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신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담화를 했다. 1시간 30분이라는 장시간이 소요됐다. TV조선 등 종편은 “담화문만 A4 11장 분량”, “13명의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은 원고지로 옮기면 100장까지 되지 않을까”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능력을 추켜세웠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누구도 ‘소통’의 일환으로 보지는 않는다. 청와대는 기자회견 이후 질의응답 시간에 즉석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답변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기자들의 질문 순서와 내용 모두 사전에 짜여진 시나리오대로 진행됐다.(▷링크) 각본대로 진행되는 질의응답임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동문서답을 하거나 답변이 누락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다시 질문하는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 기자들이 취재를 하는 주체가 아닌 연출자가 돼버린 셈이다. 청와대 기자단 무용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날 기자회견이 ‘대국민담화’라는 형식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어떤 말로 미화를 하더라도 결국에는 대통령이 사회적 이슈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형식은 여러 사회적 이슈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 입장의 ‘단순전달’ 그 이상이 되지 못한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이 같은 일방통행식 담화와 기자회견의 내용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문제를 제기해 균형을 맞춰야 하겠지만, 방송뉴스의 경우 이런 일을 포기한 지 오래다.

SBS에 대한 물음…‘파견법’은 야당과 노동계가 반대 안하나

SBS <8뉴스>는 이날 <“기간제법 뺀 노동 4법이라도..”> 리포트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일자리 문제의 시급성을 강조하면서 노동 관련 5개 법안 가운데 ‘기간제 법안’을 제외한 4개 법안이라도 꼭 처리해 달라고 국회에 촉구했다”라고 보도했다.(▷링크)

▲ 1월 13일 SBS '8뉴스' 리포트

박근혜 대통령 담화에서 그동안 정부의 입장과 크게 다른 부분은 노동개혁 관련 법안에 대한 입장이다. 청와대는 그동안 이른바 ‘노동개혁 5법’(<근로기준법>과 <산업재해보상법>, <고용보험법>, <기간제법>, <파견법>)의 처리를 위해 연일 국회를 압박했다. ‘국가비상사태’ 운운하며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랬던 박근혜 대통령이 갑자기 “노동계에서 반대하고 있는 기간제법과 파견법 중에서 기간제법은 중장기적으로 검토하는 대신, 파견법은 받아들여주시기 바란다”며 우선 ‘노동4법’의 우선 처리를 거론했다. SBS로서는 주목할만한 부분이겠으나 보도 내용은 ‘왜곡’에 가까웠다.

SBS는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개혁은 한시가 급하다며, 법안처리가 계속 미뤄지면 경제의 불씨마저 꺼질 거라고 말했다”며 “노동계와 야당이 반대하는 기간제 법안은 중장기 과제로 넘길 테니, 나머지 4개 법안은 이달 국회에서 꼭 처리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노동계와 야당이 반대하는 기간제법’이라면서 노동계와 야당이 <파견법> 또한 반대하고 있다는 점은 교묘하게 가리고 있는 셈이다.

SBS뉴스에서 <파견법>은 박근혜 대통령의 입을 빌려 “재취업이 어려운 중장년에게 일할 기회를 주는 법”이라고만 표현된. 하지만 <파견법>은 현행 파견인력을 금하고 있는 제조업 분야(뿌리산업 등)에도 파견을 허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주요 골자다. 제조업 뿐만이 아니다. 박<파견법 개정안>에 따르면 ‘기자’ 또한 파견대상에 포함된다. 한 마디로 파견의 범위를 넓히자는 것으로 ‘고용불안’ 문제가 대두될 우려가 심각하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는 해당 리포트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한국노총이 이와 관련해 지난해 노사정 합의의 파기를 선언했지만 SBS는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없다”는 박근혜 대통령 발언만 보도했다.

사드배치 검토하겠다는 박근혜, 그냥 전달만 한 KBS

이날 기자회견의 또다른 포인트 중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해 기존과 다른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KBS <뉴스9>는 <박근혜 대통령 “안보·국익 따라 ‘사드’ 배치 검토”> 리포트(▷링크)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안보와 국익에 따라,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 1월 13이라 KBS '뉴스9' 리포트

박근혜 대통령 담화와 기자회견에서 ‘안보’와 관련한 내용은 큰 비중을 차지했다. 북한의 핵실험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드 배치에 대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감안해 가면서 안보와 국익에 따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한국정부는 ‘사드 배치’에 있어서 유보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중국의 입장 등을 고려한 행보였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이제 사드 배치를 “검토하겠다”고 발언했으므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하지만 KBS 뉴스에는 이에 따른 우려와 문제의식이 드러나지 않았다.

KBS는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대해 명확한 원칙을 밝혔다”며 관련 녹취를 그대로 보도했다. 이어,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달라진 안보 상황을 고려해 사드 배치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언급했듯 ‘사드배치’는 간단한 볼 사안이 아니다. 사드가 북한의 핵미사일 등에 대한 실효적 대응책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오히려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편입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느 판이다. 이런 맥락에서 특히 중국이 반대한다는 점은 사드 문제가 단지 안보적 사안을 넘어선 외교 노선의 문제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검토겠다”라고 공식으로 말했다. 중국은 즉각 불편함을 드러냈다. JTBC <뉴스룸>은 이날 “중국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전하면서 사드 배치는 동북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와 같은 보수언론들은 박근혜 정부의 그간 친중외교노선을 문제삼고 있다. 중국의 전승절 기념 열병식에 참석하는 등 ‘한중’관계 개선을 위해 정성을 쏟아왔던 정부가 하루아침에 노선을 변경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KBS뉴스는 이런 분석과 비판을 보도 내용에 반영하지 않았다.

총선 앞두고 ‘국회심판론’ 드라이브 박근혜 대통령, MBC는 도우미 역할?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과 방송 뉴스 보도를 비교해볼만한 또 하나의 대목은 국회심판론과 관련한 것이다. MBC <뉴스데스크>는 <“입법 기능 마비됐다” 정치권 비판> 리포트(▷링크)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또 제 역할을 못하는 국회의 기능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서는 “제가 머리가 좋으니까”라는 대목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누리예산과 관련해 “아이들을 볼모로…(중략)…교육청이 정치적이고 비교육적으로 행동해선 안 된다”고 발언했다. “동물 국회였는데 지금은 식물국회”, “(19대국회는)선진화법을 소화할 능력이 안 된다”, “법을 만들기도 겁난다, 국회에서 어느 세월에 (통과)되겠나”, “국민도 열불난다”, “(에휴)대통령이 더 이상 어떻게 해야 되느냐”라는 등의 발언도 화제가 됐다. 공통점은 ‘국회’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MBC <뉴스데스크>가 해당 발언들에 주목한 까닭으로 보인다.

▲ 1월 13일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

MBC는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선진화법의 문제를 지적했다”며 “국회 폭력을 없앤다는 취지였지만, 정쟁을 가중시키고 입법기능까지 마비시켜 동물 국회가 식물 국회가 됐다는 것이다. 한반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반목만 거듭하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정치권이 모든 정쟁을 내려놓고 위기 극복에 힘을 합치도록 국민이 직접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20대 국회에서는 19대 국회보다는 나아야 한다고 국민들이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를 향한 발언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정치평론가들은 4월 총선에 맞춘 ‘국회심판론’, ‘야당심판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 같은 분석은 채널A에서도 나왔다. 채널A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한 한오섭 씨는 “국회, 야당 심판론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이라면서 “어차피 선거는 3자 구도(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로 치러진다. 그렇다면 친박 지지자들이 뭉치기만 한다면 승산 있는 게임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풀이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탓'은 꽤 오랜 기간동안 이어지고 있다. 총선에서 야당의 ‘정권심판론’을 지우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에 일리가 있다. 이 맥락에서 보면 이날 MBC뉴스는 ‘청와대가 원하는 대로’ 보도해준 셈이 된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제기된 모든 비판의 책임을 ‘남탓’으로 돌리며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쏟아냈다. 한일 위안부 협상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외교부 차원에서 지역 곳곳을 다니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만났다”며 “그 분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한 것은 ‘일본군 관여 확실히’, ‘일본 정부 차원의 공식 사죄’, ‘일본 정부의 돈으로 피해 보상’ 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합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중요하게 생각한 내용을 충실히 반영한 결과”라면서 “이 정도 노력했으면 평가할 건 평가해줘야 한다”는 논리도 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고령임을 언급하면서 ‘명예’와 ‘존엄’ 회복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하지만 피해 당사자들은 ‘합의 무효’를 외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위안부 합의 문제에 있어서도 일방통행식 불통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자들은 ‘반박’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기자들이 쏟아낸 기사들 역시 낙제점을 면치 못할 수준이다. 이날 지상파 뉴스 시청자들은 1시간 30분에 걸친 기자회견과 뉴스를 통해 오로지 대통령의 일방적 주장만 들어야 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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