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다니지 못하는 산중에 살자면 짐 질 일이 많습니다. 쌀농사를 짓지 않기에 11월부터는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쌀 지어 올리고 농사짓는 분들과 효소 곶감과 물물교환 해 일 년치 쌀을 져 올립니다. 12월엔 부모님과 함께 한 김장 김치도 져 올립니다. 쌀, 김치 외에도 살면서 필요한 짐이 참 많습니다.

산길을 오르면서 짐을 손에 드는 방법은 쉽지 않습니다. 가벼운 무게라도 손이 자유롭지 않으면 오르는 길은 훨씬 힘이 듭니다. 산에서 짐을 옮기는 도구로 지게와 배낭이 있습니다. 부피가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물건은 주로 지게로 옮기고 부피가 작고 가지 수가 많을 땐 큰 배낭으로 옮깁니다.

손에 들고 산길을 오르는 게 힘들다보니 우연히 내려가게 되거나 짐이 목적이 아닌 때도 내려갈 땐 지게나 배낭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 버릇이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다보면 이런 저런 짐이 생겨 지게나 배낭을 준비하지 않으면 힘겹게 손에 들고 올라와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네 명이 짐을 손에 들고 산길을 힘겹게 오를 일이 생겼습니다. 집에 온 손님을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어야 할 일이 있어 해질 무렵 서둘러 내려가기도 했고 바래다주고 금세 올라올 거라 생각해 지게와 배낭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삶은 항상 계획대로 되지만은 않는다고, 일요일 서울 가는 막차표가 없어 더 큰 도시까지 나가야 했습니다. 날은 이미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져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기엔 많이 늦었습니다. 하루 자고 올라오는 길에 짐이 많이 생겨 아이들도 자기 키만한 이불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올라야 했습니다. 이불보따리가 무겁진 않지만 부피가 커, 들고 산길을 오르기가 힘겹습니다. 그래도 날이 저물지 않아 다행입니다.

내려가면 날 저물기 전 돌아온다고 서둘지만 항상 해 있을 때 집으로 돌아오진 못합니다. 며칠 전 농사짓는 분이 챙겨준 무, 땅콩, 은행들로 짐이 많고 무거워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지만 이미 날은 한참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지게에 짐 싣고 산길을 오르는데 길이 어슴푸레합니다. 짐의 무게가 온몸을 짓누르고 산길이 어둠에 가려 발걸음이 디딜 땐 단번에 오를 방법이 없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숱한 세월 동안 한발 한발 내딛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부질없는 생각을 합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삶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울 땐 온몸을 짓누르는 짐을 지고 힘겹게 살아갑니다. 삶에 무게가 클수록 자기 힘이 아닌 남의 힘이나 요행으로 해결하려는 마음을 가집니다. 어쩌다 돌아가거나 누군가가 해결해 주는 행운이 있기도 하지만 내가 지어야 할 삶의 짐이 없어지진 않습니다.

누구나 피해 갈수 없고 지어야 할 짐이라면 묵묵히 받아들이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등에 진 짐의 무게가 온몸을 힘겹게 하고 어둠이 산길을 가려 한발 한발 어렵게 오르면서 삶의 짐도 어렵고 힘겨울수록 한발 한발 내딛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임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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