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서 공연을 좀 보았다고 자부하는 공연 마니아에게 이 영화의 타이틀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시나리오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2009년 태동한 동명의 연극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원 소스 멀티 유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화가 연극을 고스란히 답습한 건 아니다. 연극은 무대라는 공간의 제약이 따르지만 영화는 카메라가 모든 공간을 담아낼 수 있다는 장르의 차이점 때문에 기본 골격은 같지만 많은 부분에 있어 원작 연극에는 없는 상황을 도출하고 있었다.

<극적인 하룻밤>은 ‘연애 루저’들의 합방으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랑했던 사람이 나와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성과 결혼할 때의 참담함은 겪어본 이만 아는 심정일 터. 정훈(윤계상 분)과 시후(한예리 분)는 사랑하던 사람이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남녀다.

▲ 영화 <극적인 하룻밤> 스틸 이미지
정훈과 시후 두 남녀가 하룻밤을 보내는 계기는 심리적인 차원이 작용한다. 사랑했던 사람이 다른 이성과 결혼했다는 상실감을 달래기 위한 ‘보상 심리’ 가운데서 원나잇이 이뤄졌다는 점으로 본다면, 연인을 떠나보낸 상실감을 육체의 쾌락으로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두 남녀의 만남은 하룻밤 인연에 그치는 게 아니다.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만나되 몸정(情)의 관계로 만남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상하다. 몸만 즐거우면 될 줄 알았는데 만나면 만날수록 상대방에게 자석처럼 끌리기 시작한다.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대개의 이성간의 만남이 마음으로부터 시작하여 몸으로 소통하는 것과는 대척에 놓인 사랑의 방식인 셈이다.

이는 <극적인 하룻밤>이 <쌍화점>과 공유점을 갖게 되는 점으로, 이성 사이의 만남이 처음에는 몸으로부터 시작하지만 점차 마음으로까지 이어지는 ‘몸으로부터 시작한 마음으로의 전이’를 나타내고 있다. 몸과 마음이 이원론처럼 철저하게 분리된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상관관계가 밀접하다는 걸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영화 <극적인 하룻밤> 스틸 이미지
한데 영화는 몸정이 마음으로까지 이어지는 걸 보여주는 연극 원작과는 다른 결을 하나 더 갖고 있었다. 그건 바로 ‘경제 계급론’으로 2009년 당시 연극 원작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장면이다. 정훈의 절친인 덕래(조복래 분)는 남자가 이성을 만날 때 자신과 같은 경제적인 계급의 여성을 만나는 게 아니라 자신보다 한 단계 아래에 위치한 여성을 만난다는 논리를 펼친다.

즉, 동일한 경제적 계급의 이성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아래의 이성을 만난다는 논리를 설파한다. 이는 2009년 당시 연극 원작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설정으로, 요즘 금수저부터 흙수저로 비유되는 경제 계급 논리가 영화에서 각색되어 추가로 덧입혀진 부분으로 바라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영화 <극적인 하룻밤> 스틸 이미지
연극 원작에는 없는 경제 계급 논리가 새롭게 덧입혀졌다는 건 2009년 원작이 태동할 당시보다 6년이 지난 현재가, 연애에 있어서 경제적인 논리가 민감하게 작동되고 있다는 걸 방증하는 셈이 된다.

원작과는 달리 각색이 새롭게 덧입혀질 때에는 각색이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건 당연지사. 2009년 연극 원작 당시의 연애관과는 달리 경제 계급 담론에 민감하게 휘둘리기 쉬운 세대가 오늘날의 세태를 반영하는 것만 같기에, 원작 연극이 달콤했다면 영화의 각색은 달콤하면서도 경제 계급 담론이라는 쌉싸름한 블랙의 풍미가 가미되었다고 볼 수 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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