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농구 용인 삼성생명은 이번 2015-2016 시즌을 앞두고 임근배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영입했다.

경희대 시절부터 정확한 외곽슛 능력과 근성 있는 수비가 장점인 선수로서 이름을 알린 임근배 감독은 대학 졸업 이후 실업팀인 현대전자에서 선수로 뛰었고, 현역 은퇴 후에는 1999년 인천 신세기(현 전자랜드)에서 유재학 감독을 보좌해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 2004년 울산 모비스에서 2013년까지 역시 유재학 감독과 함께 코치로 활약했다.

남자농구에 대한 경험은 풍부한 편이었지만 여자농구 지도자로서의 경력이 없는 지도자라는 점에서, 그가 삼성생명의 지휘봉을 잡는 데 대해 주변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임 감독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추며 그를 지켜봐왔던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임 감독의 가장 큰 장점은 차분함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업다운이 없다는 게 좋다. 지도자로서 엄청난 장점”이라며 “여자농구에 좀 더 잘 어울릴 수도 있다. 감독으로서 충분히 잘할 것이고, 그럴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후 이런저런 채널을 통해 들려오는 소식은 임 감독이 베테랑 선수와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팀 내 젊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실전에 투입해 기량과 경험을 두루 쌓을 수 있도록 하는, 리빌딩에 가까운 팀 체질개선을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 용인 삼성생명 임근배 감독 ⓒ연합뉴스
몇 개월 후 시즌이 개막했고, 임 감독은 과연 맏언니 이미선의 출전 시간을 이전 시즌에 비해 대폭 줄이고, 그 자리를 고아라, 박하나, 박소영 등 젊은 선수들에게 분담해 메우게 했다.

그 결과 삼성생명은 개막 후 내리 2연패를 당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삼성생명은 이번 시즌 플레이오프는 고사하고 꼴찌를 걱정해야 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시즌 첫 승을 올리는 시점도 언제가 될지 가늠하기 어려워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개막 2연패 후 3연승을 내달려 1라운드를 공동 2위로 마쳤다. 시즌 첫 두 경기에서 무득점에 가까운 부진을 보였던 박하나가 경기를 거듭하며 제 페이스를 찾은 데다 배혜윤이 포스트를 굳건히 지켜줬고, 한층 근성 있는 플레이로 무장한 고아라가 공수에 걸쳐 순도 높은 기여를 해준 덕분이었다.

대신 이미선, 허윤자와 같은 베테랑은 경기의 흐름을 잡아야 할 중요한 순간 한정적으로 활용이 됐다.

임근배 감독의 노력이 조기에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수비의 안정이 이와 같은 전망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득점력이 수반되지 않는 수비 안정은 그야말로 패할 가능성을 줄여줄 뿐 이기는 농구를 펼치는 데는 부족했다.

그 결과 삼성생명은 지난 2라운드를 1승 4패, 3라운드를 2승 3패로 마쳐 플레이오프 경쟁에서 밀려나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역시 득점이었다. 국내선수 외국인 선수를 가리지 않고 득점력 면에서 삼성생명은 뚜렷하게 약점을 노출했다.

▲ 삼성생명과 우리은행의 경기에서 삼성생명 스톡스가 슛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톡스라는 외국인 선수가 수비와 블록슛, 리바운드 등에서는 발군의 기량을 펼치고 있었지만 득점력 면에서는 분명 약점을 노출하고 있었다. 특히 승부처에서 잡은 골밑 득점 기회를 수차례 날려버리는 바람에 더불어 삼성생명의 승리의 기회도 날아갔다.

설상가상으로 스톡스보다는 공격적인 성향을 지닌 해리스 역시 2라운드와 3라운드를 치르는 동안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접전을 펼치는 경기에서 막판 위닝샷을 상대 림에 꽂아 넣을 수 있는 결정력이란 측면에서 삼성생명은 여전히 확실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3라운드 마지막 경기였던 지난 20일 청주 KB스타즈와의 홈경기와 4라운드 첫 경기였던 지난 24일 춘천 우리은행과의 원정경기였다.

지난 20일 KB스타즈전에서는 해리스의 햄스트링 부상 결장에도 불구하고 스톡스가 여자프로농구 사상 역대 두 번째로 블록슛이 포함된 트리플 더블(21득점 27리바운드 11블록슛)을 기록하면서 2차 연장까지 50분을 모두 뛰었지만 결국 패하고 말았다. 승부처에서 잡은 득점 기회를 번번이 날린 결과다.

지난 24일 우리은행전은 더욱 더 충격적이었다. 우리은행의 수비에 철저히 농락당하며 올 시즌 한 경기 최소 득점인 39점만을 기록한 채 27점차 대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선수들 스스로 엄청난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임근배 감독만큼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이와 같은 상황을 앞으로 삼성생명이 거쳐야 할 과정의 일환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이와 같은 패배 속에서 선수들은 각자 자신이 승부처에서 위닝샷을 성공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서는 어떤 승리도 기대할 수 없다는 임근배 감독의 생각을 몸으로 체험한 셈이다.

지난 27일 삼성생명은 인천 신한은행을 상대로 한때 12점차까지 뒤지던 경기를 연장전까지 끌고 가 끝내 역전승을 이끌어내는 저력을 보여줬다. 4연패의 사슬이 끊어져 나가는 순간이었다.

이날도 임근배 감독는 강계리, 박소영, 양지영 등 지난 시즌까지 자주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젊은 선수들을 코트에 적극적으로 내보냈다.

▲ 신한은행 에스버드와 삼성생명 블루밍스의 경기 (연합뉴스 자료사진)
경기 직후 임근배 감독은 지난 우리은행전 직후 선수들과 미팅을 가졌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선수들에게 ‘어차피 경기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라는 점을 거듭 주지시키는 한편, 농구가 팀 경기인 만큼 개인들이 가진 생각보다는 팀을 위해 코칭 스태프나 선수들 서로 한 걸음씩 물러나 팀을 위한 플레이를 펼치자는, 원론적이지만 선수들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화두를 던졌다.

유재학 감독이 언급했던, 한 경기 이기고 진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가운데 자기중심을 갖고 선수들을 지도하는 임근배 감독의 지도자로서의 장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이다.

총 7라운드를 치르는 정규시즌이 반환점에 다다른 현 시점에서 우리은행이 이번 시즌에도 선두에서 독주를 이어가며 정규리그 우승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두 장의 플레이오프 티켓을 놓고 구리 KDB생명를 제외한 나머지 4개 팀들이 시즌 막판까지 경쟁을 펼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그 가운데 삼성생명의 순위는 꼴찌에서 두 번째인 5위에 위치해 있다. 플레이오프 경쟁팀들 가운데는 가장 아래에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고무적인 부분은 아직 탈꼴찌 경쟁보다는 플레이오프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이다.

임근배 감독은 이미 자신이 생각하는 팀과 자신이 생각하는 농구를 선수들에게 전달했다. 임 감독은 지금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선수들이 제대로 실행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결국 코트에서 뛰는 것은 선수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여자프로농구 무대에 데뷔한 임근배 감독의 ‘기다림의 농구’가 당초 계획했던 팀 재정비와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 사냥’에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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