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국방송대학보> 제1519호(2008. 12. 1) ‘미디어 바로보기’에 발표한 글임을 밝힙니다.

신문·방송 같은 주류 언론이 누리꾼들의 의제를 다뤄온 방식은 (그럴싸하게 보면) 메타적이다. ‘개똥녀’ 사건을 상기해보자. 주류 언론 기자가 문제의 지하철에 타고 있었다면 젊은 여성의 무개념을 취재해 보도했을까? 아예 무시했거나, 기껏 가십성 단신으로 다뤘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이버 논쟁에 직접 뛰어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주류 언론이 다룬 건 개똥녀를 두고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진 흥미로운 현상이었다. 그래서 스포츠 중계하듯 보도했다.

▲ 11월12일자 매일경제 2면.
지금 대한민국 최강의 누리꾼은 이론의 여지없이 ‘미네르바’다. 주류 언론의 초기 태도는 개똥녀 때와 다르지 않았다. 누리꾼들 사이에 차츰 화제로 떠오르고 있을 때에도 그런 존재조차 몰랐거나, 알아도 무관심했다. 지금은 덮어두기에 그의 존재감이 너무 크다. 그러나 주류 언론들이 미네르바를 다루는 모습은 개똥녀 때처럼 획일적이지 않다. 그 복잡해진 양태 뒤에는 주류 언론들의 곤혹스러움이 숨겨져 있다.

미네르바에 대한 주류 언론의 반응은 오히려 개똥녀 때보다 늦었다. 개똥녀와 개똥녀 현상은 다루기에 부담이 적었다. 하지만 미네르바는 견적이 잘 안 나온다. 일개 누리꾼이 다루는 의제가 웬만한 국책연구소급인 데다 사안이 너무 민감하기도 했다. <한겨레>가 지난달 24일 2면에 보도한 게 처음으로 보이는데, 이마저 경제부 기자가 아닌 온라인 담당기자가 썼다. 주류 언론의 보도에 불이 붙은 건 정부가 미네르바에게 엄포를 놓은 직후다.

▲ 11월19일 MBC 뉴스데스크 클로징 코멘트 영상 캡처.
정부가 질러주었으니 주류 언론들로서는 부담을 던 셈이었다. 그러나 보도 방향이나 태도는 제각각이었다. 거칠게 △지지 △폄하 △비난 △호기심 자극 정도로 구분해볼 수 있다. <한겨레> 등 진보적 신문들의 보도와 지난 18일 MBC <뉴스데스크>의 앵커 클로징 코멘트(“…미네르바의 한수에 귀를 기울이는 게 맞아 보입니다”) 등이 ‘지지’라면, KBS <시사 360>의 첫 방송 ‘미네르바 신드롬, 왜?’(11월 17일)는 ‘폄하’다. 이른바 조·중·동의 “미네르바가 경제위기를 부추긴다”는 보도는 ‘비난’에 해당한다.

주류 언론들의 보도 태도가 정치적 태도와 얼추 궤를 맞추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이 경제위기를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 비단 전문성 부족 때문만은 아니라는 방증일지 모른다. 그런데, ‘호기심 자극’은 어떤 경우일까? <중앙일보> 주말판 ‘중앙선데이’는 지난달 23일 금융전문가 A씨의 입을 빌려 “미네르바는 최고경영자(CEO)로 재직한, 업계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인”이라고 보도했다. 발 빠른 ‘상품화’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대상을 가십화하는 숨은 목적은 ‘공포의 희화화’다. 내로라하는 언론들이 지금 미네르바를 두려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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