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대표이사 박노황)의 국정교과서 보도에 대해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특히 ‘바른 역사교육’ 제하의 기획기사는 제목부터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코드를 맞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의 국정교과서 보도에 대해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사진=연합뉴스)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지부(지부장 김성진, 이하 연합뉴스지부)는 11일 공정보도위원회 결과를 정리한 ‘공정보도’에서,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다룬 자사 보도를 비판했다. 연합뉴스지부는 “회사는 10월 한 달 1000건이 넘는 관련 기사를 제작하며 교과서 문제 보도에 천착했다. 하지만 일부 편향성 시비를 불러올 만한 기사를 송고해 불공정 논란을 자초했다는 것이 공보위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올바른 역사교과서’ 내세운 정부 코드 맞추기? ‘바른 역사교육’ 등 기획기사 문제제기돼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2일까지 연재된 ‘바른 역사교육’ 제하 기획기사였다. 연합뉴스는 “역사교과서 개편을 둘러싼 보수·진보 진영 간 한 치 양보 없는 대립국면이 장기화하고 있다”며 “연합뉴스는 ‘교과서 논란’의 편향성 시비, 제도적 미비점 등을 분석하고 전문가들의 대안 제시·외국의 사례 분석 등을 통해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고 편집자 주를 달아 총 15회에 걸쳐 관련기사를 게재했다.

그러나 기사 대부분은 교과서 국정화 ‘찬성’ 입장을 부각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끝없는 진영대결’, ‘편향성 논란의 중심에 선 민중사관’, ‘교사용 지도서·참고서 편향 논란’, ‘현장에서 빚어지는 편향 교육’, ‘집필자 자격기준 없다시피 한 역사교과서’ 등의 표현으로 교과서는 ‘편향’적이어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중점을 맞춘 기사를 선보였다.

<바른 역사교육> ①이념 얼개에 엮인 '역사전쟁'…끝없는 진영대결 (링크)
<바른 역사교육> ②건국, 이승만, 박정희, 6·25…'역사대립' 핵심쟁점 (링크)
<바른 역사교육> ③교과서 편향성 논란의 중심에 선 '민중사관' (링크)
<바른 역사교육> ④한국사 교과서에 비친 이승만·김일성 (링크)
<바른 역사교육> ⑤교사용 지도서·참고서 편향 논란 (링크)
<바른 역사교육> ⑥현장에서 빚어지는 편향 교육 (링크)
<바른 역사교육> ⑦교과서 개정 때마다 벌어진 '역사전쟁' (링크)
<바른 역사교육> ⑧집필자 자격기준 없다시피한 역사교과서 (링크)
<바른 역사교육> ⑨거리로 나온 '역사권력'…헤게모니 충돌 (링크)
<바른 역사교육> ⑩검정교과서 '검정'에 손놓은 교육부 (링크)
<바른 역사교육> ⑪역사교과서 기준 틀 잡자 (링크)
<바른 역사교육> ⑫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일정 어떻게 되나 (링크)
<바른 역사교육> 박지향 "일선교사 자질부족…학계 최신연구 소화못해" (링크)
<바른 역사교육> 김우창 "교과서 보다 역사 가르치는 방법이 문제" (링크)
<바른 역사교육> 이돈희 "정치적 득실로 접근하면 국민설득 못해" (링크)

연합뉴스지부는 “<바른 역사교육>이라는 슬러그(제목)부터 ‘올바른 교과서’를 표방하는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사실상 홍보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올바른 교과서’는 정부가‘국정교과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희석하고자 내놓은 용어라는 평가가 나온다”면서 “<바른 역사교육> 시리즈의 내용을 봐도 국민 과반이 반대하는 국정화 문제를 균형 있게 다루지 못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는 게 공보위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지부는 “기사는 국정화 찬성 쪽의 시각을 소개하는 데 집중했고, 반대쪽의 목소리는 형식적으로 덧붙이는 정도에 그쳤다. 작성 단계에 포함됐던 국정화 반대 목소리는 데스킹 과정에서 일부 삭제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며 “사측은 9일 편집위원회에서 ‘현재 교과서에 문제가 많다는 데는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 목소리와 비슷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지부는 지난달 15일부터 <역사교과서 제언>이라는 이름으로 나간 기획기사도 한계가 있었다고 짚었다. 연합뉴스지부는 “(기사가 나갈 당시) 국정화를 둘러싼 대립이 극심했음을 고려하면 국정화가 옳은지 따져봐야 할 시점에 이는 제쳐두고 어떤 국정교과서를 만들지에 집중한 것”이라며 “기사 방향이 새 교과서에 담을 내용에 맞춰지다 보니 일부 교수들은 국정화 반대 목소리를 냈음에도 그 주장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사측은 “정부는 반대가 있어도 국정화로 가겠다고 결정한 상태였다. 비가역적인 사항이라면 어떻게 하면 교과서를 잘 만들고 기존 문제가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전문가의 의견을 확인하자는 취지였다”고 해명했지만, 연합뉴스지부는 “국정화가 확정고시되기 전인 공식적인 여론수렴 기간이었다. 그럼에도 이 같은 기획기사가 나간 것은 정부의 국정화 방침이 그대로 회사의 편집방향으로 자리 잡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 지난달 15일 게재된 연합뉴스 <역사교과서 제언> 기획기사

연합뉴스지부는 사측이 지난달 15일 ‘국정교과서’ 대신 ‘단일교과서’라는 표현을 쓰라는 지침을 내린 사실 역시 공개했다. 사측은 ‘국정교과서’나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표현 대신 가치중립적 표현으로 ‘단일 역사교과서’라는 용어를 쓰라는 취지였다고 설명했지만 연합뉴스지부 공보위가 이에 문제제기하자 해당 방침은 하루 만에 철회됐다. 그러나 이미 ‘단일 교과서’나 ‘교과서 단일화’라는 표현을 쓴 기사가 30여건이나 나온 뒤였다.

연합뉴스지부는 “국정은 검정, 인정 등과 같이 객관적인 법적 용어로 지극히 가치중립적이다. 그럼에도 (사측은) 마치 ‘국정’보다 ‘단일’이 중립적인 표현인 것으로 판단한 것”이라며 “회사의 이 같은 지시는 정부의 입장을 고려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정부와 여당은 ‘국정교과서’라는 표현에 대한 여론의 거부감을 희석시키기 위해 적지 않은 공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탄생한 용어가 ‘올바른 역사교과서’였다”고 꼬집었다.

‘징계 엄포’ 현실로… 노조위원장 징계 추진

한편 연합뉴스는 언론노조가 진행한 ‘국정교과서 반대’ 시국선언 의견광고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김성진 지부장 징계를 추진하고 있다. 앞서 연합뉴스는 지난달 28일,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의 기자가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것은 대외적으로 연합뉴스의 보도 객관성에 심각한 우려를 줄 수 있다”면서 참여 기자들에게 불참을 요청했다. 또, 참가하는 기자들을 두고 “사규에 따라 엄정 조치하겠다”고 주장해, 연합뉴스는 개별 이름을 싣지 않고 ‘지부’명만을 표기해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연합뉴스지부는 12일 <근거 없는 징계보다 공정보도부터 바로 세워라> 성명을 내어 “조합의 시국선언 참가는 지극히 정당한 조합활동이다. 사회적 주체인 노동조합에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점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지부는 “사측이 징계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윤리헌장 위반이다. 여기에 ‘직무와 관련해 판단의 공정성을 저해할 수 있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규정은 기자의 ‘보도와 업무’ 수행에 관한 것이다. 기사 작성 등의 직무를 직접 수행하지 않는 노동조합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법적 자문결과”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지부는 “이번 시국선언 참가자는 모두 49개 언론사 4713명에 달한다. 이 중 우리를 제외한 어떤 곳에서도 아직 징계 움직임은 없다. 당연하다. 사규에 그 어떤 조항이 있다 하더라도 헌법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보다 위에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라며 “박 사장은 지금이라도 근거 없는 징계에 몰두하지 말고 공정보도를 바로 세우기 위한 작업부터 진행하길 촉구한다”고 경고했다.

이에 연합뉴스 관계자는 “아직 인사위원회가 열리지는 않았다. 지난번 ‘국정교과서 반대 시국선언’ 관련해 ‘연합뉴스’라는 회사 이름이 나가게 된 경위를 묻기 위해 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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