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첫눈이 내리고 겨울비가 자주 내립니다. 가을엔 가뭄이 산골마을들을 물 부족으로 그리도 고생시키더니 첫눈이 오고부터는 눈이나 비 내리는 날이 더 많습니다.

가을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맞이한 겨울비는 마음을 바쁘게 합니다. 감 깎는다고 나무장만도 하지 못했고 김장하고 김치도 아직 땅에 묻지 못했고 무와 시래기도 아직 준비하지 못했는데 겨울비가 움직임을 더디게 합니다.

오늘도 빗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어제 비 그친 틈에 하루 땔 나무 겨우 해왔는데 오늘도 비가 오면 어찌 나무를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섭니다. 겨울엔 땔 나무가 있어야 마음이 든든합니다.

어릴 적 끼니때가 되면 집집마다 굴뚝에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어른들은 옛날엔 옆집 굴뚝에 연기가 나는지 나지 않는지를 살폈다고 합니다. 먹고살기 어렵던 시절 옆집 굴뚝에 연기가 나야 끼니를 거르지 않는구나 안심하며 살던 인정이 남아 있어 그런지 어린 우리들도 굴뚝 연기는 그냥 굴뚝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산골에 살다 보니 옆집 굴뚝에 연기가 나는지 아닌지 살피곤 합니다. 굴뚝 연기에는 이웃이 오늘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하루를 보냈구나 하는 안심과 따뜻한 잠자리에서 편히 쉬겠구나 하는 안도가 있습니다.

산중 삶은 아무래도 거친 일이 많습니다. 스스로 집이며 창고 등도 지어야 하고 날마다 나무해야 하고 산 다니는 게 일상이다 보니 조심한다 해도 다치는 일이 있습니다.

가족이 사는 경우는 다쳐도 응급조치를 할 수 있지만 혼자 사는 경우엔 다치면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집 근처가 아닌 산속에서 다치기라도 하면 어찌할 도리가 없고요.

이런 삶 때문인지 언제부턴가 굴뚝 연기는 오늘 하루 무사히 보냈음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습니다.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세찬 바람과 함께 내리던 비는 어느새 눈 반 비 반이 되었습니다. 쉽게 진정될 날씨가 아닌 듯합니다. 처형 김장할 배추 뽑기로 했는데 궂은 날씨로 배추 뽑기는 미뤄야겠고 어찌해도 오늘 땔 나무는 해야 합니다.

다행히 눈과 함께 내리던 비는 날이 추워지면서 모두 눈보라로 바뀌었습니다. 눈보라는 나무하는 데 큰 어려움을 주지 않습니다.

추위도 나무하다 보면 물러갑니다. 겉은 내린 비로 젖었지만 속은 말라 있는 나무를 몇 번씩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가져오다 보니 어느새 몸이 땀에 젖습니다.

겨울비가 내일도 찾아올지 모를 일이기에 오늘은 나무를 몇 번씩 했습니다. 겨울 준비에 마음 바쁜 게으른 농부에게 겨울비는 움직임을 더디게 하지만 불청객은 아닙니다.

내년 봄까지 가뭄이 계속돼 물 부족이 더 할 거라는 소식에 마음 졸이고 있는 산골사람들에게 자주 내리는 겨울비는 반가운 손님입니다.

조금씩 내리는 겨울비에 계곡물이 제법 불었고 가뭄 근심 털어내듯 힘차게 흐르는 소리를 냅니다. 굴뚝 연기 피워 올리며 오늘도 무사히 보냈음을 알리는 평온한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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