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4일 SH공사와 엔터식스는 손실보상 액수를 합의했다. 60억원이다. 당초 이 소송은 SH공사가 가든파이브에 현대백화점 아울렛을 유치하기 위해 엔터식스가 입점해있던 테크노관 1층과 리빙관 1층을 비워달라고 명도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명도소송은 가든파이브에서 벌어지고 있는 법적 소송 중 가장 흔한 것으로, 2010년부터 지금까지 총 140여 차례의 소송 중 100여 차례가 명도소송이었고 전체의 70%를 상회한다. 대부분 입점 상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고, 거의 SH공사가 승소했다.

그런데 엔터식스와의 명도소송은 다른 양상을 띤다. SH공사가 끝까지 소송을 진행하지 않고 손실보상을 두고 조정을 거친 것이다. 입점 상인에 대해서는 ‘안타깝지만 법과 원칙에 따라 명도소송을 진행할 수 밖에 없다'고 냉정하게 말했던 SH공사가 왜 엔터식스와는 협의조정을 하게 되었을까? 그 배경에는 올 해 안에 입점하기로 되어 있는 현대백화점 아울렛 탓이다. 즉, 이미 입점시기를 정해놓은 탓에 해당 시기를 넘겨서 소송을 끌 수 없게 되버린 것이다. 실제로 SH공사 변창흠 사장은 지난 6월 시의회에 출석해서 “현대백화점이 들어왔을 때 엔터식스가 나가야 하니까"라고 언급하고 있다.

“○남창진 위원 18쪽에 보면 현대백화점 입주예정이 있는데 이것은 제 지역이어서 궁금해서요. 엔터식스와 지금 명도소송 진행 중이지 않습니까?

○SH공사사장 변창흠 네.

○남창진 위원 원래 현대백화점이 12월 금년 안에 들어오기로 예정되어 있는데 이것 조정신청 했다는데 이것은 지금 현재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SH공사사장 변창흠 지금 엔터식스는 현대백화점이 들어오는 것이 전제가 되니까 현대백화점이 들어왔을 때 엔터식스가 나가야 되니까 거기에 대한 손실을 보전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제안하기는 손실보전금을 감정평가금액이나 조정금액으로 하자고 그랬는데 이것을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엔터식스가 들어와서 전체 상가 자체가 활성화가 안 되어서 당초에 연 400억 정도 매출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실제 50억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명도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조정을 통해서 저희들이 보상해 줄 수 있는 금액을 산정해서 지금 감정평가업체에 의뢰를 해서 법원이 지정해서 감정평가금액이 나와 있는 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다시 한 번 조정회의가 진행되었습니다.”<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제261회 상임위, 2015년 6월 30일>

이에 따라 엔터식스는 60억원을 받고 퇴점하기로 결정한다. 변창흠 사장이 말한대로라면, 엔터식스가 1년동안 가든파이브에서 벌어들이는 연간 매출액보다 10억원 규모가 더 많은 금액을 일시에 받고 나가게 된 것이다. SH공사는 마치 엔터식스의 문제가 해결되면 현대백화점 아울렛의 유치가 기정사실인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지금 가든파이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런 기대와 차이가 난다.

실제로 노동당 서울시당이 지난 주 토요일, 가든파이브 상인으로부터 받은 제보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문자메세지와 공문이 상인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고 한다.

▲ (사진=김상철)

내용은, 현재 엔터식스가 나가게 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현대백화점 측에서 제시한 특약 사항이 ‘한 가지’ 남았다고 언급된다. 즉, SH공사가 감당해야 했던 60억원의 손실보상금은 현대백화점 측의 특약사항에 속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표현이다. 이어 개별구분점포의 위임장 제출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현대백화점 아울렛 유치를 위하여 필요한 해당 구역 상인들의 동의절차가 마무리 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즉, 엔터식스가 있더라도 여전히 현대백화점 아울렛이 들어오고자 하는 위치의 상인들 동의가 진행되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지난 7월 22일자 현대백화점 측의 내용 증명을 보면, 현대백화점 측은 지난 7월 15일까지 두 가지의 선행 조건으로 엔터식스 매장명도 및 동의서 징구를 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것이 해당 시일까지 진행되지 않아, 9월 15일까지 연장했는데 만약 9월 15일까지도 선행조건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앞서 지적한대로 명도소송을 그토록 잘해왔던 SH공사가 엔터식스와는 합의조정을 한데에는 현대백화점 측이 요청하는 선행조건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근거로 활성화추진위원회 명의의 메세지는 “엔터식스 명도가 완료된 가운데 우리 구분점포의 위임장제출여부가 현대입점을 결정하는 상황으로 남아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직 동의하지 않은 상인들에 대해서는 “우리 상가가 존폐의 위기에 있음을 명심하시고,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선택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숙고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언급한다. 입점 상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황은 두말할 나위 없이 정상적으로 장사를 하는 것이고, 그것이 안된다면 그에 상응하는 수익을 보장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넘어서는 우선순위란 것이 도대체 뭔지 알 길이 없다.

메세지의 발송인인 활성화추진위원회는 2012년 3월부터 2013년 5월까지 총 11차례 진행된 서울시 가든파이브 활성화 방안 마련 TF의 결과로 구성된 가든파이브내 특별 기구다. 실제 관련 회의의 10차, 11차 회의에서는 대형테넌트 유치로 활성화 방안을 잡고 이를 실행할 기구로 임시적인 ‘활성화 추진위원회'를 구성한다고 결론을 짓는다. 해당 TF가 박원순 시장의 지시에 의해 운영된 것인 만큼 사실상, 현대백화점 유치를 위해 서울시가 추인한 기구인 셈이다. 형식적으로는 상인들로 구성된 임의기구이지만 사실상 서울시와 SH공사의 지원이 배경으로 놓여 있는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현대백화점 측이 보낸 내용증명의 수신처가 SH공사와 함께 활성화추진위원회가 명시되어있다.

그렇다면 연초에 현대백화점 아울렛 유치를 성사시켰다는 이유로 SH공사로부터 5,000만원의 성과급을 받은 가든파이브관리회사는 무슨 역할을 하는 걸까. 현행 가든파이브 관리단과 가든파이브 관리회사간 맺은 협약서 제4조(권한 위임)에 따른면 “추진위원회는 테넌트 임대유치에 있어서 상담 및 협의를 위한 창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사항을 (주)가든파이브에게 위임한다"고 되어 있다. 즉, 관리단에 의해 구성된 활성화추진위원회의 기능 중 대형테넌트 유치에 대한 광범위한 권한이 관리회사에 위임되어 있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지난 4월에 가든파이브 관리회사 김인호 대표이사 명의로 현대백화점 입점에 동의하지 않은 상인들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낸다. 해당 메시지에는 “현대백화점이 위임장 100%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62.1%라는 저조한 접수율로는 당초 목표로 삼았던 금년 가능 오픈 일정을 맞출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대백화점 측에서도 상당한 실망과 함께 더 이상의 진행은 무의미 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라며 사실상 백지화를 선언했다. 그리고는 "아직까지도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공동재산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고 있다"며 미동의 상인들을 비난했다. 그런데 정작 며칠 뒤 현대백화점 유치는 계속 추진된다. 만약 자신의 공언대로 현대백화점 유치가 백지화되었다면, 본인이 그 대가로 받은 5,000만원도 반납했어야 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식의 문자 메세지는 대형 테넌트 유치를 통한 가든파이브 활성화라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상인들의 의견을 묵살하거나 혹은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즉, 다양한 이유로 대형 테넌트 유치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현대백화점이 안 들어온 것은 ‘당신 탓'이라며 낙인찍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김인호 대표이사의 메세지에 대해 서울시는 감사 결과를 통해서 ‘다소 부적절하다'고 인색하게나마 부당성을 언급했다.

▲ (사진=김상철)

이처럼 가든파이브 관리회사를 통한 상인 겁박이 문제시되자 이제는 아예 서울시가 만들도록 한 활성화추진위원회가 전면에 나선 것이다. 서울시나 SH공사는 일괄 임대를 독려하기 위한 것인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확하게 짚어보면, 활성화추진위원회 명의의 문자메세지는 상당히 문제가 있다.

첫째, 현대백화점 측이 요청한 사전이행조건이라는 것이 계약체결 단계에 상인들에게 공개된 사실이냐는 점이다. 즉 계약의 실질적인 주체인 상인들도 인지하지 못한 특약사항을 뒤늦게 상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관리단이나 활성화추진위원회가 구분소유자의 ‘성실한 재산관리인'으로서 책임을 망각한 월권이다.

둘째, 도대체 SH공사는 어디에 있냐는 점이다. 현대백화점 아울렛 입점 당시에 계약 주체에는 분명 SH공사가 있었다. 그리고 가든파이브 관리회사 대표에게 성과금을 지급한 것도 SH공사다. 또 현대백화점 측이 요청한 선행조건 중 하나인 엔터식스 명도에 따른 손실보상금 60억원도 SH공사가 지급했다. 그런데 이런 SH공사가 상인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보이질 않는다. 어느 쪽이 바지사장에 가까운지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공기업으로 SH공사의 책임과 의무라는 관점에서 보면 동대문에 있는 일반 기업체가 더 윤리적이라고 여겨도 무방할 지경이다.

셋째, 대형 테넌트의 유치는 기존의 입점 상인을 임대사업자로 변경시키는 행위다. 즉, 가든파이브로 이주한 상인들을 끊임없이 상인에서 임대사업자로 전환시티는 계획이 2010년 개장시기부터 지금까지 가든파이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현대백화점 아울렛 유치는 박원순 시장의 지시로 진행된 2012년 서울시 TF에 기원을 두고 있다. 정책의 방향을 그렇게 결정한 서울시는 왜 정작 가든파이브 문제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참고로, 지난 8월 26일, 가든파이브 상인과 함께 서울시장에게 요청한 ‘공개토론회' 제안은 밑도 끝도 없이 SH공사로 이첩되었고, 공개토론회 불가로 답이 왔다. 아니, 사업을 추진하는 SH공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려고 서울시장에게 토론회를 요청했는데 정작 문제시하는 기관으로 이첩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말이다.

가든파이브가 청계천 이주 상인들의 무덤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지금은 그나마 버티고 있는 상인들이 서울시-SH공사-기득권 상인들의 트로이카에 의해 서서히 고사되고 있는 상황이다. 애초 이명박 전 시장의 청계천 복원이라는 장미빛 전망에 밀려났던 상인들은 박원순 시장의 가든파이브 활성화라는 미망에 질식되고 있다. 최소한 가든파이브 내의 상인간 갈등은 방치되어서도 안되고 조장되어서는 더더욱 안된다. 이런 식의 ‘내부 희생양 만들기'는 예상치 못한 파국적 상황을 낳을 수도 있다. 따라서 늦기 전에 SH공사가, 아니 서울시가 나서야 한다. 이런 말도 안되는 현대백화점 아울렛 유치라는 부조리극을 계속 진행할 이유가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서울시는 오는 10월이 청계천복원 10주년이라며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가든파이브 문제를 제기하면 전임 시장 때의 일이라 모른다고 시치미 떼기에 바쁜 서울시가, 청계천복원이라는 생색은 내고 싶은 것일까. 미안하지만 해당 시기에 우리는 청계천변에서 펑펑 울 준비를 할 것이다.

김상철 2004년부터 진보정당의 당직자로 서울시 행정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역할을 맡아 일하고 있다. 현재는 노동당서울시당 위원장이며, 문화연대, 나라살림연구소, 예술인소셜유니온에서도 활동 중이다. <정치를 탐하다>(2014,꿈꾸는사람들), <무상교통>(2014, 이매진)이라는 책을 펴냈으며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2014, 삶창)라는 책에 참여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노동과 인간중심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도시사회주의자'의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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