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심의위가 추진 중인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개정안을 두고, 명예 훼손 여부를 제3자가 신고 할 수 있도록 하는 직권심의는 결국, 고위공직자 등 권력자에 대한 특혜가 될 것이란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박효종 위원장은 “정치적 의도는 없다”며 추진 강행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법률가 205명이 “공인 비판 차단하려는 사이버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을 반대합니다”라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전국 법학교수 및 변호사들 205명은 24일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인터넷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에 반대하는 법률가 200인 선언 기자회견>을 열어 “행정기관이 게시물의 명예훼손 여부를 심의하는 것 자체는 위헌적일 수 있다”며 “더 나아가 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게까지 심의신청을 허용한다면 공인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기 위해 악용될 것이라고 우려된다”고 밝혔다. 해당 선언문에는 헌법재판관 출신 송두환 변호사와 변협 회장을 지낸 박재승 변호사, 조국 서울대 교수 등이 이름을 올렸다.
“<형법> 명예훼손 법안 가져온 일본도 반의사불벌로 규정돼 있지 않다”
법학교수 및 변호사들 205명은 방통심의위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개정안과 관련해 △방통심의위의 통신심의 제도에 반의사불벌죄 등의 형사소추 개념을 적용해 상위법 충돌을 주장하는 것은 이유가 될 수 없고, △사법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인 방심위의 명예훼손 심의 권한을 넓히는 것은 표현의 자유의 심대한 침해를 가져올 것이며, △특히 이번 심의규정 개정은 공인에 대한 비판 여론을 차단하는 데 남용될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양규응 변호사는 “<형법>을 보면 명예훼손이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돼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방통심의위는 그렇기 때문에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도 반의사불벌로 바꾸는 것이 법 취지에 부합한다는 주장이지만 그 둘은 목적과 주체, 효과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형법> 상 명예훼손죄는 검찰수사와 재판을 거쳐 2~3년의 징역에 취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며 “징역이나 벌금 등은 그 사람의 신체 및 재산에 대한 상당한 제약이 되는 중범죄이기 때문에 일리가 있었다”고 설명하며 인터넷 명예훼손성 글은 후한이 두려워 신고를 하지 못할 정도의 범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양규응 변호사는 “<형법>상 명예훼손이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돼 직권으로 수사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그 첫 번째 순서는 피해자의 피해사실에 대한 조사가 필수”라면서 “그렇지만 방통심의위는 게시자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형법> 명예훼손에 대한 다른 나라의 법제를 조사한 결과,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돼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면서 “해당 법안을 그대로 가져온 일본의 경우에도 <형법>에서는 반의사불벌로 규정돼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명예보호’라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양규응 변호사는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며 “방통심의위가 현실적으로 모든 글을 모니터할 수 없기 때문에 그동안 친고죄로 적용했던 것이다. 왜 이제와서 개정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유죄 판단 내려진 경우, 제3자 신고 허용?…“박근혜 대통령만 혜택 볼 것”
<정보통신 심의에 관한 규정>은 2014년 1월 박만 위원장 시절 ‘친고죄’로 규정된 이후 1년 만에 재개정하려 한다는 점에서 “의도가 너무나도 명백하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이를 의식한듯, 박효종 방통심의위원장은 지난 17일 반대여론을 의식한 듯 “공인의 경우 사법부에서 (가해자에게) 유죄 판단이 내려진 경우에 한해 제3자 신고를 허용하면 좋겠다”고 발언했지만 방통심의위 심의위원을 지낸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오히려 “해당 발언이야 말로 박근혜 대통령만 혜택을 볼 수 있는 제안”이라고 주장했다.
박경신 교수는 “공인 중 당사자가 나서지 않은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나올 사건은 2건 밖에 없다”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이 기소된 상태이고 또,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의 사례가 그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산케이신문 관련 최종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공판에서 ‘정윤회 씨와 관련된 허위인 것을 인정하지요?’라는 물음에 둘 다 ‘그렇다’고 인정했다”며 “최종적으로 무죄판결이 나더라도 ‘7시간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허위라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방통심의위는 그 판결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이 가만히 있어도 직권 상정해 관련 글들을 삭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김동찬 사무처장은 “‘7시간 의혹’을 제기한 게시글이라고 하더라도 그 의미는 다 다르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판단해야하지만 방통심의위가 그럴 것인지 의문”이고 개탄했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희 교수는 또한 “‘7시간 의혹’이 제기됐을 때 모든 언론들은 청와대의 입만 보고 있었다”며 “만일, 청와대가 브리핑을 했다면 그 내용이 보도돼 그것으로 명예를 보호할 수 있었다. 결국, 명예를 보호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집단이 청와대”라고 덧붙였다.
박경신 교수는 “이번 개정안이 처리된다면 공인에 대한 심의가 대폭 늘어날 것”이라며 “본인이 가만히 있어도 제3자 심의요청이 가능해지면서 연예인과 정치인 등이 그런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방통심의위는 ‘상위법과의 균형’을 이야기하지만 그런 의도라면 심의규정 중 개정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며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손을 안대고 비단 해당 조항만 개정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23일 긴급회의를 통해 목함지뢰 및 북한도발 관련 게시글 삭제의 근거가 된 제8조(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위반 등)에 대해 박경신 교수는 “2010년 미네르바 사건에서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1항 ‘허위의 통신’ 관련 조항이 위헌판결이 났다”며 “심의규정의 상위법이 없는 것이지만 방통심의위는 심의를 하고 게시글을 삭제하고 있다. 그런 규정들이 한 두 개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한국공법학회장 송기춘 교수는 “명예보호라는 다른 편에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 및 언론의 자유라는 것이 상당한 정도로 제약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라면서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명예에 대한 보호라는 것이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과도하다. 더 이상 명예를 보호하는 법제라는 것은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쓴 소리를 던졌다. 그는 “행정기관이 정보가 유통되고 있는 인터넷에 대한 감시 및 차단을 인정한다면 검열이라고 볼 수 있다”며 “검열의 가장 큰 무서운 해악은 국민들이 거짓말을 하게 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선언문> 방심위의 인터넷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에 반대하며,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피해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신청 또는 방심위의 직권에 의해서 인터넷상 명예훼손 게시물을 삭제, 차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심의규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의 개정은 명예훼손 피해가 있는지 여부조차 불확실한 게시물들까지 심의대상이 되게 하고,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 및 정치적·경제적 권력층에 대한 인터넷상 비판 여론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남용될 위험이 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대한 침해를 불러올 것이 명백하다. 방심위 측은‘명예훼손 등 정보는 당사자 또는 그 대리인이 심의를 신청해야 심의를 개시한다’는 현행 심의규정이, 형사법상 명예훼손죄 및 정보통신망법의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조치 규정상 명예훼손 정보가 ‘반의사불벌’ 형식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과 충돌하고 있어 이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범죄와 형벌을 규율하는 형사법과 방심위의 통신심의를 규율하는 행정법은 그 목적, 주체, 효과가 전혀 다른 법체계로서, 형사절차상 소추조건인 ‘친고죄’, ‘반의사불벌죄’ 개념이 방심위의 통신심의 제도에 대입될 수 없으며, 법체계상 충돌도 존재하지 아니한다. 정보통신망법상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조치도 방심위의 통신심의 및 시정요구 제도와 전혀 다른 별개의 제도이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독립된 별개의 기관이며, 방심위의 통신심의 및 시정요구 권한의 근거법률은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3호, 제4호로서,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 제2항(방통위의 제재조치)이 방심위 통신심의 제도의 모법이라거나 상위법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방통위 제재조치 역시 행정행위이기 때문에 ‘해당 정보로 인하여 피해를 받은 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하여 제재조치를 명할 수 없다’고 규정한 것이 곧 반드시 형사절차상 ‘반의사불벌’ 개념과 같은 형식으로 운영하라는 것이거나 친고에 의한 심의 개시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고, 결과적으로 피해당사자의 의사에 반하여 제재조치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나아가 현행 심의규정이 명예훼손 정보의 경우 당사자 측의 신청으로 심의를 개시하고 있도록 규정한 것은, 형사절차와 달리 행정행위로서 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통신심의 절차상, 해당 사실이 제3자의 신청 등으로 피해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여 공개되는 때에는 피해 당사자에게 또 다른 사회적 불이익을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규정을 개정하여 당사자 의사와 무관히 제3자 신청 혹은 직권으로 명예훼손 글에 대한 심의를 개시하도록 한다면 오히려 개인의 인격권, 자기결정권 등을 더욱 심대하게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이유로 현행 형사법상의 명예훼손죄 역시 친고죄로 개정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어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명예훼손을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명예훼손과 같은 불명확하고 사적인 문제에 국가기관이 개입하여 처벌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일방적으로 제약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형사 비범죄화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명예훼손은 고도의 법률적 판단이 필요한 분야로서 법적으로도 성부가 명확한 개념이 아님에도, 사법기관도 아니고 법률전문가로도 구성되지 않은 방심위가 명예훼손 정보를 심의하는 것 자체에도 위법적, 위헌적 소지는 다분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아가 당사자도 아닌 제3자가 사실에 대한 구체적인 소명도 없이 심의 신청을 남발하게 되는 경우 수사권도 없는 방심위가 명예훼손 성부를 판단하는 것은 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방심위가 이러한 폐단을 고려하지 않고 추세에 역행하면서까지 무리한 법해석을 주장하며 본 심의규정 개정을 추진하는 배경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순수한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 글을 제3자가 심의 신청하거나 직권으로 심의를 개시할 개연성은 매우 낮다. 결국 이번 개정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자발적이고 막강한 지지・비호 세력을 가진 공인, 즉 대통령 등 정치인, 연예인, 종교지도자, 기업 대표 등이며, 이들에 대한 인터넷상의 비판 여론을 신속하게 차단하는 수단으로 통신심의제도가 남용될 위험은 매우 크다. 이들에 대한 비판적 표현을 자유롭게 보장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임에도, 이러한 표현들에 대한 행정기관의 검열 가능성과 권한을 넓히는 것은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들을 엄청나게 퇴보시키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이번 심의규정 개정 시도는 대한민국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대한 위협임을 선언하며, 이러한 개정 시도를 철회할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또한 앞으로 방심위의 통신심의제도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방향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계속적인 관심과 우려를 가지고 지켜볼 것이다. <끝> 2015년 8월 2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