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과 강만수 재정기획부 장관에게 밀린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인지, 이상희 국방부 장관이 한동안 봉인되었던 입을 풀었다. 그리고 역시나 주옥같은 명언들을, 그 상상력도 참으로 기발하여 잊혀지지 않을 ‘말’들을 세상에 풀어놓으셨다. ‘말’들이 날뛴 자리는 서울 용산의 국방부 대회의실, 김태영 합참의장과 육·해·공군 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 군단장급 이상 지휘관, 국방부 직할부대장, 기관장 등 1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였다. 아마도 장관님의 섣부른 ‘말’들에 장단 꽤나 맞추는 별들이 모인자리였나 보다. 사실 입 하나 잘못 만나서 의도치 않은 모습으로 세상에 튀어나온 ‘말’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랴. 문제는 너무 쉽게 뱉어내는 이상희 장관의 말이 아니라 그 속에 뿌리박혀 있는 국방부 장관의 역사관과 안보관이다.

▲ 12월 9일자 동아일보 2면.
“입대하는 장병 중에는 대한민국 60년을 사대주의 세력이 득세한 역사로, 군은 기득권의 지배도구로서 반민족, 반인권적 집단으로 인식할 뿐 아니라 국가관, 대적관, 역사관이 편향된 인원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이상희 국방부장관의 현실인식은 일면 타당하다. 군 입대 장병들 중에는 국군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인 인식을 가진 젊은이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국군을 미군의 똘마니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는 않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애국심이 철철 넘쳐 주적 북한으로부터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서 군대 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수도 있다. 다양한 생각들의 공존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사회에서 당연한 일련의 상황들이 장관으로서는 상당한 충격이었나 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국의 국군이 자국민에게조차 총구를 겨눈 역사를 알고 있다면, 군대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전시작전권조차 없어서 미군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자국의 군대를, 혹은 식탁의 안전을 위해 스스로 일어선 국민들에게는 그렇게 권위적이고 폭력적이면서 강대국 정부들에게는 비위 맞추느라 정신없어 보이는 정부를 사람들이 사대적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너무나 충분하다. 혹 위의 생각들이 틀린 생각이면 또 어떤가. 군대가 스스로 이야기하는 국민들의 평화가 기껏 재산권이나 땅덩어리의 평화가 아니라면,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적인 장을 지켜가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대의 존재 이유라면 말이다.

▲ 이상희 국방부 장관 ⓒ여의도통신
이번 일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 정권에서 약속하고 유엔에서도 거듭 권고하고 있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을 때, 이념적 편향을 들먹거리며 주제넘게 교과서 수정을 이야기했을 때, 그리고 불온서적 목록이라는 시대의 코미디로 몇몇 출판사에 대한 왕비호식 노이즈마케팅을 펼쳤을 때 사태는 예견되어 있었다. 결국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자신의 기준에 맞추는 길을 택한 것이다. 어리석게도 그리고 무시무시하게도 그는 총칼이 글과 생각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불온서적 선정과 관련하여 “장병들에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헌법적 가치를 신념화하고 투철한 국가관과 안보관을 지닌 병사와 시민으로 육성하는 군의 정신전력 강화 활동이 이념논쟁화됐다”는 이야기는 결국 스스로 생각하는 특정한 국가관과 안보관을 장병들에게 강제로 주입하겠다는 이야기이다. “작전체제와 훈련체제, 부대관리, 정신전력, 간부들의 복무자세 등 모든 분야에서 군을 재조형(Reshaping)해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 말을 한 사람이 2008년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인지, 세상을 뜨지 못한 2차대전 시기 나치독일이나 일본제국주의의 망령인지 헷갈릴 정도다.

또한 “이들을 투철한 국가관과 안보관을 구비한 강한 전사,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이상희 국방부 장관의 역사인식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국가에 무조건적으로 충성하고 상관에게 복종하는 ‘강한 전사’는 국가의 권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개인과 국가와의 관계를 끊임없이 성찰하는 ‘민주시민’과는 정반대의 인격체이다. 이 말은 사실 입대한 ‘민주시민’을 ‘강한전사’로 개조하겠다는 말이다. 근대국민국가 형성의 핵심은 국민개병제를 통한 징병제 사회의 성립이었지만, 역으로 군대에 참여한 시민들이 국가의 합법적인 폭력수단인 군대를 통제하는 행위가 언제나 함께 존재했다. 시민들의 힘이 미약한 국가들에서는 군대의 폭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고 그래서 군부에 의한 독재가 필연적으로 일어났다. 한국의 역사가 가장 단적으로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즉 어느 국가가 민주주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도하게 폭력이 집중되어 있는 군대를 성숙한 시민들이 어떻게 통제하느냐가 핵심인데, 이상희 장관의 인식은 이 핵심적인 고리를 완전히 거꾸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발언 뿐만 아니라 북핵 선제 타격 발언, 북한 급변사태 때 중국의 개입을 막아야 한다는 발언 등에서 드러나는 군 수뇌부들의 안보관 또한 심히 우려스럽다. 국가가 군대를 동원해서 국민들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해야 할 노력은 적과 전쟁해서 이기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어떤 국가와도 어떤 집단과도 무력적인 충돌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이다. 전쟁억지는 강한 군사력이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이는 때때로 불필요한 군비경쟁을 강화할 뿐이고 어쩌면 정반대의 방법들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때문에 지나치게 호전적이거나 군사안보에 매몰되어 있는 군 지도자는 오히려 국민들의 평화와 안보에 독이 될 수도 있다.

국가가 국민들의 안보를 위해서 기울여야 하는 노력은 점차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예컨대 아무리 강한 군사력으로도 광우병의 위협에서 안전할 수 없듯이, 과거의 군사안보만으로는 국민들의 평화로운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가 바라는 국방부 장관은 민주주의와 군대, 국가에 대한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굳세게 믿으며 그것을 사병들에게 억압적으로 강요하는 장관이 아니라 변화하는 국제환경과 안보요건들을 두루 살피고 국가가 국민의 평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장관이다. 총칼로 사람의 생각을 바꾸려 하고 군사적인 긴장관계를 더욱 강화해가는 국방부 장관의 역사관·안보관이야말로 가장 편향적이고 위험하다.

애써 찾아가지 않았던 평화가 나에게로 왔다. 평화의 결과로 병역거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병역거부를 하면서 평화를 알아가게 되었다. 현재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착하게 살다가 조용히 죽는 삶을 꿈꾸지만 버리지 못한 욕심이 심장에 붙어있어 떨쳐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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