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내게 10대는 뭐랄까. 하루는 짧았지만 뭉텅이로 돌아보면 한 없이 긴 그런 시간이었다. 수능이 끝난 고3 겨울, 이제 시간의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을 땐 정말이지 정신없었다. 각설하고, 하여간 그 시절은 시간의 속도가 뭉텅이에서 개체로 풀려가며, 시공간의 정체성이 완전히 뒤바뀌는 환절기이다.

내일에 대한 무한한 상상으로 무엇에도 집중하기 어려운 그 때는 차라리 아니 정말이지 그냥 좀 노는 편이 확실히 낫다고 경험은 말한다. 결핍된 ‘성적’과 만연한 ‘욕망’의 첨예한 경계에서 머리를 쓰면 쓸수록 ‘만족’의 영토는 까마득해진다. 여전할 테다. 그 빌어먹을 입시배치표는.

수능이 끝난 고3의 시간들을 메운다며 서울시교육청이 ‘역사교육’이란 걸 하겠다고 했을 때, 솔직히 그 꼰대들의 어처구니없는 상상력이 좀 가여웠다. ‘수능이 지나가고 난 오전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그토록 재미없게 만드시려고….’

▲ 27일 오전 서울 대동세무고등학교에서 열린 서울시교육청의 현대사 특강은 많은 학생들을 졸게 만들었다. ⓒ오마이뉴스
역시나 <현대사 특강>이란 이름이 붙은 그 강의는 살면서 듣게 되는 소리 중에서도 손에 꼽을 법한 지루한 소리였나 보다.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사진들을 보면 학생들의 포즈가 한결 같다. ‘혹시나’는 없다. 이런 경우 언제나 ‘역시나’뿐이다.

역사의 기본은 ‘대화’이다. 역사는 과거와 내일의 대화이고, 사실과 해석의 대화이고, 사가와 당대의 대화이다. ‘대화’가 되지 않을 때, 역사는 퇴행한다. 바로 어제처럼.

“6·25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면 무슨 수로 학교도 다니냐고?”를 힘주어 외쳤다는 강위석(전 중앙일보 논설고문), 반공 어린이 이승복의 후예가 되어 “38선 때문에 여러분은 공산주의 치하로 들어가지 않고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이동복(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 “미국에도 친북세력이 있었던 것 같다”는 글로벌 좌익론을 주창한 이석복(예비역 소장)까지. 옮기는 것만으로도 참담해지는 망극함이다. 차라리 ‘소녀시대’와 ‘빅뱅’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이 영상들의 무엇이 이토록 너희를 들끓게 하는 것이냐를 묻고 토론했더라면 비교할 수 없이 실용적이고 유익했을 테다.

이번 <현대사 특강>을 보며 훈련소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주어진 시간의 절반 이상을 ‘주한미군 철수=전쟁 불가피론’, ‘강정구=친북반미 빨갱이’에 할애하는 정훈교육 말이다. 훈련소에서 피폐해지는 것은 몸과 마음이 아니라 바로 머리이다. 제식을 기본으로 한 획일적 강요로 새하얗게 질려버린다. 물론, 그것도 심각한 문제이긴 하지만, 백번 양보하여 그건 그렇다고 치자. 대체 교련이 없어진지가 언젠데, 교실을 어디까지 후퇴시키려 하는 것인가? 고지는 1·4 후퇴 즈음까지인가.

<현대사 특강>은 이번 한 번만으로 끝날 해프닝이 결코 아니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우익들은 학교를 이념화해야 한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을 것이고 조중동은 전교조가 학교를, 사회를, 세상을 망친다는 기사 장사를 멈추지 않는다. 슬프지만 당장의 현실이 그렇다.

아무리 뉴스가 많다고 해도, 결코 이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교육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구호가 여전히 유의하다면 그건 우익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비록, 이번에는 반공교육이 졸린 당신들이 많았다고 하여도 언제까지라고 장담하긴 어렵다. 조금이라도 흡수가 되고 더디더라도 변해갈 것이다. 앞서 말했듯 훈련소, 사회 곳곳에서 반복 학습이 이뤄진다.

‘반공’은 시대착오적이다. 상식에서 낙후된 이념이다. 이렇게 비웃기만 하다가는 정말 야금야금 시대가 착오되고 상식마저 낙후될지 모른다. <현대사 특강>은 사회구성 자체의 회귀를 기도하는 우익과 조중동의 결연한 궐기이다. 지루함이든 아님 다른 무엇이든 교실은 이미 위태롭다. 마냥 한가로운 시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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