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라디오에선, '지금은 여성시대'라는 경쾌한 외침이 터져나온다. 그 방송이 처음 시작된 75년부터 그랬는가는 알 수 없지만, 그 구호를 들을 때마다 꽤나 역설적인 비명으로 들렸다. 아직은 여성시대가 아니라는. 이번주 주말기획의 제목은 '지금은 아고라 시대'이다. 행여, 마찬가지의 역설로 읽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 지금은 아고라 시대이다. 그것은 사실이되 또한 사실이 아니다.

아고라라는 대명사는 그 자체로 2008년이기도 하다. 인터넷은 우리의 보편적 환경이다. 또한 아고라를 보통명사로 쓰면 2008년의 특정한 사건이 되기도 한다. 다사다난한 올 한 해 말이다. 동사로도 쓸 수 있다. 아고라는 2008년의 행동이다. 아고라에 관한 3편의 글을 싣는다. 이 글 모두는 아고라에도 전송된다. 참고로 말하자면, 절대 아고라에게 청탁이나 대가를 받지는 않았다.

다소 창의적이지 않은 은유를 사용하자면, 인터넷은 우리 실존의 거울이다. 넷은 우리가 지닌 다양한 얼굴과 모습들을 때로는 진솔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드러내준다. 먼저 넷을 매개로 자신을 드러내고 타인과의 관계맺기나 소통을 시도하는 방식이 가진 순기능 혹은 생산적인 측면을 잠시 돌아보자: 나이와 성별, 직업 등의 차이를 넘어서서 공통의 화제와 관심거리를 추구하고, 그럼으로써 독특한 공동체를 구현하고 있는 수많은 넷상의 취향의 공동체들이 각종 동호회와 클럽에서 드라마 팬덤에 이르기까지 존재한다.

이러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물리적인 경계 그리고 사회적인 차이와 거리감이 주는 제약을 벗어나서 유용한 정보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서 의견과 생각을 비교적 자유롭게 교환한다. 어떤 궁금증이나 특정한 사안에 대한 조언이나 정보를 구하는 타인들의 문의에 대해 일면식이 없음에도 정성스레 답을 해주고, 같이 고민하거나, 특정한 사안을 두고 공감의 나눔과 감정의 발산을 함께 도모하는 모습은 온라인상에서 흔히 보고 체험할 수 있는 행위이다.

한편 참여와 열정의 발현이라는 측면에서. 정치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이 팽배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넷상에서는 종종 주요한 정치·사회적인 이슈들에 대한 논쟁과 ‘이슈 파이팅’이 꼬리를 이어가며 치열하게 벌어지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정치적인 영역’은 일상과 접목되고, 넷은 특정한 집단만이 아닌 무수한 무명씨들이, 혹은 때로는 제도권의 알려진 전문가나 학자들의 실력을 뛰어넘는 ‘중원의 고수’들이, 개입하고 활동하는 영토로 활성화된다. 여기에 패러디와 같은 발칙한 상상력과 대중의 감성이 가세를 하면서 넷은 수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난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삶의 정치’의 한 사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던 촛불정국을 떠올려보자. 정부의 성급한 수입 결정으로 촉발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과 ‘사회적으로 제조된 위험성’(socially-manufactured risks)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과 불만은, 일상과 정치적인 영역의 역동적인 결합을 가져왔고, 수많은 이들이 표출하고 행동하는 주체가 되어 온라인에서 오프로 나아가는 계기를 제공했다. 정보의 소구와 나눔,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정서적인 공감과 넷심의 형성, 다양한 주체들 간의 결연 맺기(association), 정치적인 감성의 발휘와 행동으로의 전화와 같은 매우 다양한 움직임과 흐름들이 넷을 매개로 삼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 다음 아고라를 통해 모인 시민들이 낙하산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는 YTN 노조에 격려와 응원을 보내고 있다. ⓒ윤희상
반면에 넷이 제기하는 문제점들 역시 존재한다. 흔히 말하는 악플과 루머 그리고 특정 사안에 대한 맹목적인 편 가르기나 지나친 당파성의 발현, 매체를 타고 순식간에 번지는 어떤 추문이나 스타의 삶을 파고드는 과민한 대중의 반응과 훔쳐보기 같은 부정적인 요소들 역시 넷공간에 일정하게 존재한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얼굴 없는 다중 혹은 개중들 간의 만남이 활발하게 그리고 우발적으로 이루어지는 넷환경 속에서 우리 안의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모습들 외에, 때로는 일부이긴 하나 부끄러운 모습과 일그러진 자아가 불현듯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주지하다시피 마구잡이로 타인을 비방, 공격하거나 맥락에 상관없이 감정을 배설하는 악플러와 막무가내로 ‘도배질’을 일삼는 이른바 ‘알바’는 이런 온라인의 부정적인 측면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스테레오 타입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성과 한계는 온라인만의 전유물이거나 온라인에만 존재하는 속성만은 결코 아니며 오프라인의 삶 속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지하철이나 술집 같은 공공의 영역 속에 사적인 주체들이 섞이는 공간을 한 번 떠올려보자. 이들 공간 속에서 우리는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기보다는 큰 목소리와 거친 행동으로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무례하게 나오는 이들을 종종 접한다. 회사나 학교와 같은 조직 내에서도 근거가 희박한 소문이나 비방, 그리고 타인에 대한 도를 넘어서는 공격과 질시는 인적인 네트워크와 은밀한 소문의 채널을 타고 흘러다니며, 오해와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내가 이 글의 앞부분을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상당히 진부할 수 있는 거울의 은유로 인터넷에 대한 내 자신의 관찰과 경험을 논한 이유는 간단하다: 인터넷이라고 부르는 공간은 오프라인에서 우리가 영위하는 삶과 결코 떼어놓기 어려운 존재성과 사회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측면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온라인의 세계는 전원을 끄면 금방이라도 현실에서 사라지는 식의 휘발성 혹은 현실세계와는 확연하게 구별되는-확실하게 그어진 경계와 더불어 독립성이 발휘되는-영역은 아니기 때문이다. 온라인은 오히려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사회 혹은 실제세계와 상당히 많은 영역을 공유한다. 특히 청소년에서 30대 후반 정도까지 정보화 테크놀로지를 자신들의 삶속에서 일상적으로 활용·체험하고 있는 이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에게, 다소 과장하자면 넷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의 가능성은 이제 거의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넷은 매우 긴요하고 친숙한 삶의 구성요소가 되었다. 넷이라는 사회적인 매체와 매개의 장이 작동하지 않는 사건을 대면하게 된다면 대부분의 시민들은 불편함을 넘어 엄청난 두려움과 혼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달리 말하면 넷과 현실세계 간의 접히고 겹치는 방식과 흐름들이 복잡하게 맞물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들을 형성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넷세상과 사회적으로 작동하는 세계의 겹침과 스밈 혹은 양자 간의 불균등한 삼투와 접합은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현실이자 실체이다. 이런 측면에서 ‘넷세상’에 대한 접근과 분석이 보다 균형적이고, 입체적이며, 사려 깊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인터넷 공간의 작동을 이야기할 때 많은 이들이 ‘공론장’이라는 개념을 꺼낸다. 주지하다시피 넷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논의와 숙의의 공간 개념을 빌려오거나 투사한 온라인 공론장의 모델과 위상은 넷의 초창기부터 인구에 회자되어 왔다. 이에 따르면 넷공간은 자유로운 의견과 사고의 교환, 그리고 설득과 토론 혹은 공동성찰에 의한 일정한 합의나 상호이해가 가능한 공간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넷이 진화하면서 이러한 추측은 일정 부분 과도했던 것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넷이 숙의와 진중한 토론 그리고 견해와 주장들의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관용적인 교류가 가능한 가능성들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앞서 언급한 문제점들을 노출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명의 네티즌으로서 또한 미디어학자로서 나는 넷에 대한 부정적인 진단 역시 과도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나아가서 특정한 정치적인 목적과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아고라의 예를 들어보자. 이미 많은 이들이 이 사이트에 대해서 논의했기에 긴 말은 피하련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아고라에 드나들며, 매우 논쟁적인 사안들을 두고 이루어지는 네티즌들의 글쓰기와 발언의 양태들에 관심을 두고 관찰한 이가 있다면, 아고라가 일부 정치세력이나 보수언론이 작심하고 그려내듯이 매우 편향되고, 합리적이지 못하며, 혹세무민하는 속설들이 난무하는 공간이 아님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새 정부 들어 국민들과의 논의도 없이 무리하게 추진하려고 했던 대운하에 대한 전문가의 양심선언에서 탄핵카페의 등장, 촛불소녀에서 유모차부대에 이르기까지 각성한 새로운 주체들의 등장, 그리고 최근에 많은 관심을 자아내고 있는 미네르바와 같은 ‘파워 논객’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아고라와 나아가서 다수의 의견과 취향의 공동체들은 2008년 한국사회의 격렬한 정치변화와 사회문화적인 이슈들을 논하는 중요한 발언대이자, 대중적인 포럼 그리고 난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아고라는 점잖은 석학이나 전문가들이 전문적인 용어와 합리적인 언술로 특정 사안을 논의하는, 예컨대 하버마스가 그려낸 공론장의 이상적인 모델은 아닐 수 있다. 아고라는 소수의 전문가만이 아닌 다양한 세대와 그룹의 사람들이 방문하고 자신들의 의견과 주장 그리고 정서적인 반응을 비교적 자유롭게 발현하는 표출의 공간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달리 말하면 아고라와 나아가서 수많은 인터넷 공간의 사이트들은 한국사회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정치적인 이슈, 정책상의 오류와 부조리함, 그리고 사회적인 쟁점들에 대한 정서적인 토로와 감성적인 대응이 아래로부터 진하게 발산되는 중요한 표현과 공감의 공간이다.

▲ 다음 아고라 화면 캡처.
이 공간에 오는 이들에게 합리적인 비판과 대안 그리고 논의의 제시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이 피부로 느끼고 절감하는 주요 사안과 쟁점들에 대한 감정과 열망의 표출 역시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그러하기에 아고라의 역할과 명암 그리고 아고라의 기능을 둘러싼 한국적인 맥락의 특수성을 진단하는데 있어서, 서구의 특정한-하지만 제한적인-역사사회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추출한 공론장의 모델을 일면적으로 제시하고 절대적인 비교의 잣대로 삼는 것은 상당한 한계를 지닌다. 아고라에는 물론 악플러나 특정한 정파성을 앞세우는 이들이나 현실에 대한 거칠고 단언적인 분석과 주장도 주기적으로 출몰하지만,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처하는 나름의 자정작용과 룰 역시 존재한다.

또한 엘리트나 정치권력이 제시하는 언설과 현실문제에 대한 설명력이 정당성과 설득력을 상당히 잃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의 중요한 쟁점과 이슈들을 대안적이고 비판적으로 보려는 관점들 역시 상당수 존재한다. 현재 많은 화제를 낳고 있는 미네르바의 경우에도, 그는 이른바 고급정보를 보유하고 있다는 관료들이나 금융과 증권계의 인사들이 미처 예측하지 못했거나, 발언하기를 꺼리는 외환과 경제상황에 대해 상당히 깊이 있는 진단과 지식을 보여주었다. “(요즘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로 시끄럽습니다.) 이렇게 된 까닭은 그의 분석이 정부보다 더 정확하고 논리적이기 때문입니다. 누군지 찾아내고 입을 다물게 하기보다는 미네르바의 한 수에 귀를 기울이는 게 맞아 보입니다.” 신경민 앵커가 얼마 전에 한 말이다. 네티즌들은 미네르바가 예언자도 아니며,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의 분석에 오류가 없다고 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소위 제도권언론과 관가의 전문가들 그리고 금융권의 ‘고수’들이 그간 보여준 실망스러운 행적과 언행, 그리고 책임의식의 부재에 비추어, 미네르바의 직설적이고 명쾌한 화법과 해박한 지식이 주는 통찰력과 비판적인 현실 환기의 효과에 대중은 강한 매력과 위안을 느끼게 된 것이다. 제도정치가 자초한 신뢰의 위기와 소통 부재의 시대에 미네르바는 대중이 자신들의 불안감과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불안한 시대상을 대표하는 강한 존재감을 지닌 문화적 아이콘으로 부상한 것이다.

촛불집회를 기점으로, 수세에 몰렸던 정치권력은 인터넷 공간에 대해 일정한 판단을 작정하고 내렸다. 단적으로 지배엘리트와 보수진영은 넷이라는 공간이 사사건건 정부의 정책을 훼방하는 세력의 본거지이며, 이들에 의해서 대중은 선동을 당하는 피동적이거나 심약한 존재로 간주한다. ‘괴담’, ‘배후,’ ‘선동’ 등의 표제어들을 위협적으로 휘두르면서, 정부와 보수성향의 학자와 언론인들은 넷상의 표출적인 공간들을 부정적으로 그려내고, 그도 모자라, 제도적인 측면에서 넷을 단속하고 통제하려는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집요한 시도를 하고 있다. 권력이 체제유지를 위해 인터넷 길들이기에 이미 들어갔다고 판단하는 학자와 네티즌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물어보자. 대체 정치인과 관료들은 인터넷 공간에, 예를 들자면 아고라와 같은 곳에, 들어가 보기는 한 걸까? 그들은 아고라의 네티즌들이 스스로 엮은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를 구해서 한 번이라도 읽어는 본 것일까?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을 네티즌들에게도 문의하고 싶다. 당신의 공론장은 안녕하신가? 근자에 들어 인터넷에 의견을 올리거나 덧글을 달며 행여 정치권력의 심기를 거스르게 될까봐 자발적인 ‘삭제신공’을 적용한 적은 없으신지? 이 기회에 넷이 민심을 주체적으로 표명하고 당신의 주관을 자유로이 드러낼 수 있는 다양성의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현재 진행 중인 인터넷 옥조이기에 반대하는 노력에 동참해보시기를 권한다. 당신의 침묵은 정치권력의 자만과 오판을 용인할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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