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털리면 큰 일 나요”, 지난 25일 중로구 동숭동에 위치한 국립국제교육원에서 경찰에 긴급 전화가 왔다. 자신의 신분도, 무슨 일을 하는지도 밝히지 못한 채 무조건 야당과 기자들이 건물로 들어올 것 같으니 막아달라는 막무가내의 내용이었다. 이 공무원은 ‘인원 동원 안하면 나중에 문책 당해요’라는 협박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교육부가 비밀TF를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해왔고 청와대도 보고가 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때였다. 당시 공무원 등이 경찰에 전화해 신고했던 녹취록이 국민일보 단독 기사(▷링크)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은 공영방송을 포함한 지상파를 통해서는 한 줄 보도되지 않았다.

민주언론시민연합(공동대표 이완기·박석운)은 30일 <국정 교과서 ‘비밀TF’ 관련 보도 모니터> 결과를 내놨다. 그 결과, 민언련은 “‘여기 이거 털리면 큰일 난다’ 비밀TF 녹취록은 지상파에선 보이지 않았다”며 “특히, KBS는 비밀TF와 관련한 보도는 단 1건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모니터 대상은 KBS <뉴스9>와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TV조선 <뉴스쇼 판>, JTBC <뉴스룸>, 채널A <종합뉴스>의 26일부터 28일까지의 보도이다.

교육부 비밀TF, JTBC 8건 보도하는 동안 KBS 단 1건

민언련에 따르면, 비밀TF 관련 리포트는 JTBC가 8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TV조선 4건, MBC·SBS·채널A 2건, KBS 1건 순이었다. 민언련은 “공영방송 KBS가 얼마나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친정부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KBS의 그 1건의 리포트마저도 비밀TF로 인한 여야의 대립각을 스케치하는 수준이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교육부의 비밀TF가 지니는 문제는 ‘행정예고 이전부터 결성돼 <행정절차법 시행령> 위반된다는 것’과 ‘청와대 개입 및 여론 개입 정황이 드러난 것’”이라면서 “이런 문제점들을 야당 의원의 입을 빌리지 않고 직접 제기한 방송사는 JTBC뿐”이라고 분석했다.

▲ 26일자 TV조선 '뉴스쇼 판' 리포트
이렇듯 KBS와 MBC, SBS는 교육부 비밀TF와 관련해 시종일관 ‘여야 공방’으로만 다루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TV조선은 여기서 더 나아가 노골적으로 정부·여당 편을 들었다는 게 민언련의 설명이다. 실제 TV조선은 26일 <국정화 공방 어떻게 풀까> 리포트에 이영작 씨를 출연시켜 “야당의원들이 무슨 권한으로 정부기관을 급습하느냐”라며 “무법천지”, “체포영장, 수색영장도 없었던 불법행위”라며 야당을 비난하게 했다. TV조선은 자막을 통해서도 “핵심은 야 의원들의 정부기관 급습”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민언련은 “‘급습’, ‘감금’으로 규정한 새누리당보다 한술 더 뜬 것”이라며 “하지만 대치 당시 TF직원들은 야당의원들이 나타나자 부리나케 상당량의 문건을 파쇄하며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근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밀TF 직원, 경찰신고 녹취록은 JTBC가 유일

방송뉴스의 문제는 비밀TF직원들의 경찰 신고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더욱 확연히 드러났다. 지상파와 종편을 합해 녹취록에 대해 보도한 곳은 JTBC가 유일했다.

JTBC는 28일 <“여기 털리면 큰일”…국정화 TF 경찰 신고 녹취록 공개>, <당시 대치상황 어땠나…‘국정화 TF’ 녹취록 비교하니> 리포트를 차례로 배치했다. JTBC는 “밤8시부터 약 2시간 동안 5명이 돌아가며 모두 10차례 경찰에 신고를 했다”며 “1차 신고 때에는 ‘국제회관 기숙사’라며 건물명도 제대로 밝히지 못할 정도로 긴박했다”고 전했다. 이어, “경찰은 ‘기자와 국회의원이 무슨 일이 있어서 침입한 거냐’고 의문을 제기하지만 신고자는 못 들어오게 해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언제쯤 도착하느냐’고 재촉하기도 한다”고 보도했다. 7차 신고 때까지 ‘공무원’이라는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 JTBC '뉴스룸' 27일 리포트
JTBC는 “4차 신고 당시 경찰이 무슨 일이 있는지 말해줘야 출동할 수 있다고 하자 전화를 갑자기 끊어버린다”며 “그리고 나서 10여초 뒤 다시 전화를 걸어 신분을 말하며 활동 목적을 감추려는 모습을 보였다. 전화를 끊은 사이 말을 맞춘 게 아닌가 싶은 대목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상황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감을 감지한 듯 ‘우리가 정부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있는 인원을 다 보내라’, ‘그리고 동원 안 하면 나중에 문책당한다’는 등 매우 고압적인 태도로 경찰을 다그치는 모습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KBS와 MBC, SBS, TV조선, 채널A 메인뉴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민언련은 비밀TF 관련 방송뉴스와 관련해 “지상파 3사와 TV조선, 채널A는 교육부의 국정화 추진 비밀 TF에 대해 침묵했다”며 “TV조선은 야당의원들에 ‘화적떼’라며 폭언을 퍼부은 새누리당의 입장을 앞장서서 대변했고 지상파 3사와 채널A는 1~2건의 보도로 TF의 존재만 언급했을 뿐 사실상 제대로 된 보도를 하지 않았다”고 총평했다. 이어, “심지어 비밀 TF의 의심스러운 행적이 고스란히 드러난 녹취록도 보도하지 않았다. 정부가 위법적이고 부당한 비밀 조직까지 운영하며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고 있는 상황을 외면하면서 정부의 국정화 드라이브를 옹호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명백한 사실까지 외면하면서 정권의 잘못을 감추려는 방송사의 행태가 한심스러울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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