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캠프'의 위기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힐링이 멈춘 것이다. 개편 첫 회에는 분명 기대감이 있었는데 이후 '힐링캠프'는 500인의 엠씨라는 틀 안에 갇혀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시간만 보내고 있다. 이번 정형돈의 출연 때에는 '힐링캠프'의 문제점이 곪아터진 격이었다.

게스트 정형돈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정형돈에 대해서 김제동은 양가적 감정이라는 표현을 썼다. 결국 정형돈은 자신은 솔직해질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하고 말았다. 아무리 포맷이 바뀌어도 토크쇼 '힐링캠프'는 일단 진솔함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만 정형돈은 말주변이 아주 좋은 편도 아니다. 말재주도 없고, 진솔하기에는 겁이 많은 게스트라면 당연히 집요하고 교묘한 엠씨의 역량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500인의 엠씨라는 구조 속에서 김제동 혼자서 하기도 어렵고, 결국은 겉도는 상황들이 되고 말았다.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가슴이 찡한 순간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김제동의 질문이나 관객들의 질문에도 정형돈의 대답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미로 속을 헤맬 뿐이었다. 사실 토크쇼에서 이런 게스트는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박수를 받던가 아니면 야유를 받더라도 일단 속내를 드러내야 하는데, 정형돈은 자신 스스로도 답답해하면서도 딱 부러지는 대답을 꺼내놓지를 않았다.

아니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정형돈은 시청자가 무섭다는 말도 했다. 정형돈이 딱히 물의를 일으키거나 논란의 중심에 선 적은 없었지만 한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예능 무도에서의 10년을 보냈고, 논란으로 동료를 둘씩이나 잃은 경험이 있기에 대중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렇게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다소 실망스러운 장면도 없지 않았다. 방송 초반에 일단 김제동은 요즘 정형돈을 따라다니는 수식어 사대천왕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도대체 사대천왕이 누구냐고 묻자, 정형돈 역시 그게 뭐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김제동이 “4대강은 우리가 알겠다”고 하자 정형돈은 정색하면서 “그런 위험한 얘기는 저한테 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을 막았다.

이어 정형돈은 “저는 정치적 소신을 밝히지 않겠습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그렇게까지 말을 했으니 4대강에 대한 정형돈의 생각이 어떤지는 영영 알 길이 없다. 때문에 그에 대한 추측은 불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4대강이라는 말에 빠르고 민감하게 반응한 것을 보면 관심이 없는 대상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할 것이다.

물론 정형돈의 태도에는 김제동을 빗대어 나름 웃겨보자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정색한 나머지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너무 몸을 사린다는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정형돈이 그토록 조심하던 구설수의 빌미를 남긴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방송 후 기사에 정형돈의 태도에 대해서 부정적인 댓글들이 많이 달렸다.

한국 연예인들에게 정치적 입장을 밝힌다는 것은 대단히 어색한 일이다. 김제동 외에 이승환이나 김장훈 정도가 사회적 이슈에 반응할 뿐이다. 연예인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인 공인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많이 실망스럽고 한편으로는 대중에 대한 배신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한국 연예계의 풍토가 그렇기 때문에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정형돈만 표적 삼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을 항상 50 대 50의 줄을 탄다던 정형돈이 4대강이라는 단어만으로도 펄쩍 뛰는 모습은 조금 과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사회 이슈에 대해서 거부할 필요까지는 없었지 않았을까 싶다. 본인은 분명 웃기려고 한 행동이었겠지만 그 표현이 너무 강해서 오해를 살 만한 여지를 남긴 것이 아쉬웠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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