바보같은 짓을 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의 관심에 일희일비했던 소심한 외로움 따위도 끝내 떨쳐버릴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나의 생명의 근원이 아님은 잘 알겠다. 그래. 혼자라는 게 지울 수 없는 낙인처럼 내 가슴에 박혀, 나는 살아가는 게 죄스러운 외로운 죄인이다. 그래도 괜찮다. 모두가 그런 걸.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추운 겨울 누군가의 외로움을 나 또한 공감할 수 있다는 작은 위안이면 충분하다. 2008년 나는 ‘외로움’을 발견하였고, 아직은 서툴지만 외로움에 대처하는 편안한 자세를 찾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ps) 제목은 김연수의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차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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