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인 줄 알고 올인했는데, 알고 보니 올인한 결과물이 진짜가 아니라 가짜로 밝혀졌을 때 당신의 심정은? ‘특종: 량첸살인기’에서 광고주의 심기를 건드리는 바람에 해고 위기에 놓인 허무혁(조정석 분)이 잡은 연쇄살인범에 관한 특종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였다. 이에 자신이 잡은 특종이 가짜라는 걸 안 허무혁은 사건을 조작하기에 다다른다. 연쇄살인범이 쓴 메모라고 생각했던 가짜 메모에 이어 허무혁 자신이 연쇄살인범의 2차 메모를 작성한다.

특종에 목을 메고 사건의 결정적인 단서를 스스로 조작한다는 설정은 제이크 질렌할의 ‘나이트 크롤러’와 궤를 같이 한다. 특종을 위해서라면 사건을 조작하고 심지어는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나이트 크롤러’ 속 제이크 질렌할처럼 극단적인 조작은 하지 않더라도, 허무혁은 자신이 낚아챈 특종이 허구였단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아 연쇄살인범이 추가로 메시지를 남긴 것 마냥 메모를 조작한다. 이 설정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진실이 훼손되는 것쯤은 감수할 수 있다는 조정석 혹은 제이크 질렌할의 속임수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 영화 <특종: 량첸살인기> 스틸 이미지
그런데 ‘특종: 량첸살인기’에서 문제 삼을 부분은 여성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이다. 여성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두 가지 면에서 난점을 갖는다. 첫째는 허무혁에게 특종을 제공하는 불법체류자 여성이다. 불법체류자 여성은 허무혁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거주하는 집 주위에 연쇄살인마가 있는 것 같다는 제보를 한다. 잘릴 위기에 처한 허무혁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은 고마운 제보인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불법체류자 여성이 제보한 용의자는 연쇄살인마가 아니다.

불법체류자 여성이 헛다리를 짚은 걸 허무혁이 특종인 줄 알고 터트린 것이다. 그런데 불법체류자 여성은 허무혁의 보도가 특종으로 나간 다음에 허무혁에게 삼만 달러를 요구한다. 그 특종이 거짓말인 것을 모른 척하는 대가로 거액을 요구한 것이다.

이병헌이 터미네이터에서 악당 T-1000로 등장하거나 이연걸, 장쯔이가 악당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많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유색 인종, 특히 동양계의 무술 잘하는 배우는 히어로로 나오기보다는 백인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당으로 등장하기 일쑤다. 이와 마찬가지로 ‘특종: 량첸살인기’에서는 불법체류자 여성이 허무혁을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이는 다문화사회인 대한민국에서, 동남아시아인 혹은 불법 체류자에 대한 시선을 잠재적인 범죄자 혹은 도덕적으로 열등한 사람으로 부지불식간에 인식할 수 있게끔 만드는 위험성을 이 영화가 안고 있다는 이야기다.

▲ 영화 <특종: 량첸살인기> 스틸 이미지
또 다른 한 명의 여성 캐릭터는 허무혁의 아내인 수진이다. 허름한 건물에서 손발이 묶인 사람을 만나 겁에 질렸다면 재빨리 경찰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구해야 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수진은 건물 밖을 나와서는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되레 생전 처음 보는 남자에게 감금되어 있는 사람이 있으니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이렇게 수진이라는 캐릭터의 설정에 있어서도 여성을 상황 파악조차 제대로 못하는 여성으로 묘사한다는 점에 있어 문제시된다. 수진이라는 여성을 주인공에게 민폐를 끼치는 존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영화의 태도는, 여성 혐오가 수그러들지 않는 요즈음의 사회 추세 가운데서 자칫하면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바라보게 만드는 시선을 제시하지 않는가 하는 우려가 제기된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