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이 떨어진다. 주택 담보 대출의 연체율이 높아진다. 주택에 대한 차압이 늘어난다. 급매, 경매가 쏟아진다. 부동산 침체의 악순환이 심화된다. 언제가 됐건, 반드시 부동산 거품은 폭발한다.

단순한 예측이 아니다. 경제학의 일반론은 더더욱 아니다. 2007년 4월, 미국 제2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회사인 뉴센트리파이낸셜(New Century Financial)의 파산 신청으로 시작되어, 지난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걷잡을 수 없게 된 미국발 금융위기의 명징한 과정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 사태 이후 1년 6개월이 흘렀다. 우리에게 던져진 교훈과 남겨진 전망은 무엇인가? 질문을 수습할 시간이 없기 때문일까. 이명박 정부는 숨 돌릴 틈 없이 계속 돈만 던지고 있다. 재정기획부 장관은 외환시장에 돈을 내던지고, 대통령은 아침 라디오에 나올 때마다 선물 꾸러미를 푼다.

엊그제는 1조3천억원을 또 던졌다. 대상은 저축은행들, 이유는 프로젝트파이낸싱(이하 PF금융) 대출채권 매입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금융 한국을 떠받치는 새로운 기둥이라던 PF금융이었는데, 별안간에 천덕꾸러기가 됐다.

▲ 12월 4일자 서울신문 1면.
분석하기 벅차서일까, 미디어들의 시각은 출렁이고 있다. 부실기업까지 살리자는 거냐며 고개를 흔드는 정도이다. 조금 더 나가면 ‘도덕적 해이’를 걱정하는 정도이다. 물론, 워낙 고난의 행군 중일 테다. 사건이 많아지면서 예측과 분석이 어렵다는 점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해석을 포기하면 안 된다. 그럴수록 상황은 더 걷잡을 수 없어진다. 이번 PF금융 대출 채권 매입의 건이 정확히 그렇다.

대주단 협약, 은행에 대한 대출 압박, 미분양 아파트 매입 등으로 이어지던 하나의 흐름이 이번 PF금융 대출 채권 매입으로 정리되고 있다. 말하자면, 분기점이다. 정부는 비로소 건설경기 활성화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마 중계하듯 스트레이트로 쫒거나, 두고 보자는 뒷북격의 해설을 하는 것으로는 경제 위기의 본질에 다가서는 것은 고사하고 사안을 입체화시키기조차 벅차다. 한정된 인력, 부족한 시간일수록 ‘길목’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병법의 기본이다. 지금, 국내 경제 위기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동시에 ‘길목’에 들어섰다.

저축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은 한국판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다. 서브프라임모기지론은 별개 아니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신용창출을 통해 가계부채를 늘리는 편법이 입안된다. 낮은 금리가 유지된다. 낮은 금리로 형선된 유동성이 부동산 투기로 이어진다. 그렇게 주택 금융시장이 탄생했다. 일정 정도 경기가 부양되면 금리를 올린다. 금리가 오르면 창출된 신용은 신기루가 되고 원금과 이자 연체가 늘어난다. 결국, 부동산 거품이 꺼진다.(이후의 과정은 다시 이 글의 첫 단락으로 돌아간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고, 주택 담보 대출의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이 대목에서 부실채권 자체를 사버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PF금융 대출채권 매입이 경제 위기를 개선할 수 있을까? 아니다. 또 돈이 쓸려 들어가는 것일 뿐이다. 정부 스스로도 ‘연착륙’이란 어정쩡한 표현을 쓰고 있다. 문자 그대로 긴급한 수혈일 뿐이다. 최소한의 위험을 관리할 뿐이다. 아니 연장할 시간을 벌 뿐이다.

정신을 차리기만 하면 아직, 완전히 늦은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이 길목을 빠져나가는 데 꽤 시간이 걸린다. 우선,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에 걸려 있다. ‘옥석을 가리라’는 요구도 만만치 않다. 언론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 사태의 역사적 교훈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전망이 있다. 교과서가 있으니 시험이 마냥 두려운 일만은 아니다. 대통령과 당장의 관료들보다 경제위기가 더 무섭다는 결의를 가지면 된다.

금융 ‘구제’에 앞서 금융 ‘규제’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다가올 위기가 차단되고, 현재의 위기가 객관화된다. 투기적 금융상품을 전면 금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기업의 부실화를 막기 위해 넣을 돈 1조3천억원이 있다면, ‘공공은행’ 같은 것을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기업의 부도를 막기 위해 돈을 우회시키는 것보단 가계 부도를 막도록 직접 주는 편이 낫다. 당장에 자본시장통합법 저지, 금융산업분리 완화, 한미FTA 비준 중단 같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위기는 깊다. 단, 할 일도 많다.

* 이 글은 사회진보연대에서 발행하고 미디어스에 연재된 <금융위기 안내서 10문 10답>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