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정년을 바라보는 26년차 직원 신기섭 씨가 공영방송 KBS에서 해고됐다.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려 보도본부장에게 “나가 뒈져라”, “XXXX야” 등의 욕설을 한 점, KBS뉴스를 “대국민에게 사기 치는 쓰레기”, “관제 쓰레기” 등으로 표현하며 보도·방송 프로그램을 비방한 점, 게시가 금지된 글을 올려 상습적으로 전자게시 관리지침을 위반한 점 3가지가 ‘해고 사유’가 됐다.

신기섭 씨는 평소에도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려 KBS 메인뉴스에서 누락되거나 보도가 미흡한 부분을 지적하고 보도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인물이었다. 왜 공영방송 KBS에서 이렇게 중요한 보도가 나가지 않는지, 지금 KBS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묻는 글을 수십 건이나 썼다. 그를 ‘해고’에까지 이르게 한 <강선규 보도본부장에게>라는 글 역시 ‘국정원 해킹사건’ 보도를 왜 제대로 하지 않느냐는 문제의식에 따라 작성된 글이었다. “엉뚱하게 방송을 하는 바람에 글을 과격하게 쓰게 됐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25일 오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이하 새 노조) 사무실에서 신기섭 씨를 만났다. SNS에 자신의 ‘유배기’만 올려도 ‘해고’ 통보를 하는 삼엄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렇게 자사 보도를 비판하는 글을 열성적으로 쓸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의 답은 간단했다. “KBS인으로서 당연히 해야죠. 직종을 불문하고 KBS인이라면 KBS 보도는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집에 돌아가면 시청자 아닙니까. 시청자들의 눈높이에서 보도가 잘 되고 있는지 봐야죠”

징계사유 됐던 글들 살펴보니 ‘관제방송 비판’ 다수

KBS는 △경영진에 대한 욕설 및 폭언 △KBS 보도와 방송 폄훼 및 비방 △공사 전자게시 관리지침 상습위반 등 3가지를 신기섭 씨의 해고사유로 든 바 있다. 우선, ‘KBS 보도와 방송 폄훼 및 비방’에 해당한다고 KBS가 주장한 글 4건을 함께 읽어 보았다.<메르스 갈팡질팡, 6.15 공동성명 아몰랑하는 KBS>(2015년 6월 4일)에서는 메르스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정부를 비판하는 동시에, ‘관제방송’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광복 70주년 특집 <나는 대한민국> 프로그램 제작에만 열중한 채 6·15 공동성명에는 무관심한 KBS 보도를 꼬집었다.

<낯 뜨거운 불공정 편파 선거방송..당장 송출 중단하라>(2015년 4월 29일)는 선거철에 ‘투표 독려’를 하는 방송이 아니라 <한국경제 70년, 그들이 있었다>라는 박정희 시대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냈다는 점을 비판한 글이었고, <껍데기 세월호 특집방송 그만두고 진실을 말하라>(2015년 4월 14일) 글에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파헤치기보다는 1주기를 맞아 ‘모금방송’을 하는 KBS에 날리는 일갈이 담겨 있었다.

<미래혁신보다 공정방송 통촉하시기 바랍니다>(2015년 3월 5일)는 KBS 미래혁신 방안으로 임금피크제 실시, 호봉제와 직급제 폐지, 연봉제 도입, 퇴출구조 확대, 성과급제 확대 등을 선언한 조대현 사장에게 “진정한 공영방송의 원년을 실현하는 ‘공정방송’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라”는 충고의 글이었다.

<공영이 죽고, 공론이 죽은 KBS>(2014년 10월 10일), <KBS 보도보누장 이하 데스크에 전한다>(2014년 10월 16일), <누차 말한다. 보도본부장 이하 간부들은 옷 벗어라>(2014년 10월 30일), <혁신추진단에 바란다>(2015년 2월 13일),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2015년 3월 26일) 등 공사 전자게시 관리지침을 위반했다는 글들도 제목만으로도 대략적인 내용 파악이 가능하다.

신기섭 씨는 KBS에서 보도되지 않거나 ‘면피’ 수준의 보도를 거론하며 윗선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만한 글을 지속적으로 올렸다. 내란음모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선동은 있었다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판결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세월호 참사 당일 묘연했던 대통령의 행적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산케이 신문 지국장이 기소된 건을 다루지 않으며, 아직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천안함 사건에 ‘폭침’이라는 용어를 고민 없이 쓰는 뉴스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리가 관제방송을 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글을 썼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철학을 가지고 방송을 한 게 아니라 정부 입맛에 맞게 해 왔다는 것이다. 세월호 보도가 대표적이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세월호 유가족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근본적으로 세월호 침몰과 구조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탐사보도를 해야 하는데 우리는 1주기에 맞춰 모금방송을 했다”

“뜻밖의 해고에 충격… 가족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 지난 18일 KBS에서 해고된 신기섭 씨 ⓒ미디어스
해고의 결정적 사유가 됐던 <강선규 보도본부장에게> 글에 원색적인 욕설이 많은 건 사실이었다. 신기섭 씨가 욕설을 섞어가며 “보도 똑바로 해라. KBS뉴스가 보도냐? 대국민에게 사기 치는 쓰레기지. 넌 뭐하는 놈이야. 권력의 주구나 꼭두각시면 KBS에서 나가”라는 글을 쓴 이유는 ‘소극적 보도’ 때문이었다. 국정원 해킹 사건과 관련해 임모 과장이 자살했을 때 JTBC는 ‘자살 조작 가능성’ 등을 비교적 심층적으로 보도했는데, KBS는 국정원의 해명을 거의 그대로 방송했다는 이유다.

그러나 신기섭 씨는 공개석상에서 모욕적인 말을 하고 ‘언어폭력’을 저지른 점을 인정하고 진술서와 사과문을 통해 거듭 참회의 뜻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강선규 보도본부장에게>라는 글을 게시하고 이틀 뒤인 7월 24일 사과문을 올려 “보도본부장님을 비롯하여 KBS임직원분들에게 경솔히 경거망동하고, KBS인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지 못하고 욕설을 게시판에 게재하여 KBS의 명예를 실추한데 대해 처절히 반성한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그는 8월 3일 인사위원회 1심에서 파면 다음으로 중징계인 해임(해고) 결정을 받았다. 신기섭 씨는 재심청구서에서 “제가 제 자신에게 무엇보다 후회하는 것은 욕설로 징계에 회부되었다는 사실이다. 욕설은 폭력인 줄 알지만 일순간의 분노로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다”며 “정말 할 말이 없다. 참회한다. 너그러운 자비로 용서해 달라”고 재차 선처를 구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9월 25일, 11월 9일, 11월 18일 세 차례의 특별인사위원회에서도 그는 구제되지 못했다. 역시나 ‘해고’였다. KBS는 지난 18일, 인사규정 제55조 제1호(성실) 제3호(품위유지)를 위반해 해고됐다는 사실을 신기섭 씨에게 통보했고 이튿날 사내 공지로 게시했다. ‘행위 비위 정도가 매우 중하고 고의성이 있어 해임 이상에 해당한다’는 게 KBS의 입장이다.

신기섭 씨는 욕설 섞인 글을 쓰고 회사를 지속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해고’까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1심에서 ‘해임’ 결정이 났을 때도 과한 징계라고 생각했지만, 여러 차례 사과와 반성의 뜻을 전했고 재심에서 양형이 낮아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사사건건 보도에 대해서 얘기를 해 온 데다가 욕설 섞인 게시물까지 나오니 조대현 사장이 강경하게 처리하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들었다. 새 노조에서 1000명 이상의 탄원서명을 받아서 회사에 전달하기도 하고, 저도 강선규 보도본부장을 두 차례 찾아갔었다. 혼자 찾아갔을 때 만나주지 않아서 상사인 재원관리국장과 함께 갔는데 그때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더라. 그래도 보도본부장은 (제가 사과한 점에 대해서) 이해한다, 다른 본부장들에게 잘 이야기하겠다는 말을 국장을 통해 전했다.

제가 쓴 글(<강선규 보도본부장에게> 글)은 금방 삭제돼 50명 정도가 봤지만 사과문은 2000명 넘게 봤다. 개인적으로 따지면 이미 욕을 한 당사자에게 사과했고, 보도본부장도 이해한다는 뜻을 밝혔으니 서로 합의가 되고 화해가 된 거라고 본다. 그래서 저는 (2심 결과는) 감봉이나 정직 정도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사장 퇴임 4일을 앞둔 시점에 해고가 나온 것이다. (2심 결과 나오기 전부터) 공사 직원으로서 욕설을 한 것에 대해서는 직장 질서를 혼란하게 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전혀 뜻밖에 해임 소식을 들어서 충격을 받았다”

신기섭 씨는 해고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나마 자신은 겨우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지만 가족들이 문제였다. 아이들과 아내에게 해고 사실을 알리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1심 결과가 나왔을 때도 가족들이 충격을 받을까봐 부러 전하지 않았다. 다행히 가족들의 상태가 진정돼 현재는 해고 사실을 알린 상태다.

“직원들에게 재갈 물리는 처사… 법의 판단 구하려고 한다”

신기섭 씨가 사내게시판에 올린 글 때문에 징계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병순-김인규 사장 아래서 점점 관제화되는 자사 보도를 보고 비판글을 올렸더니, 2010년 3월에 뜬금없이 인천사업지사로 ‘유배’됐다. 인천지사에서 일하는 것은 ‘지역근무’에 해당해 보통 2년 정도 하게 되는데, 신기섭 씨는 해고 직전까지 5년 8개월 간 인천지사 생활을 해야 했다. KBS는 또한 지난해 9월, 신기섭 씨가 2013년 11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올린 11건의 글이 공사 직원으로서의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한 내용이라며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내린 바 있다.

‘방송 똑바로 하자’는 취지에서 치러진 두 번의 파업을 지지하고 격려한 것도 문제가 됐다. 신기섭 씨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이하 새 노조)가 김인규 사장 퇴진 및 공정방송 쟁취를 위해 파업을 벌였던 2012년, 길환영 사장의 보도 및 인사개입 사실이 드러나 양대 노조가 파업을 벌였던 지난해에 파업을 지지하고 독려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각각 ‘감봉 1개월’과 ‘주의’ 처분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는 끊임없이 자사 보도를 지적하고 경영진을 비판했을까. 신기섭 씨는 “저는 맨날 앉아서 글만 쓰는 사람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제 업무는 열심히 했다. 오전에 민원처리하고 오후에 출장가고 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근무시간에 글을 올린 걸 문제 삼는데, 보도가 편향적이고 관제방송을 한다는 비판은 공사 발전을 위해 당연히 KBS인으로서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본다. 저는 제 일을 다 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의견 제시도 ‘일’이고 직무에 포함된다. PD, 기자뿐 아니라 공사 전체 직원들이 프로그램 모니터링을 하면서 품질 관리를 할 수 있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글을 쓸 수 있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신기섭 씨는 “보도를 체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터넷 홈페이지가 잘 돼 있어서 충분히 비교할 수 있다. 1신, 2신을 순서대로 보거나 주요 아이템이 몇 분 몇 초 다뤄졌는지 시간도 확인할 수 있다”며 “직종을 불문하고 KBS인이라면 KBS 보도는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고 본다. 집에 돌아가면 시청자 아닌가. 시청자들의 눈높이에서 보도가 잘 되고 있는지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대현 사장은 지난 23일 퇴임식에서 “마지막으로 제 재임 기간 동안 신변의 불이익을 받으신 분, 받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용서를 구하겠다. 인간으로서 악업을 쌓았다고 생각하며 속죄하며 살겠다”며 ‘해고 사태’를 짤막하게 언급했다. 신기섭 씨는 “(해고는) 돌이킬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조대현 사장의 말을 듣고도) 아무런 심경의 변화가 없었다. 다만 소송을 통해 법의 판단을 구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새 노조 소속인 신기섭 씨는 25일부터 서울 여의도 KBS 연구동에 위치한 새 노조 사무실에 출근하고 있다. 앞으로 노조 일을 도우면서 해고무효소송을 준비할 예정이다. 소송 제기는 12월 초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제가 고참 사원이고, 2008년부터 지금까지 8년 동안 그동안 회사 정책 부분이나 보도 부문, 방송 부문에 대해서 비판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우리가 독립된 방송사, 독립된 공영방송이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정부 눈치를 보다 보니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게) 경영진 입장에서는 난처해져서, ‘이런 건 없애야 되겠다’ 해서 본보기로 저를 겨냥한 것 같다. 앞으로 이런 글을 쓰지 못하도록 직원들한테 재갈을 물린 것이다. 경영진은 게시판을 통한 의사소통을 경직시키려고 시도하겠지만 저 같은 사람은 계속 나오리라고 본다. KBS인들이 능력과 용기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후배들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드라마 <굿닥터>를 보면 ‘두려움을 극복하는 게 아니라 두려움에 맞서는 것이 용기’라는 말이 나온다. 후배들도 그렇게 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는 구름 한 점 없이 쨍쨍한 시기가 계속될 때라고 한다. 사람은 비와 그늘이 없으면 못 살기 때문이다. 저도 궂은 날씨라고 (지금 이 상황을) 탓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저 자신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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