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였던가, 어느 토론회 자리에서 만난 안영춘 편집장이 오래간만에 본다고 인사말을 던진다. 퉁명스러운 말투다. 대체 글 안 쓰고 뭐 하시냐는 재촉이다. 남들보고 열심히 원고료 안 받고도 쓰라면서 막상 자기는 뭘 하냐는 핀잔처럼 들린다. 글쎄 말이오. 어제 밤에는 완군이 날 청량리 앞 술집으로 불러낸다. 내년 2월 결혼할 제 여자친구, 사랑스러운 연구자·활동가 형진과 함께 있다. 같은 이야기다. 이런 주제, 저런 토픽을 툭툭 던지며 유인한다. ‘좋네요. 선생님, 다음 주에 그거 한번 써 보시죠.’ <미디어스>의 멋진 기자들께서도 요즘 내가 왜 글 안 쓰는지 궁금해 한다고 말 전한다. 허허. 글쎄요. 쓰려다 접고, 쓰다가 말고, 쓰고도 버려서 그런가. 눈치를 봐서? 이 글의 운명은 또 어떻게 될지, 일단 써보자. YTN에 관해서다. 몇 번이나 쓰다가 미룬 숙제다,

▲ YTN노조원 100여명이 '구본홍 출근 저지 투쟁'을 하고 있다. ⓒ송선영
간단하게 결론부터 까겠다. 물론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비정상적인 YTN 사태를 정리할 때가 되었다. 그러기 위해 대통령 언론 특보의 무리한 사장 낙하 카드를 이제 접어야 한다. 해고·정직된 기자들을 원상 복귀시켜야 한다. 그러고 나서 이후 문제에 대해 합리적으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 YTN 정상화의 제안이다. 더 이상 지고이기는 세력다툼의 문제로 접근하지 말자. 누구를 죽이고 살리는 정략적 계산의 한계를 넘어서라. 우울한 시대는 희망의 타결을 요구한다. ‘민의’와 ‘민생’을 뿌리칠 수 없는 권력의 입장에서, 상식적 마감의 카드를 회피하는 것은 한 마디로 반역이다. 순리를 택하는 게 자신이 대접받고 모두가 기뻐할 정치적 공생의 법칙이다. 그러하지 않은가?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것은 군대에서나 통할 무지막지한 지시이고, 현실정치에서는 안 되면 접는 게 맞다.

안 되는 걸 억지로 밀어붙이는 걸 보고 우리는 무리한다고 한다. 무리해서 이길 수 없고, 무리하는 쪽이 결국은 진다. 무리하면 꼭 사고가 터지는데, YTN사태는 바로 권력이 무리해서 일으킨 사고다. 이렇게 분석하면 문제 해결책도 간단하게 정리된다. 사실 정신력과 기술의 합리적 배치·운용이 실력이며, 실력은 무리하지 않은 페어플레이를 통해 나타난다. 실력을 다한 선수들의 페어플레이에, 폭력이나 반칙·매수가 없는 깔끔한 게임에 관중들은 승패와 관계없이 박수를 보낸다. 후진 선수들의 저질 플레이에 관중들은 야유를 보낸다. 야구에는 콜드 게임이라는 게 있다. 지리멸렬한 게임을 다름 아닌 관중이 중지시키는 것이다. 물론 몰수 패 당한 쪽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게다. ‘이씨, 계속하면 분명 뒤엎을 기회가 올 텐데.’ ‘한방이 곧 터질 텐데.’ 그러나 관중들은 냉정하다. 이제는 끝! 더 이상은 그만!

12월3일, YTN 노동조합은 한결같이 아침 8시 YTN 빌딩 후문과 17층 사장실 앞 복도에서 ‘공정방송 사수 낙하산 사장 저지’ 집회를 연다. 정말 집요한 상식의 분투다. 상식에 기댄,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상식적 언론인들의 ‘상식 사수 몰상식 저지 투쟁’이다. 그래서 상식적 인간들의 십시일반 후원이 따를 수밖에 없고, 여론의 지원이 계속된다. YTN 노조가 <PD수첩>과 더불어 송건호 언론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언론의 독립이라는 민주 사회의 운영원리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는 게 심사위원회의 선정이유다. 맞다. 약자의 선한 사회행동에 대한 또 다른 약자들의 상식적 보상이다. 이 상식의 유대를 위반할 때 권력은 자신의 소외를 스스로 폭로한다. 민주적 사회운영의 기본원칙을 위배할 때 권력의 미래는 극히 불투명해진다. 그러하니 접으라는 여론의 명령을 따르라.

▲ 매일경제 기사 화면 캡처.
물론 오늘까지도 YTN에 관한 이상한 이야기가 떠돈다. “비언론에서 지분 참여 하는 게 YTN에 좋다”고 한 투자증권회사가 전망 리포트를 내놓는다. 12월3일자 <매일경제> 기사를 보니, 요지는 다음과 같다. “YTN이 한국의 CNN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정부 보유 지분을 조속히 매각할 필요가 있다.” “언론사가 아닌 곳에서 지본 참여를 해야 기존 영업력이 유지되면서 자본력이 더해질 수 있다.” ‘인수합병(M&A)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언론이 아닌 자본이 들어오면 공익성이 침해되고 정보가 왜곡될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시청자들이 불공정한 정보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매경>이 전하는 연구원의 분석이다. 직접 전화해 본다. 그의 대답은 분명하고 간단하다. 시장의 관점에서 오직 회사의 주식가치를 높이고 수익률을 올리는 데 관심을 둘 뿐이란다. 언론사도 예외가 아니란다.

애널리스트의 이런 전망이 현 문맥에서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지를 읽어내는 것은 여러분의 몫. 개인적으로는, 언론 및 언론사를 대하는 저쪽의 솔직하고 투명한 신자유주의에, 소신에 놀랄 뿐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와 함께 실패한 것으로 드러난 시장 일방주의는 이렇게 이 땅에서 버젓이 살아남아, 전문가의 언어로 회자하고 있다. 언론사조차 오직 돈의 가치로서만 평가하겠다는 리포트가 증권업계에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를 ‘상식적’이라 할 수 있을까? 상식을 common sense 즉 ‘공통감각’이라고 정확하게 옮길 때, YTN 문제는 곧 주가 문제라는 생각에 2008년 12월3일 현재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동감을 표시할 것 같은가? 주식투자자나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는 모르겠지만, 일반 시민과 시청자들에게 통용될 수 있을지는 극히 회의적이다.

삶의 위기에 처한 대중들이 지닌 공통감각과 한참 어긋난 혹은 거리 먼, 오직 특별한 계급의 특수한 이해관계를 반영한 반상식적 전망으로 보인다. YTN에 대한 현 정권의 전망도 그게 비상식적이기 때문에 통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것이다. 합당하면 통하고, 부적합하면 막힌다. 그게 만사의 이치다. 정치에도 기초질서라는 게 있고, 그걸 지키는 게 민주정치의 원칙이라면, YTN 사장 낙하산 투하로 촉발된 질서문란의 사고도 당사자인 현 정권이 정리하는 게 맞다. 한번 양보하면 계속 밀리는 게 아니다. 한번 제대로 판단하면 계속해 대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게 소통의 길이고 민주주의다. 상식에 편승할 때, 모두가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 YTN 구성원이나 일반 시민뿐만 아니라, 이 문제로 인해 잔뜩 스트레스 받았을 낙하산 사장이나 그 정치적 후원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2월을 YTN 사태 정상화의 달로 기억하고 싶다. 경제 붕괴의 서글픈 현실 속에서 시민들이 받을 드문 기쁨의 카드가 되게 하라. 그렇게 하기 위해 다시 한번 할 일을 정리하자. 무리하게 투입한 낙하산을 접자. 부당하게 처벌된 기자들에게 자기 자리를 되돌려주자. 모두가 인정할 만한 사장을 민주적 선임 절차를 통해 새롭게 뽑자. 이 대통령이 비상한 상황은 비상한 행동을 요구한다고 말했던가? 지당한 말씀. 문제는 공감을 일으키는 행동이다. 나는 언론·미디어 관련 복잡사태 해결을 위한 비상한 행동의 실마리가 다름 아닌 YTN 정상화에 있다고 단언한다. 단박에 YTN 사태를 해소하는 정치적 상생의 카드, 지리멸렬하게 끌어 모두를 피곤케 하는 카드, 또 다른 무리수를 행함으로써 더 큰 실패를 자초하는 카드. 타짜의 솜씨가 아닌, 상식의 결단으로 첫 번째 카드를 택하길 요구한다.

지금처럼 ‘비평의 무기’를 예리하게 연마하고 정확하게 사용해야 할 때가 있을까? 벼락같은 이성의 도끼질, 결을 거스른 감수성의 대패질에 열중하지 않을 수 없다. ‘래디컬’한 저널리스트로의 변신. 자본권력과 국가권력, 매체권력, 지식권력이 나의 상대다. 가끔 참패당하고 때로는 붙잡고 버티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왼손펀치 한방을 가진 선수로 남고 싶다. 인민은 착하고 또 무섭다. 이들과 함께하는 비평 말고 그 어떤 것이 후기근대, 후기자본의 불모지대를 넘어갈 수 있겠나? 목청 낮춘 채 예의주시하는 보통사람들의 삶, 이들의 언어에 스며들어 비평의 유격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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