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음악웹진 <보다>의 김학선 편집장이 미디어스에 매주 <소리 나는 리뷰> 연재를 시작한다. 한 주는 최근 1달 내 발매된 국내외 새 음반 가운데 ‘놓치면 아쉬울’ 작품을 소개하는 단평을, 한 주는 ‘음악’을 소재로 한 칼럼 및 뮤지션 인터뷰 등을 선보인다.

마빈 게이라는 이름의 흑인 음악가가 존 레넌에 버금가는 역사적 위상에 오른 것도 늘 사랑 노래만을 부르던 그가 어느 순간 1인칭 자아를 되찾으며 자신의 삶과 경험을 간절하게 음악에 담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내가 보고 내가 느낀 것을 쓰겠다!”는 자세가 그 출발점이었다. 우리 대중음악은 의외로 가수의 자기고백이 별로 없다. 아이돌댄스의 K팝은 물론이고 근래에는 인디음악에서도 이런 경향이 뚜렷하다. 적당히 위로와 용기를 주는 가사 아니면 놀자 판을 펼쳐 실은 히트곡을 내려는 속셈이다. 이러니 오랫동안 들을 음악이 없다. 훈계나 가상 스토리가 아닌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것처럼 ‘실화’를 듣고 싶다. (경향신문 임진모 칼럼 <자기 이야기를 담은 음악이 없다>, 2015년 10월 24일자)

얼마 전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은 <수잔>이란 앨범을 발표했다. ‘수잔’은 김사월의 페르소나다. 김사월은 자신이 20대 초반에 경험했던 아름답고 불안한 경험들을 포함한 모든 감정들을 수잔이라는 화자를 통해 11곡의 노래로 만들어 앨범을 만들었다. 옥중에서 앨범 <The Anecdote>를 발표해 큰 화제를 모은 이센스는 <The Anecdote>에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 음악을 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까지를 전부 랩으로 풀어냈다. ‘Anecdote’라는 제목 자체가 ‘일화’ 또는 ‘개인적인 진술’이란 뜻을 갖고 있다.

▲ 김사월의 수잔, 이센스의 The Anecdote

우효는 첫 앨범 <어드벤처>를 자신의 20대 초반의 기억과 감정들을 담은 앨범이라 말했다. 그 전에 발표한 데뷔 EP <소녀감성>에는 18살 무렵의 우효가 담겨있다. 루시아는 <Light & Shade> 연작을 발표하며 ‘음악가로서의 확신을 담은 자전적 성격의 앨범’이라고 설명했다. 자이언티가 ‘양화대교’로 차트 정상을 휩쓴 게 불과 얼마 전이다. 래퍼 산이는 자신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노래에 담았고, 샤이니의 종현, 소녀시대의 태연, 아이유도 모두 자전적인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당장 기억나는 작품만 열거해도 대충 이 정도다. 좀 더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음반을 나열하는 것만으로 나머지 원고 분량을 다 채울 수 있을 정도다. 우연인 걸까? 아니면 <임진모 칼럼>을 읽고 뒤늦게 음악가들이 각성해서 ‘자기고백’을 하자고 일제히 노래와 음반을 발표한 걸까? 당연히 그럴 리 없다. 음악가들은 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일정한 수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칼럼을 쓴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가 관심이 없었거나 진짜로 몰랐거나 일부러 모르는 척 했을 뿐이다.

나는 이것이 가장 나쁜 방식의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주장을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을 상정하고 허수아비를 때리는 것. 이 칼럼을 위해 한국 대중음악계는 가수의 자기고백이 별로 없이, "적당히 위로와 용기를 주는 가사 아니면 놀자 판을 펼쳐 실은 히트곡을 내려는 속셈"만 가득한 곳이 돼버렸다.

또 이것만큼 쉬운 글쓰기도 없다. 지금의 한국 대중음악을 비판하기 위해 가져온 근거가 40년 전의 마빈 게이나 존 레넌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황망하다. 가령 이런 글은 어떨까? “현실 비판을 하는 음악이 없다”란 제목을 달고 밥 딜런과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을 소환한 뒤 “우리 대중음악은 의외로 가수의 현실 비판이 별로 없다. 아이돌 댄스의 K팝은 물론이고 근래에는 인디 음악에서도 이런 경향이 뚜렷하다. 적당히 위로와 용기를 주는 가사 아니면 놀자 판을 펼쳐 실은 히트곡을 내려는 속셈이다”라고 글을 쓰는 것이다. 대충 '야마'만 잡으면 어떤 방식으로도 쓸 수 있는 만능의 글이다.

물론 자신이 그렇게 느꼈다면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다. 다만 “아이돌댄스의 K팝은 물론이고 근래에는 인디음악에서도 이런 경향이 뚜렷하다”는 글을 쓰기 이전에 그가 홍대 앞 라이브 클럽을 얼마나 찾고 인디 음악을 얼마나 듣고서 그런 과감한, 게다가 잘못된 주장을 할 수 있는 건지가 궁금한 것이다. 고작 하나의 칼럼을 쓰기 위해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던 인디 음악까지 거론하며 비판하는 걸 나로선 이해하기 어렵다.

좋았던 과거를 추억하는 ‘쉬운’ 글쓰기를 경계한다

작년에도 그의 글이 음악가들과 관계자들 사이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돈에 종속된 음악’이라는 제목의 칼럼이었다. 그는 또 영국 가수 샘 스미스를 끌어온다. 샘 스미스의 노래 ‘Money On My Mind’를 예로 들며 음악계가 돈 때문에 게토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19세기의 클래식 음악과 이후 등장한 대중음악의 역사를 면면히 이어온 원리는 음악의 순수성, 진실, 정직과 같은 것들”이라고 덧붙인 뒤 “자본의 가공할 침투력은 심지어 독립을 뜻하는 인디 음악계에도 파고들었다”며 “돈과 음악의 키가 비슷해야지 지금처럼 돈으로 너무 기울면 음악은 사망”이라고 선언해 버린다.

음악계는 ‘지옥의 링’이 아니고 음악가들은 ‘공포의 외인구단’이 아니다. 그는 예로 든 샘 스미스의 음악과 돈의 크기 가운데 과연 무엇이 더 크다고 생각할까? 비틀스와 마이클 잭슨의 음악은 돈의 키와 비슷해서 사망하지 않은 것일까? 대체 그 키의 기준은 어떻게 정하는 걸까? 논리적으로 허술한 구멍이 한둘이 아니다. 논리로 따지자면 처음의 칼럼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그는 가수들의 자기고백이 없어 오랫동안 들을 음악이 없다고 한탄하지만,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옛 노래들은 적당한 위로와 용기를 주거나 빤한 사랑타령이 대부분이다. 자기고백을 담은 음악이 오래 간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주장을 위한 끼워 맞추기일 뿐이다.

▲ 2015년 10월 24일자 경향신문 칼럼 <자기 이야기를 담은 음악이 없다>

그 끼워 맞추기의 끝은 늘 과거에 대한 찬미다. 그가 쓴 칼럼들의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자기 이야기를 담은 음악이 없다> / <대중가요가 있긴 한가> / <너무 동떨어진 세대> / <축제가 되지 못하는 음악시상식> / <돈에 종속된 음악> / <판을 바꿀 한 곡이 없네> / <위로를 주지 못하는 K팝> / <다시 유행가로 돌아간 대중가요> / <가슴에 남지 않는 노랫말> 매번 과거·해외의 사례로 글을 시작해 요즘 음악 문제 있다는 식으로 글을 끝낸다. ‘요즘 음악 버릇없어’로 문제를 삼은 뒤 ‘우리 음악이 달라졌어요’가 되길 바란다는 패턴이다. 시대가 변한 것을 고려하지 않고 과거의 잣대로만 늘 글을 쓴다.

더 이율배반적인 건 그가 지적한 문제들에 자신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위로를 주지 못하는 K팝을 칭찬해온 것도 그였고, 축제가 되지 못하는 가장 대표적인 음악시상식인 MAMA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것도 그였다. MAMA를 통해 가슴에 남지 않는 노랫말을 가진 노래들이 계속해서 상을 타왔다. 모든 것이 연결돼있는 문제에서 자신은 한 발 떨어져 꾸짖는다. 오랜 시간 가요계를 봐온 입장에서 큰 어른처럼 한 마디 하고 싶을 순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최소한 성실하자는 것이다. 자기 이야기를 담은 음악이 없다는 주장을 하고 싶으면 정말로 그런지 찾아보고 들어보고 쓰자는 것이다. 돈에 종속된 음악이라는 주장을 하고 싶으면 지금 인디 씬(scene)의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알아보고 쓰자는 것이다. 축제가 되지 못하는 음악시상식에 대해 비판하고 싶으면 자기가 몸담고 있는 곳부터 바꾸려고 노력하고 쓰자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책임감의 문제이기도 하고 직업윤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에게 굳이 이런 비판을 하는 건 그가 한국에서 제일가는 대중음악평론가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권위란 무서운 것이다. 만약 내가 음악에 그리 관심이 없는 경향신문의 독자라면 한 달에 한 번씩 올라오는 그의 칼럼을 보며 요즘은 자기 이야기를 담은 음악이 없어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고, 돈을 너무 많이 벌면 배가 불러서 음악을 제대로 못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곤 이렇게 되뇔 것이다. “역시 옛날이 좋았어~”. 과연 이것이 그의 영향력에 걸맞은 일인가? 그가 말한 음악과 돈의 크기를 빌려와 얘기하자면, 임진모란 이름이 가진 인지도와 영향력의 키에 비하면 책임감의 키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 스스로 말한 것처럼 그 둘의 키가 엇비슷해지길 바란다.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키워야 할지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고 생각한다.

김학선 /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네이버 ‘온스테이지’와 EBS <스페이스 공감>의 기획위원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을 맡고 있다. 여러 매체에서 글을 쓰고 있으며 <K-POP, 세계를 홀리다>라는 책을 썼다.

▶[김학선의 소리 나는 리뷰] 더 찾아보기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