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를 강경진압한 어청수 경찰청장에게 행정부문 대상을 수여한 <한국일보>의 ‘2008 존경받는 대한민국 CEO상’이 정체조차 불확실한 단체가 행사를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어 청장 뿐 아니라 18명의 기초자치단체장이 부문별 대상을 받아, 국가기관장들을 상대로한 민간의 ‘상 퍼주기’가 만연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한국일보>는 지난 11월26일 “‘제조·금융·에너지·공공행정 및 단체 등 분야별로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도 도전을 극복하고 밝은 미래를 열어가고 있는 CEO를 선정한다’는 취지로 이 상을 운영하고 있다. 어 청장은 한국전문기자클럽 기자들의 추천을 받아 ‘존경받는 대한민국 CEO’ 후보에 올랐고, 심사위원회를 거쳐 행정기관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이 상은 어 청장이 행정부문 대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글로벌경영, 신뢰경영, 문화행정, 지식경영, 청렴경영 부문 등에서 18명의 자치단체장이 상을 받는 등 총 26명에게 부문별 대상이 수여됐다.

그러나 어 청장의 수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민사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강하게 비난하는 등 파문이 일었다.

이에 대해, 한국일보와 함께 이 상을 주최한 한국전문기자클럽의 이모 국장은 “한 가지만 잘한 일이 있어도 상을 받을 수 있고, 수상자의 인생 전체를 놓고 평가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 청장 수상은 지휘자로서 시국 안정에 기여한 면이 있고, 전반적으로 (촛불 시위를) 큰 대과없이 마무리한 것이 평가됐다”고 말한 것으로 <오마이뉴스>가 보도하기도 했다.

▲ 한국전문기자클럽 홈페이지. 하단에 주소가 ‘서울 종로구 당주동 145 미도파빌딩 6층’으로 돼있지만, 실제 주소지에 한국전문기자클럽이 입주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전문기자클럽 홈페이지를 보면, 한국일보 공채 26기 출신이라는 성락서씨가 회장을 맡고 있고, <신아일보> 논설위원 출신으로 현재 월간 <디플로머시> 회장인 임덕규씨가 상임고문으로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미디어스>는 시상식 후 한국전문기자클럽 관계자와 접촉을 시도했으나, 이 관계자는 “시상식 기사는 이미 다른 곳에 많이 나왔으니 그걸 참고하라. 다른 곳에서도 지금 연락이 많이 오는데 답변을 드리기 좀 곤란하다”고 밝혔다. 기자가 “직접 찾아가겠다”고 하자 이 관계자는 “안 된다. 지금 저희는 만나서 답변을 드릴 여력이 안 된다. (같이) 신문밥 먹고 그러는 사람들끼리 이해 좀 해주라. 다른 데서도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는데 곤란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에 미디어스는 지난 28일 한국전문기자클럽 홈페이지 주소로 나와 있는 ‘서울 종로구 당주동 145 미도파빌딩 6층’에 찾아갔으나 그곳에는 한국전문기자클럽이 없었다. BB항공여행사, (주)여행정보, 국민경제신문 등의 업체들만이 입주해있을 뿐이었다.

미도파빌딩 관리사무실 관계자는 “그런 단체는 이곳에 입주해 있지 않다. 나는 6월부터 이곳에서 근무했으나 한국전문기자클럽이라는 곳에 대해 전혀 들어본 바가 없다”고 밝혔다. 기자는 한국전문기자클럽의 전화번호를 대며, “혹시 이 빌딩에 입주한 업체들 가운데 이 전화번호를 가진 곳이 있느냐”고 물었으나, 그 관계자는 “살펴본 결과 그런 번호는 이곳에 없다”고 답했다.

▲ 미도파 빌딩 5, 6층 입주 업체들을 안내하는 표지판. ‘한국전문기자클럽’은 표시돼 있지 않다. ⓒ곽상아
미디어스는 다시 한국전문기자클럽에 전화를 걸어 “미도파 빌딩에 왔는데, 한국전문기자클럽이 없다고 한다. 귀하 단체는 미도파 빌딩에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으나, 전문기자클럽 관계자는 “당신 도대체 왜 그래요. (미도파빌딩) 아닙니다”라며 급히 전화를 끊었다. 미디어스는 그 뒤로도 여러 차례 해당 전화번호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더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 상을 주최한 것으로 돼있는 한국일보가 실제로는 수상 과정에 거의 관여하지 않은 채 광고비를 받고 이름만 빌려줬다는 신문사 내부의 증언도 나왔다.

한국일보 관계자는 “외부 기획사에서 한국일보 광고국으로 제의가 들어왔다. ‘존경받는 대한민국 CEO대상’의 모든 운영은 외부 기획사와 한국전문기자클럽에서 하고, 마지막에 수상 주최에 한국일보 이름을 실어주고 (한국일보는) 대신 광고비를 받았다. 한국일보는 이 상에 크게 관여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 상 수상에 대해 내부에서도 비판이 있었다. 편집국장 등이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으나 시간이 너무 없어서 수상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그는 “편집국장이 한국일보 기자협의회에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경찰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우리가 먼저 공모에 응한 게 아니고 한국전문기자클럽에서 먼저 어 청장님을 추천했다”며 “시상식장에 한국일보 사장님도 직접 참석해서 성황리에 끝났다”고 밝혔다.

앞서 한국일보가 어청수 청장에게 ‘2008 존경받는 대한민국 CEO대상’을 수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다음 아고라 등에서 “기자들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냐” “한편의 블랙코미디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냐”는 등의 격한 반응을 보였다.

진보신당도 지난 27일 브리핑에서 “촛불집회를 폭력으로 짓밟고 불교계와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켜 국론을 분열하고 갈등을 조장한 어청수 경찰청장이 ‘불신받는 CEO’ 가 아니라 ‘존경받는 CEO’라니, ‘만우절 농담기사’로 의심할 뻔했다”며 “한 일간지가 주겠다는 상을 굳이 막을 수야 없겠지만, 어떤 기준으로 어청수 청장이 대한민국의 존경받는 CEO로 선정됐는지, 국민은 특히 촛불민심은 황당한 마음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혹시 <한국일보>의 ‘반어법’이 아닐까”라고 꼬집었다.

한 언론계 관계자는 “언론사가 주는 많은 상들이 수상자한테 돈을 받아 진행되고 있다. 언론사들은 광고료를 적립으로 받고 ‘딜’을 해서 할인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엔 기업들도 (돈이 들어가니까) 상 받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며 “한국일보로서는 이 상이 어청수 청장에게 돌아갈 줄은 몰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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