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계에는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이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기 하루 전 열리는 시상식인데, 대개의 배우들이나 영화감독은 이 상을 받기를 꺼려한다. 영화인의 업적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해 최악의 영화와 최악의 연기를 펼친 배우에게 수여하는 시상식이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 공연계에 골든 라즈베리와 같은 시상식이 있다면 어떤 작품이나 인물이 수상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을 때, 다음 작품과 인물에게 상이 돌아갈 법하다. 골든 라즈베리상을 공연계에 대입해보면 올해는 참으로 특이한 해이기도 하다. 다른 해 같으면 한 해에 한두 번 터질까 말까 한 진기록이 1월부터 봇물처럼 터져 나온 2015년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본 글은 한예진 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을 제외하고 연극과 뮤지컬 기준으로 작성했음을 밝힌다.

◆ 최악의 음향상: 노트르담 드 파리 내한공연

▲ <노트르담 드 파리>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올해 막을 연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한국에 소개된 지 10년을 기념하여 국내 배우가 아닌 프랑스 배우들을 초빙하여 올 겨울과 가을에 걸쳐 두 번 내한공연을 가졌다. 사단이 난 건 첫 번째 내한공연인 1월 28일, 1막에서 한 번 음향사고가 일어났다.

<노트르담 드 파리> 내한공연은 오케스트라가 없이 미리 녹음된 MR(Music Recorded)로 진행된 공연이라 음행사고가 일어나면 뮤지컬 배우의 노래만이 아니라 배경음악도 들리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 1막은 양반이었다. 2막에서 무려 7번의 음향 사고가 터진 것도 모자라 이틀 뒤인 1월 30일에도 음향 사고가 발생했다. 하루 동안, 한 공연에서 무려 8번의 음향 사고가 일어난 건 매우 이례적인 사례로 손꼽을 수 있다.

◆ 초단명(超短命) 예술감독상: 한예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 한예진 ⓒ연합뉴스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표현은 문화체육관광부에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국립오페라단 김의준 예술감독 사퇴 이후 1년 가까운 공백 뒤에 임명된 한예진 예술감독의 임명이 악수가 되었기에 그렇다.

사립 오페라단도 아니고 한 국가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국립오페라단의 수장이라면 성악계에서 수긍이 가야 할 인물이 임명되었어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한예진 예술감독에 대해 아는 성악계 인사는 없다시피 했다. 한예진 예술감독이 국립오페라단을 이끌 전문성이 있는가 하는 검증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임명이 이뤄지다 보니 성악계와 오페라계의 반발이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예진 예술감독의 임명을 두고 문화체육관광부의 밀실 인사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한예진 예술감독이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직에서 물러날 때도 모양새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보도자료를 통해 물러나겠다고 언론에 먼저 알리고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퇴했기 때문. 그 후 한예진에게는 ‘53일 천하’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게 됐다.

◆ 최악의 대사상: 박정수

▲ 연극 <다우트> ⓒ실험극장
올 봄은 중견 연기자 두 명이 엇비슷한 시기에 무대에 서서 연극계의 기대를 한껏 모았다. 노주현은 무대 공백이 길었음에도 예술의전당에서 연극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통해 긴 공백기가 무색한 성공적인 연기를 펼쳤다.

반면 박정수는 연극 <다우트>에서 안정적이지 못한 연기를 펼쳤다. 취재진에게 시연을 펼치는 전막 시연에서 10번 이상 대사를 더듬는 사태가 일회성이었다면 좋았으련만, 문제는 본 공연에서도 지속하여 대사를 버벅거렸단 점이다. 본 공연에서 5번 이상 대사를 더듬는 일은 대학로 소극장의 20대 초짜 배우라 해도 아주 보기 힘든 사례에 속한다.

◆ 최악의 의리상: 조승우

▲ 배우 조승우 ⓒ연합뉴스
2014년 연말 뮤지컬계는 2015년 뮤지컬 라인업에 환호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작 뮤지컬 <오케피>에 황정민과 함께 조승우가 출연할 것이라는 캐스팅 발표가 기대감을 한껏 모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예정대로라면 조승우는 <맨 오브 라만차>를 마친 후 <오케피> 출연진에 합류했어야 했다. 하지만 난데없이 <베르테르>에 출연한다는 캐스팅 기사가 소개되었다. 작년 연말에 조승우가 출연한다는 캐스팅 발표를 했던 <오케피> 제작사인 샘컴퍼니는 조승우 대신 오만석을 캐스팅했다는 보도자료를 문화부 기자들에게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오케피>가 아닌 <베르테르>에 조승우가 출연한다는 캐스팅 보도자료를 접했을 때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김보성의 ‘의리’였다.

◆ 최악의 MD상: 데스노트

▲ 뮤지컬 <데스노트> ⓒ씨제스컬쳐
올 여름 뮤지컬은 ‘<데스노트> 광풍’에 휩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암표가 100만 원대에 거래되는가 하면, 뮤지컬의 개연성 문제를 지적하는 각 매체의 <데스노트> 리뷰 기사에는 악플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김준수는 뜨거운 감자 그 자체였다.

하지만 뮤지컬의 개연성이 다른 뮤지컬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문제를 논외로 친다 해도 <데스노트>는 아쉬운 면을 하나 더 가지고 있었다. 그건 바로 씨제스컬쳐의 MD 고가 정책이었다. 만일 <데스노트> 스티커와 포스트잇이 김준수라는 네임 밸류만 아니었다면 11,000원이라는 고가 마케팅이 가능했을까?

스티커와 포스트잇이 만 원 이상에 가격이 책정되는 경우는 보다보다 처음 보았다(국내 기준). 참고로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한류 뮤지컬 배우의 캘린더와 수첩을 합친 MD 가격도 타 기획사에서는 12,000원 정도에 거래된다. 김준수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씨제스컬쳐가 박리다매 정책으로 많이 판매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큰 MD가 아닐 수 없었다.

◆ 최악의 뮤지컬작품상: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아가사

▲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쇼미디어그룹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아시아 초연이라는 기대감이 컸던 탓일까. 올해 초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거릿 미첼의 방대한 서사를 3시간에 담기에는 프랑스 원작의 공력이 힘이 부족한 나머지, 뮤지컬 팬과 비난 기사의 봇물에 시달려야만 했다. 초연 당시 발성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영화배우를 기용한 나머지 뒷좌석에서는 레트 버틀러의 발성이 뭉개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김수로프로젝트 <아가사>라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보다 사정이 나아보이지는 않는다. 창작뮤지컬은 재연을 하게 되면 연출가가 누구냐에 따라 작품의 컬러가 확연하게 달라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가령 <번지점프를 하다> 초연이 아련한 사랑의 정서를 관객에게 아름답게 선사했다고 하면 재연에서는 서스펜스 스릴러의 풍미가 가미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올 봄에 재연된 <아가사>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업그레이드는 고사하고 철저하게 실패한 ‘다운그레이드’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실패한 재연은 두 손을 들고 말리고 싶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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