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개성관광과 남북 열차운행이 중단됐다. 12월1일 북한은 예정대로 군사분계선을 통한 남북간 육로통행을 차단했다. 개성공단에 상주할 수 있는 남측 인원도 크게 줄여버렸다. 예상밖의 강수다.

▲ 한겨레 12월2일차 1면.
하지만 이런 북한의 태도가 놀랍다고 할 만한 구석은 별로 없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우선 개성공단 사태가 처음 터진 11월24일 이후 정부와 여당이 보인 태도에서도 알 수 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만 해도 북한의 발표를 하루 앞둔 11월30일, 느닷없이 ‘종북주의’를 끄집어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 등 야3당 대표가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며 ‘반MB연합’에 나서자 박 대표는 이렇게 반격했다. “북한에 침묵하고 비위를 맞추는 종북주의적 태도는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이 대통령은 11월2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북한의 조치가 ‘대화와 협상을 통한 갈등 해결’을 명시한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와 10·4선언 위반이라는 점을 알고 있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이 덧붙인 말은 “왜 언론에는 그런 게 부각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정부와 여당의 반응을 요약하면 개성공단 사태는 10·4선언을 위반한 북한의 책임이고, 이를 지적하지 않는 야3당과 언론도 문제라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의 이야기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사태를 접근하는 북한의 태도에도 비난받을 구석은 분명히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해 한나라당에서 가장 진보적인 목소리를 냈던 홍정욱 의원조차 “개성공단을 일방적으로 닫아버린 북한의 자세는 분명 잘못된 일”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을 편들어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굳이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개념계획 5029의 작전계획화론과 한미 합동군사훈련 실시, 대북단체의 전단살포 사건 등을 들춰낼 필요도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관계를 다루는 자리에 어떤 인사가 오르내렸는지만 봐도 남북관계 경색은 필연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11월 27일자 경향신문 9면.
우선 현 정부의 대북라인의 핵심으로 떠오른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을 살펴보자. 김 비서관은 성균관대 교수 신분이었던 2005년 5월 북한에 대한 ‘정밀폭격’을 검토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을 펼쳤던 인물이었다. 당시 한 신문사가 주최한 북핵관련 전문가 좌담회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과 무력 사용만은 안 된다는 생각은 신화고, 강박관념이다. 그것이 오히려 북핵문제를 흐리게 하고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막을 수 있다. 정밀폭격에 따른 주가 폭락이 위험한지, 북한의 핵 보유로 한국 경제의 도산이 더 위험한지 생각해야 한다. 하루 전쟁은 무섭고 20년, 30년 국가 경제를 거덜내는 건 무섭지 않다는 것인가. 정밀폭격은 카드로만 존재해서도 안 되고, 북한에 대해 어떤 가능성을 열어둬서 평화도 지키고 핵도 막는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 경향신문 2월18일자 1면.
지난 6월에는 통일교육을 책임지는 자리인 통일부 산하 통일교육원장에 홍관희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이 물망에 올랐다. 홍 소장은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적 문서’라고 비난하고 공개적으로 ‘흡수통일’을 주장해왔던 인물이었다. 논란 끝에 홍 소장은 통일교육원장에 임명되지 못했다.

MB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됐던 남주홍 경기대 교수도 냉전적 대북관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다. 남 교수는 과거 ‘통일은 없다’는 저서를 펴내기도 했다. 그도 결국 자녀 이중국적 문제 등으로 낙마하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을 사람도, 대북정책을 막후에서 조율하는 ‘핵심 실세’ 자리에도, 심지어 통일을 교육하는 최고책임자에도 하나같이 대북 강경론자를 앉혔거나 앉히려고 시도한 셈이다.

대북 관련 인사를 이렇게 했는데도 남북관계가 좋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일이 아닐까.

최성진은 현재 한겨레21 정치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때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방송작가 생활을 경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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