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감세안 저지’를 외치며 큰소리치던 민주당이 돌연 합의하면서, 지난 주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이명박 정부의 ‘감세 법안(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양도소득세는 세율을 내리고 2년 동안 2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중과 규정 등을 없애기로 했다. 소득세와 법인세 세율도 2년간 2%, 5% 내린다. 종합부동산세는 세율 인하와 과세 대상 축소 등으로 ‘있으나 마나’의 수순에 접어들었다.

이번 세법 개정 국면에서 민주당이 일부 얻어낸 것은 기저귀·분유 등 일부 부가세 감면 관철과 정부의 상속·증여세 감면안(10~50% → 6~33%) 유보 정도다. 민주당 안팎에서 “부자감세 저지는 실패했다”며 “무기력한 졸속 합의”라는 혹독한 평가를 받을 만하다.

▲ 5일치 조선일보 1면 기사
이와 관련해 지난주 ‘가락동 채소할머니와 이 대통령의 포옹’을 눈물겹게 보도했던 일부 신문들은 주말을 지내는 사이 ‘할머니의 눈물’을 금세 잊어버린 것일까. 그동안 ‘부자 감세’라 비판받아 온 세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일제히 ‘세금이 얼마나 줄어드는지’를 친절히 소개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8일자 1면 ‘종부세, 지방 한 채 빼준다’에 이어 6면 전면에 걸쳐 상세하게 ‘바뀌는 세법 Q&A’를 대대적으로 다뤘다. 지방에 여러 채 주택을 가진 사람은 가장 비싼 주택을 종부세 대상에서 뺄 수 있고, 내년과 후년에 추가로 산 집은 20년 뒤 팔아도 일반과세이며, 11억6800만원 집을 4년 보유한 1주택자는 내년 454만원을 감면받는다는 내용들로 뒤덮인 지면이다. 봉급생활자들의 소득세율 인하(연소득 8800만원 초과는 2년간 유보) 등의 내용은 ‘사족’ 같이 보인다. 물론 8800만원 이하 고소득자는 중하위 구간 세율 인하의 혜택을 보기 때문에, 액수로 보면 고소득층의 소득세 감면금액은 더 늘어난다.

▲ 8일치 중앙일보 6면 기사
이날 <조선일보>는 종부세와 재산세 개정안을 집중해 다뤘다. 같은 날 A4면 기사 ‘단독명의 1주택만 종부세 장기보유·고령자 혜택’은 여야합의로 국회 기획재정위를 통과한 감세 혜택을 Q&A 형식으로 종부세·재산세 개정안을 상세히 보도했다. 해당 기사는 1주택 단독명의자의 올해분 종부세 환급 예상액수 계산표를 전하면서 종부세와 재산세의 환급 시기에 대해 “정치권의 분위기가 우호적이어서 내년 초에 환급될 가능성이 높다”는 희망찬 전망(?)을 전하고 있다.

<한겨레>는 감세안 합의를 비판하는 기사를 다뤘지만, 민주당 안팎의 목소리를 전하는 데 그쳤다. 이날 6면 ‘“강부자 예산에 백기” 비판받는 민주당’기사에서 민주당 개혁세력 모인임 민주연대의 7일 기자회견 내용과 민생민주국민회의의 논평 등을 인용해 ‘졸속합의’ 비판을 전달했다. 이어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이번 합의를 점수로 매기면 79점 정도로 만족할 순 없지만 부자감세 저지와 서민 감세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우리 주장만 일방적으로 하다 성과도 없이 완패할 순 없지 않느냐”는 변명(?)을 전달했다.

▲ 8일치 한겨레 6면 기사
오히려 이날 한겨레는 민주당보다는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 전반을 비판하는 보도에 집중했다. 한겨레는 참여연대와 공동으로 ‘서민경제 살리기 긴급제안 민생뉴딜’ 기획의 연재를 시작하면서 ‘“서민복지에 나랏돈 풀어 내수 살려야”(1면)’, ‘“두 아이 육아비 57만원…적자 느는데 줄일 곳 없어”(4면)’, ‘감세할 돈 20조면 서민 일자리가 100만개(5면)’,‘세계는 서민지원…한국은 ‘부자 감세’’ 등의 기사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규모 감세와 건설 투자는 실질적 경기 부양책이 아니므로,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실질적인 고용대책에 적극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급생활자들을 고려한 탓일까. 한겨레는 이번 민주당의 ‘부자 감세안’ 중 일부내용에 대해 중앙 등과 같은 해설서를 싣기도 했다. 같은 날 경제면(29면) 기사 ‘연봉 4천만원, 내년 소득세 48만원 준다’에서 “가족 구성원이 4명이고 연간 4천만원의 급여를 받는 근로소득자는 내년에 근로소득세를 48만원 가량 덜 내게 된다”면서 기획재정부의 발표 자료를 단순히 전달하는 데 그쳤다.

이에 견줘 이날 <경향신문>은 민주당의 감세안 합의를 매섭게 비판하고 나섰다. 사설 ‘‘부자 감세’ 관철한 여당, 막는 척 시늉만 낸 야당’에서 “애초 정부가 내세운 감세의 골격은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면서 “정부여당의 완벽한 승리”라고 평가했다.

이어 경향은 “제1야당인 민주당은 정부안에 대해 부자들을 위한 감세안이라며 강력 저지 입장을 공언했지만 속수무책으로 허물어지고 말았다. 싸우는 척 흉내만 내다 마는 무기력한 모습만 노출했다”면서 “이럴거면 무엇하러 부자 감세를 막겠다고 그렇게 큰 소리를 쳤는지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경향은 정부의 감세 대책에 대해 “물론 감세를 하면 소비는 다소간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늘어나는 소비는 줄어드는 세금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라면서 “나머지 대부분은 은행통장으로, 아니면 해외소비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부자 감세보다 저소득층 재정 지원이 사회통합 강화 측면 말고도 경기부양 효과가 훨씬 크다”면서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이 점을 지적했지만 ‘강부자’ 정권은 집권하자마자 자신들이 속하기도 한 부자들의 세금부터 깎는 후안무치한 짓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국회의 예산안 처리에 대해서도 경향은 “경제위기를 맞아 사회복지 예산을 대폭 증액해야 한다는 요구에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있다”면서 “그러는 사이에도 대통령의 고향인 포항에선 정부 예산이 쏟아지고 있다고 환호성을 올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 8일치 경향신문 31면 사설
또 해당 사설은 최근 이명박 대통령과 가락시장 할머니의 포옹을 언급하면서 “이 할머니만큼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살기가 어렵다고 청와대에 연락하면 다들 구제라고 해 주겠다는 뜻인가”라며 “이 대통령과 정부는 하루하루 사는 것만도 버거운 사람들을 임기응변으로 호도할 것이 아니라, 이 경제위기의 혹독한 한파를 함께 이겨낼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정책으로 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언론이 각자의 관점에서 감세 문제를 보도할 수는 있다. 하지만 불과 며칠 전 가락시장 할머니를 최루성 이미지 기사로 도배한 언론들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이번 감세 합의로 그 할머니에겐 어떤 혜택이 돌아가는지 한 줄 정도라도 설명하는 게 도리 아닐까. 설령 복지예산이 줄어드는 바람에 ‘견디다 견디다 못해’ 청와대에 연락해야 할 날이 더 빨리 오게 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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