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드라마 <셜록> 시리즈처럼 본격적인 추리물을 표방한 것은 아니지만, 추리적인 요소를 이용하여 많은 재미를 본 드라마가 있다. 지금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tvN <응답하라 1988>이다. 과거를 배경으로 당시 추억을 소환하는 복고 드라마이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여주인공 남편을 찾아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어버리는 이 시리즈가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극적 요소는 추리다. 드라마가 결말을 보여주기 이전에, 여주인공이 누구와 결혼을 할 것인지 알아 맞혀야할 것 같은 <응답하라> 남편 찾기는,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등 이전 시리즈에서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응답하라 1988>에서도 여주인공 성덕선(혜리 분)의 남편 유력 후보로 열연한 배우 류준열, 박보검의 인기에 힘입어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분명 ‘여주인공 남편찾기’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다. 하지만 <응답하라 1988>의 남편찾기는 가도 너무 나갔다. <응답하라 1988>이 이전 시리즈보다 평균 7~8%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젊은 남녀들의 사랑과 우정에 한정되었던 소재에 벗어나 가족으로 이야기의 범주를 확장했기 때문이다. 그 이전 시리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성동일, 이일화, 김성균, 라미란, 김선영, 최무성, 유재명 등으로 대표되는 부모들의 에피소드에, 기존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지 않았던 시청자들을 새로 유입할 수 있었고 수많은 시청자들이 열띤 공감을 표했다.

▲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하지만 드라마 후반부로 갈수록 가족들의 이야기는 축소되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성덕선-김정환(류준열 분)-최택(박보검 분)으로 이어지는 삼각관계였다. 그런데 문제는 드라마의 메인을 이끄는 러브라인 자체가 지지부진하단 점이다.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싶으면, 결국은 세 남녀 모두 결정적인 순간에 머뭇거리는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의 결실을 맺는 과정이 어렵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이들의 태도는 납득은 간다. 그런데 <응답하라 1988>은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정환과 택이의 갈등을 오랜 기간 지속시킨다. 거기까지도 좋다. 하지만 정환이가 택이가 덕선이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으며 가슴 아파하는지만 보여줄 뿐, 정작 덕선이의 마음은 오리무중이다. 덕선이가 정환이를 좋아한다는 장면이 몇 차례 드러나긴 했지만, 삼각관계가 정점에 달한 지금 여주인공 덕선의 감정은 ‘실종’ 상태다.

러브라인의 중심선상에 놓여있는 여주인공 덕선의 감정이 철저히 감추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녀가 정환-덕선-택으로 이어지는 삼각관계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결정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두 남자가 한 여자에게 구애하는 상황에서 칼자루를 쥔 여주인공의 선택은 로맨스 드라마에 있어서 이야기의 모든 것을 마무리 짓는 결말이나 다름없다. 덕선이가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가 이제 2회 남은 <응답하라 1988>의 핵심인 만큼, 다가오는 16일 종영하는 날까지도 덕선이가 정환이와 택이 중 누구를 좋아했고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는 비밀에 부쳐질 공산이 높다.

▲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 1988> 18회에서도 애매모호하게 끝나버린 사랑 이야기 때문에, 남은 것은 시청자들의 ‘추리’뿐이다. 마지막 회를 앞두고 <응답하라 1988>을 둘러싼 각종 스포일러가 난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덕선이 남편이 누구인지도 궁금하지만 도대체 그녀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알 수 없으니, 자연스레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스포일러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덕선이의 마음이 누구를 향해 있는지 도통 모르니, 그녀의 남편으로 정환, 택을 지지하는 시청자들로 나뉘어 누가 남편이다라는 추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이쯤 되면, <응답하라 1988>이 아니라 <응답하라 덕선 남편>이다.

종영을 앞두고 드라마의 모든 화제가 여주인공의 남편 찾기에 쏠리고, 여주인공의 남편이 누구인지를 두고 각종 추리가 돌아다닌 것은 비단 <응답하라 1988>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응답하라 1997> 때도 그랬고, 마지막 회까지 베일에 쌓여있었던 <응답하라 1994> 성나정의 남편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쥐락펴락하는 성공하는 요인이었다. <응답하라 1994>보다 여주인공 남편찾기가 더 어려워진 <응답하라 1988> 또한 회가 갈수록 궁금증을 유발하는 여주인공 남편의 정체 때문에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대단원의 막을 내릴 것이다.

▲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그런데 <응답하라 1988>이 앞선 <응답하라> 시리즈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여주인공의 남편 찾기 때문이 아니다. 1980년대 후반을 살았던 보통 사람들의 따뜻한 정서, 요즘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이웃들의 정겨운 풍경들이 시청자들의 추억과 향수를 자극했고, 여기에 운동권 여대생 성보라(류혜영 분) 캐릭터가 가세하며 적극적으로 <응답하라 1988> 속 쌍문동 이야기에 응답하게 하였다.

분명 초중반까지 <응답하라 1988>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정겨운 이야기가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고, 쌍문동 아이들의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는 드라마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상큼한 양념이었다. 그러나 기승전 덕선남편이 되어버린 지금의 <응답하라 1988>은 쌍문동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랑한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아쉽게 만든다. 과연 우리가 <응답하라 1988>을 통해 그토록 응답하고 싶었던 1988년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응답하라 덕선남편’이 되어버린 이 드라마에 진짜 묻고 싶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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