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계에는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이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기 하루 전 열리는 시상식인데, 대개의 배우들이나 영화감독은 이 상을 받기를 꺼려한다. 영화인의 업적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해 최악의 영화와 최악의 연기를 펼친 배우에게 수여하는 시상식이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 공연계에 골든 라즈베리와 같은 시상식이 있다면 어떤 작품이나 인물이 수상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을 때, 다음 작품과 인물에게 상이 돌아갈 법하다. 골든 라즈베리상을 공연계에 대입해보면 올해는 참으로 특이한 해이기도 하다. 다른 해 같으면 한 해에 한두 번 터질까 말까 한 진기록이 1월부터 봇물처럼 터져 나온 2015년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본 글은 한예진 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을 제외하고 연극과 뮤지컬 기준으로 작성했음을 밝힌다.
◆ 최악의 음향상: 노트르담 드 파리 내한공연
<노트르담 드 파리> 내한공연은 오케스트라가 없이 미리 녹음된 MR(Music Recorded)로 진행된 공연이라 음행사고가 일어나면 뮤지컬 배우의 노래만이 아니라 배경음악도 들리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 1막은 양반이었다. 2막에서 무려 7번의 음향 사고가 터진 것도 모자라 이틀 뒤인 1월 30일에도 음향 사고가 발생했다. 하루 동안, 한 공연에서 무려 8번의 음향 사고가 일어난 건 매우 이례적인 사례로 손꼽을 수 있다.
◆ 초단명(超短命) 예술감독상: 한예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사립 오페라단도 아니고 한 국가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국립오페라단의 수장이라면 성악계에서 수긍이 가야 할 인물이 임명되었어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한예진 예술감독에 대해 아는 성악계 인사는 없다시피 했다. 한예진 예술감독이 국립오페라단을 이끌 전문성이 있는가 하는 검증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임명이 이뤄지다 보니 성악계와 오페라계의 반발이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예진 예술감독의 임명을 두고 문화체육관광부의 밀실 인사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한예진 예술감독이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직에서 물러날 때도 모양새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보도자료를 통해 물러나겠다고 언론에 먼저 알리고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퇴했기 때문. 그 후 한예진에게는 ‘53일 천하’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게 됐다.
◆ 최악의 대사상: 박정수
반면 박정수는 연극 <다우트>에서 안정적이지 못한 연기를 펼쳤다. 취재진에게 시연을 펼치는 전막 시연에서 10번 이상 대사를 더듬는 사태가 일회성이었다면 좋았으련만, 문제는 본 공연에서도 지속하여 대사를 버벅거렸단 점이다. 본 공연에서 5번 이상 대사를 더듬는 일은 대학로 소극장의 20대 초짜 배우라 해도 아주 보기 힘든 사례에 속한다.
◆ 최악의 의리상: 조승우
그런데 웬걸, 예정대로라면 조승우는 <맨 오브 라만차>를 마친 후 <오케피> 출연진에 합류했어야 했다. 하지만 난데없이 <베르테르>에 출연한다는 캐스팅 기사가 소개되었다. 작년 연말에 조승우가 출연한다는 캐스팅 발표를 했던 <오케피> 제작사인 샘컴퍼니는 조승우 대신 오만석을 캐스팅했다는 보도자료를 문화부 기자들에게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오케피>가 아닌 <베르테르>에 조승우가 출연한다는 캐스팅 보도자료를 접했을 때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김보성의 ‘의리’였다.
◆ 최악의 MD상: 데스노트
하지만 뮤지컬의 개연성이 다른 뮤지컬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문제를 논외로 친다 해도 <데스노트>는 아쉬운 면을 하나 더 가지고 있었다. 그건 바로 씨제스컬쳐의 MD 고가 정책이었다. 만일 <데스노트> 스티커와 포스트잇이 김준수라는 네임 밸류만 아니었다면 11,000원이라는 고가 마케팅이 가능했을까?
스티커와 포스트잇이 만 원 이상에 가격이 책정되는 경우는 보다보다 처음 보았다(국내 기준). 참고로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한류 뮤지컬 배우의 캘린더와 수첩을 합친 MD 가격도 타 기획사에서는 12,000원 정도에 거래된다. 김준수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씨제스컬쳐가 박리다매 정책으로 많이 판매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큰 MD가 아닐 수 없었다.
◆ 최악의 뮤지컬작품상: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아가사
김수로프로젝트 <아가사>라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보다 사정이 나아보이지는 않는다. 창작뮤지컬은 재연을 하게 되면 연출가가 누구냐에 따라 작품의 컬러가 확연하게 달라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가령 <번지점프를 하다> 초연이 아련한 사랑의 정서를 관객에게 아름답게 선사했다고 하면 재연에서는 서스펜스 스릴러의 풍미가 가미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올 봄에 재연된 <아가사>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업그레이드는 고사하고 철저하게 실패한 ‘다운그레이드’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실패한 재연은 두 손을 들고 말리고 싶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