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고비에 섰을 때, 정치학자 최장집은 촛불이 '정당정치의 부재'때문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그러곤 '정당정치 강화'만이 궁극적 해답이라고 봤다. '촛불'을 버려야 '촛불'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럴 듯했다. 상식을 지향하는 일부 주류 미디어와 개혁을 지향하는 많은 인터넷 미디어들이 그의 발언을 확대 재생산해댔다. 그는 최장집이었다.

결국, 그의 발언에서 시작된 그 정치학의 맥락과 공학이 현실 정치의 '반MB 전선' 논쟁을 거쳐 한나라당을 제외한 모든 제도 정당과 4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민생민주국민회의'까지 왔다고 나는 감히 믿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는 최장집이다.

문득, 피로하다. 회의가 깊다. 겨울이 춥다. 정당정치와 그 밖의 모든 것들이 말라붙고 있다. 학자가 '한줌의 도덕(minima moralia)'이라도 보여 주려면, 최장집은 지금 무엇을 말해야 할까? 촛불 이후, 노학자의 기대와는 멀리 정치는 까마득히 아둔해지고 있다. 법이 그 아둔함을 심하게 앓고 있다. 미디어는 자존을 잃고 있다. 모두가 공통의 치욕을 감당하고 있다.

▲ '민생민주국민회의'와 '민주수호, 촛불탄압 저지를 위한 비상국민행동'이 '반민주 MB악법'을 선정해 발표했다. ⓒ민중의소리
촛불, 앓는 법의 풍경

지난 10일 민생민주국민회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의 이름은 "세계인권선언 60주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민주주의를 향한 행진"이었다. 내용은 <반민주 MB악법 선정 발표회>였다.

▲ 선언식을 마친 참가자들은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청운동 사무소(청와대 앞)까지 평화행진을 시작했다. ⓒ민중의소리
이들은 복면착용금지와 소음규제 등을 담은 집시법, 불법집단행위에 대한 집단소송법, 사이버 모욕죄 신설하는 통신망법, 신방 겸엄을 허용하는 신문법, 자본의 언론 진출을 확대하는 방송법, 감청과 추적을 확대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국정원법, 비밀관리법, 테러방지법, 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 과거사위원회 관련 개정안 등의 11개의 법안을 대표적 'MB악법'으로 뽑았다. 지난 10월 한나라당이 선정한 '131개 MB중점법안' 중 11개를 추린 것이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인도를 따라 청와대까지 행진할 계획이었으나, 전경의 저지로 실패했다.

그리고 어제(11일) 민주노동당은 국회 법사위를 점거했다. 법사위에서 처리해야 하는 47건의 법안 중 'MB악법'과 종부세 개정안, 농어촌 특별세 폐지안 등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법안 16건의 처리를 막기 위해서였다. 민주노동당의 점거로 김형오 국회의장이 정한 11일 자정의 합의시한은 넘겨졌다. 민주노동당은 작지만 강한 야당의 이미지를 얻었다. 민주당은 합의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무난히 피했다. 김형오 의장은 권위를 세울 명분을 쌓았다. 이로써 복잡한 셈은 모두 끝난 셈이다. 의장 직권상정은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촛불, 잃은 미디어의 풍경

지난 10일 결국, 교사 7명이 파면 또는 해임됐다. 서울시교육청은 10월 일제고사에 반대한 초중등 교사 7명 가운데 3명을 파면하고 4명을 해임하는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퇴직금 수령액수와 임용 제한 기간이 좀 다를 뿐, 파면과 해임은 별다른 차이는 없다. 한 마디로 '해직'이다. 교사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이후 동일사유로 한꺼번에 7명이 해직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다급하고 무참한 사건이다. 미디어의 관심도 뜨겁다. 사건을 전하는 미디어의 지형은 현실 정치의 전선과 비슷하다. 과반 이상인 '마땅하다', 3분의 1 가량에 불과한 '과도하지만…' 그리고 강하지만 작은 '가당치않다'들의 대결로 요약된다.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의 12일 '사설'은 격렬하게 다툰다. 국회처럼, 끝내 '사실'마저도.

▲ 12월 12일자 동아일보 사설(왼쪽)과 경향일보 사설(오른쪽).
그리고 11일 교사들의 파면, 해임 소식에 또 하나의 뉴스가 겹쳐졌다. 수원지법 행정단독 김병철 판사는 11일 촛불집회에 무대차량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운전면허를 취소한 경찰의 처분은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성립 자체가 우스꽝스런 법리이지만 판결은 상식이 아닌 판사의 몫이다. 경찰의 통제 하에 차량을 주차했으며, 아무런 교통 방해를 하지 않았다는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시위에 동참했건 안했건, 집회의 의도를 알면서 트럭을 도로 한복판에 주차한 것은 교통방해죄를 범한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방송통신위원회는 YTN의 실존을 옭죄는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 재승인 의결을 보류했다. KBS는 사원행동 소속 사원을 A, B, C, D 네 등급으로 나눠 8명을 징계하고, 20명을 경고조치하기로 했다. 하루 전날에는 MBC 평기자 75명이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는 성명을 통해 MBC 뉴스가 권력의 사정을 봐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촛불 이후, 거리의 민주주의는 확실히 청와대의 의중으로 대체되고 있다. 미디어는 어떤 후유증들로 범벅되고 있다. 정권은 강하게 불순해지고 보복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패턴은 반복되고 있다.

철학자 김영민은 보수주의는 이론이 아니라 오직 이론의 부재에 따른 공황이며, 사유가 아니라 비사유의 강박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었는데… 일본의 사상가인 가라타니 고진은 과거의 어느 한 원인에 고착된 사회는 신화적인 사회라고 했었는데… 한나 아렌트는 미래의 한 목표 속에 고착된 사회를 종말론적인 폐쇄 사회라고 했었는데… 촛불 이후,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하는 길이 포개지고 있는 것일까? 과연, 우리는 어디로 걷고 있는 것일까.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