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KBS이사회(이사장 이인호)는 11명 중 7명의 찬성으로 고대영 전 KBS 보도본부장을 차기 사장 최종 후보 1인으로 선출했다. 정부여당 추천을 받은 이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고대영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결과였다. 고대영 후보는 오는 16일 열리는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고 대통령 재가를 받으면 KBS 사장이 된다.

이명박 정권 당시 KBS 보도국 요직을 꿰찼던 고대영 후보는 ‘불공정 보도’를 주도해 왔다. 보도국장 시절 KBS기자협회가 실시한 신임투표에서 93.5%, 보도본부장 시절 KBS 양대 노조가 실시한 신임투표에서 84.4%의 불신임을 받은 것은 그에 대한 내부 평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KBS 내부뿐 아니라 언론시민사회 역시 고대영 후보는 공영방송 KBS를 이끌어가기에는 부적격한 인물이라며 임명 반대를 외치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시민단체들은 9일부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고대영 임명 반대’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미디어스는 10일 두 번째 주자로 나선 전규찬 언론연대 대표를 만났다.

전규찬 대표는 “KBS 사장에 입맛에 맞는 인물을 낙하해 (KBS를) 장악하고 완전하게 국정화시키겠다는 의도를 밝힌 것이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1인 시위를 하게 됐다”며 “70~80년대 언론 탄압 때문에 민주주의가 좌초됐던 기억을 본다면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구속’이 어떤 의미인지 알 텐데 왜 우리 사회는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는 시민들에게 ‘판단의 기회’를 줘야 한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끔 온전한 사실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저널리스트들을 긍정하고, 그렇게 하고 있는 매체를 보존하고 또 활성화시켜야 하는데 (정권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우리 아이들이 절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규찬 대표 ⓒ미디어스
1. 고대영 KBS 사장 후보 임명 반대 1인 시위를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국가의 미래가 오늘 이 스산한 날씨처럼 흉흉하다.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것으로 무리수를 두었다는 악행이 드러나서 공분이 일었다. 그만큼 중요한 게 역사의 기억, 역사의 이야기, 미래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치로서의 방송이고, 그 중 핵심적인 역할 하는 게 공영방송 KBS다. (고대영 후보를 보낸 것은) KBS 사장에 입맛에 맞는 인물을 낙하해서 (KBS를) 장악하고 완전하게 국정화시키겠다는 의도를 밝힌 거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1인 시위를 하게 됐다.

2. 고대영 후보를 ‘KBS를 국정화할 청와대 청부사장’이라고 표현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고대영 후보는 오랫동안, 이 정권뿐 아니라 이전 정권과도 아주 밀착돼 있었다. 정권을 만들어 내는 부역자였고 KBS를 그런 방송으로 가져가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고, 저널리즘이나 기자들을 구속하고 통제하고 검열하는 행태를 보여 왔다. 그런 와중에 금전적 제공을 받아 부도덕적인 측면도 다 드러났다. 가장 놀라운 게 미 대사관까지 가서 정권 창출을 어떻게 해야 되고 등의 정보를 줬다는 것 자체가 사실 상식을 넘어서 있다. 한국정치는 현재 상식을 넘어서 있는데, 그 비상식적 틀을 ‘인사’로서 구현하고 있다. (고대영 후보는) 가장 중요한 공영방송 내부에서 (비상식을) 실현했던 인물이었다. 역사적으로도 옳지 않고 정치적인 올바름이라고 하는 측면에서도 부족하다. 역사의식, 정치의식, 사회의식뿐 아니라 공영방송 KBS를 운영해 나갈 능력이 미비한데도 그에 대한 권력의 신뢰는 상당히 높은 것 같다.

사실 사장 후보자들 가운데 저는 고대영 후보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전에 대통령 선거 방송심의위원회 위원(2012년 대선)을 같이 했었는데 그때 무척 조심스러운 행동을 보이더라. 별로 발언하지 않고 무리를 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면서 ‘아, 뭔가를 도모하고 있구나, 준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후에 또 다른 선거방송심의위원회(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또 활동했더라. 대통령 선거나 지방자치선거 때 방송과 관련된 심의위원회에 2번이나 들어갔다는 것은 결국 정권의 상당한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다. 조신한 운신과 정권의 신뢰를 바탕으로 고대영 후보가 (KBS에) 들어오게 돼서 참 씁쓸하다.

3. KBS 사장 선임이 역사교고서 국정화 문제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그러나 정작 청문회를 맡는 국회에서 이 문제를 비중 있게 가져가지 않는 분위기고, 청문회 역시 요식행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고대영 후보가 KBS 사장이 된다면 이후 언론시민사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말씀드리기가 난감하다. 청문회가 (최종 임명에서) 하나의 걸림돌, 문턱이 될 거라고 말은 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지금까지 언론 문제를 졸로 취급했고 말은 슬쩍 한 번 하지만 몸을 부대끼면서 뭘 해 보자는 노력이 없었다. 총선에만 관심이 있는지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결의를 보여준 적도 없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청문회에서 기대할 건 없다는 게 냉정한 판단이다. 고대영은 KBS에 갈 거다. 지금까지 이루어졌던 KBS의 ‘국정화’, ‘국영방송화’는 연장되고 가속화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저희들은 공영방송 KBS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되, 국영방송화된 KBS는 인정할 수 없다는 기조 아래 행동해 나갈 것이다.

4. 지난해 5월 초, 새누리당의 수신료 인상안 날치기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의사당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했던 바 있다. 1년 반 만에 중요한 언론 문제로 다시 거리에 선 소회가 어떤가.

국가권력, 정권은 방송, 미디어, 통신, 인터넷을 늘 통제하면서 민주정치를 망가뜨리고 사회 진보를 늦추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정치권도, 사회 운동진영도, 시민들도 너무 무관심하다.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외치고 있지만 조족지혈인 듯한 낭패감과 패배감이 넘친다. 이 부분(언론운동)이 다 망가지니까 역사교과서 문제를 말해도 여론화가 안 되고, 이게 문제라고 짚어주는 언론과 언론인도 잘 없어서 계속 다른 부분들이 패배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다른 운동에서의 가능성을 보기 위해서라도, 언론운동에서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데에 학계·시민사회·정치권 모두 정말 총력을 다해야 한다. 세월호, 수신료 국면도 그렇고 (지난일에 대한) 교훈을 아직도 우리가 제대로 새기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밀리고 있다.

왜 한국사회는 역사의 교훈을 못 새기는가. 70~80년대 엄혹한 시절 언론이 탄압받으며 민주주의가 좌초됐던 기억을 본다면,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구속’이 어떤 의미인지 알 텐데 왜 우리 사회는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씁쓸함이 짙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KBS 문제나 고대영 사장의 문제를 자꾸 작은 것으로 보고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반성해야 된다. 이 말은 독자들도 사회에서도 경청해야 하는 쓴소리로 전하고 싶다.

5.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말했고, 방송장악은 가능하지 않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공영방송 인사와 여러 방면에서의 미디어 정책을 쏟아내 언론을 노골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그 의도가 무엇이라고 보나.

정치권력은 하나의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해당 시스템을 거스르는 또 다른 시스템을 해체시키거나 작동 불능케 해야 한다. 권력의 시스템은 권력에 반하는 시스템을 무력화시켜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시스템은 방송, 인터넷이며 그걸 통한 저널리즘과 이를 수행하는 저널리스트다. 현재의 권력은 이런 시스템 운용의 공식과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언론인들을 꼼짝 못하게 하고, 디지털로 실현하는 작은 규모의 직접적 저널리즘조차 통제하고, 공영방송은 계속 낙하산을 통해서 제압하고 EBS조차도 확실한 ‘국민교육의 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 사람의 개인 문제가 아니라 자기 권력 유지를 위해 반권력을 장악하는 ‘시스템의 문제’로 보는 게 맞다.

6. 1인 시위 중에 들었던 인상적인 반응이 있다면?

안동에서 온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들이 제가 든 피켓을 보고 질문했다.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인가요?”라고. 저는 여러분들이 보고 판단하라고 했다. 그들은 피켓을 보고 나름의 판단을 한 것 같다. 안동이라고 하면 보수적인 동네라는 생각을 흔히 하지만, 누구나 내용을 보고 생각할 기회를 가지면 사태가 어떻고 진상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아이들뿐 아니라 시민들 모두에게 줘야 할 것은 ‘판단의 기회’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끔 온전한 사실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저널리스트들을 긍정하고, 그렇게 하고 있는 매체를 보존하고 또 활성화시켜야 하는데 (정권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우리 아이들이 절망한다.

안동 학생들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이들을 때리는 선생이 못났듯이 기자를 때리는 사장은 옳지 않다는 것을. 아이들을 윽박지르는 선생이 못났듯이 시민들에게 이게 절대적인 옳음이야 라고 윽박지르는 국가권력도 그들은 거부하더라. 놀랍게도 그들은 권력, 국가라는 표현을 쓰며 옳지 않다는 판단을 분명히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앎의 기회만 주어진다면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시대에 앎을 제공하는 건 학교, 교과서, 언론매체다. 앎의 기회를 주는 것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중요하고 운동적으로 핵심인지를 아이들과의 짧은 대화에서 확인하게 되었다.

▲ 전규찬 대표가 들고 있던 피켓 ⓒ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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