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중서부의 마하라슈트라 주는 ‘농민들이 가장 많이 자살하는 주(州)’로 통한다. 지난 20년간 6만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기간 인도 전체적으로도 30만 명의 농민이 자살했다…….(중략)……자살 이유는 농사를 짓기 위해 빌려다 쓴 빚…….(중략)……빚 갚을 일이 막막하자 자살을 택하는 것이다. 현재 농민 중 52%가 빚을 진 상태다……(중략)……빚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빚 진 집안과는 결혼하기를 꺼려 그런 집안의 자식들은 혼기가 지나도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자녀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세상을 뜨지만 그 빚은 고스란히 가족의 부담으로 남게 된다.” “농민 자살공화국 인도...기업 모디노믹스, 기업의 농지수용 허용으로 농민 자살에 기름 부어”, 국민일보 2015년 5월 21일

버스 요금을 70원으로 알고 있어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이들을 제외한다면, 아마도 거의 모든 이들에게 빚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으로 육박할 것이다. 추측컨대, ‘빚’이라는 경험이 연상시키는 이미지는 고통, 죄책감, 불안, 자괴감, 우울 등 부정적인 감각 일색일 것이다. 인도 농민의 예를 들었지만, 어디 인도뿐일까? 전 세계 총 부채는 199조 달러. 72억 명 지구인 1인당 한화 약 3,000만원 꼴 “김문수의 홍콩 트위터 - 빚 올무에 갇힌 세상”, 중앙선데이 2015년 8월 9일

세계는 빚으로 하나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빚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별다른 비밀이 아니다.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라는 말은 이제 거의 클리셰처럼 들린다. 국가의 운명도 빚에 좌우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전 세계는 그리스의 부채 문제로 떠들썩했다. 한국 언론도 예외는 아니어서, 당장 내일이라도 그렉시트가 현실화하면 인류역사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이 가해지는 것처럼 호들갑 떠는 기사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이게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건, 97년 외환위기라는 혹독한 경험을 우리 사회가 통과해 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흥미롭게도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빚에 대한 개념을 전복시킨다. 미국 뉴저지 주립대학교 교수인 리차드 디인스트는 ‘빚’과 ‘빚짐’을 구분하고 현 체제의 분석을 통해, 고통스런 의무로서 죄책감을 동반하는 빚 시스템을 넘어 상호간의 결속과 유대를 강화하는 사회적 유대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역시 빚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인식 전환이라 하겠지만, 빚을 둘러싼 세계의 꼬락서니를 가차 없이 묘사하는 태도 역시 발군이다. 일테면 금융자본은 대가 없는 부채 탕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그렇다.

“수십 년간의 빚 노역이 이미 통상적인 효과들-철저히 약탈당하고 재구조화된 경제, 취약해진 국가, 무력화된 시민사회-을 가져온 곳에만 빚 탕감이 허가될 거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 황폐화된 땅에서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이미지를 쇄신한 새로운 종류의 종속이 분명 커질 것입니다.”(176쪽)

어떤가. IMF 이후 한국 경제가 빠져든 수렁을 연상케 하지 않는가? 이 말대로라면, 그리스는 종속의 폭과 범위를 두고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책에서 보노의 멘토 격으로 언급된 제프리 삭스는 그리스의 부채 탕감을 주장하며 “시체는 개혁할 수 없다” “제프리 삭스 "시체는 개혁 못해…그리스 부채 대폭 탕감해야"”, 연합뉴스 2015년 7월 3일

고 발언했다. 사면초가에 몰린 그리스의 형편을 고려한 온정적인 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종속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리스를 금융자본의 자장에 남겨 둬야 한다는 말로 읽히기도 한다. 후자로 읽을 경우 섬뜩한 수사학이다.

불평등과 빈곤에 대한 설명 역시 효과적으로 빚 체제의 전모를 드러내고 있다. 불평등과 빈곤은 예외적인 것이거나 자본주의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아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두 가지 모두 현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생산하고 유지하며 진행 중인 과정의 결과다.

“한때 빈곤은 사회 조직과 동떨어진 순전한 결핍에 근거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인구의 특정 부분이 나머지 인구의 부유화를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로서, 체계의 전지구적 기능에 영구히 자리 잡았다. 우발적 결핍에서 구조적 박탈 및 배제로의 이 변화...(중략)... 우리가 오늘날 직면하는 것은 엄청난 부를 얻기 위해 광범위한 빈곤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완전히 현대적인 체계이다.”(68쪽)

마찬가지 입장에서 전쟁도 예외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20세기 내내 세계는 전면적 평화를 불과 2년 내지 3년 밖에 누리지 못했다’(116쪽)는 점에서 1920년대 후반 어딘가에서 흘러간 것으로 보이는 평화가 예외적인 현상이다. 전쟁에 대한 서술은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거쳐 2002년과 2010년, 각각 부시와 오바마 정부에서 발표된 국가안보전략의 인식을 다룬다. 두 대통령의 이미지만큼 상반될 거라는 예상을 깨고 두 전략은 일관되고 연속된 흐름을 보여준다. 즉, 지구상에 남아 있는 단 하나(혹은 최후)의 초강대국 미국이 세계를 ‘이용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일방적으로 행동할 권리’를 천명하고 있다.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볼 때, “공공 영역은 끝없는 전쟁을 위해 계획되어 왔으며, 이것이 지구화된 시장이라는 영구 평화에 다름 아님이 입증될 것”(155쪽)이란 이야기다.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 빚에 대한 인식 전환이라고 했다. 저자가 역자에게 보낸 이메일은 그 내용을 가장 명징하게 보여준다. 빚(채무)과 빚짐을 구분하는 일은 이 책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나는 빛(채무, debt)이라는 좁은 경제적 개념과 빚짐(indebtedness)이라는 보다 넓은 존재론적 개념을 구별하려고 했습니다. 빚은 셀 수 있습니다. 그것이 불가항력의 의무의 느낌이나 불가능한 상환 부담으로 귀결된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빚짐이라는 단어가 우리가 갚게 되는 현실의 빚들로 환원될 수 없는 책임과 사회적 귀속 그리고 상호 의존의 차원들을 나타낸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습니다...(중략)...이 책은 현재의 빚 체제가 빚짐이라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차원을 ‘포획하여’ 그것을 이윤의 동력으로 전환시킨다고 주장합니다.”

디인스트가 보기에 “빚짐은 기본적인 인간의 조건”(293쪽)이다. 빚짐이라는 개념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즉각적으로 ‘사회적 생산’을 떠올렸다. 다른 주체에게 기대고 의존하지 않고서는 생산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빚짐과 사회적 생산은 닮은꼴이다. 옮긴이는 이를 정신분석에서의 성적 충동-가족, 노동으로서의 부의 본질-소유, 인간조건으로서의 빚짐-빛 체계로 계열화시켜 설명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성적 충동을 가족이라는 표상 안에, 부의 본질을 소유라는 표상에, 빚짐을 빚 체계에 국한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저자가 빚의 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제안하는 방법론은 두 가지. 하나는 그라민 은행으로 잘 알려진 마이크로 크레딧(소액신용). 두 번째는 종교적 연원을 둔 희년이다. 저자는 금융화라는 전염병에 대한 ‘해독제’로서, 화폐의 독재를 무효화시키거나 크게 후퇴시킬 수 있는 대항경제적 방편으로서 소액신용 제도를 검토한다. 또, 50년마다 모든 빚의 탕감을 천명하는 성경상의 원리 희년이 혁명적 정치 운동들을 고취한다는 점에서 해방의 비전을 의탁한다. 저자 역시 이 두 가지 방편들의 ‘제도적 기반’ 문제나 ‘타협의 가능성’이라는 한계를 도외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그 가능성이 남김없이 활용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매력적인 선택지들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싸르트르가 1970년대에 했다는 말은 빚의 속박을 넘어서는 인간조건의 근본으로서의 빚짐을 성찰하게 하는 면이 있다. “혁명의 목적은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을 자유롭고 소외되지 않게 하면서 상호 의존하도록 하는 것이다”(306쪽)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원제(The Bonds of Debt)에서 ‘본드’는 속박인 동시에 유대를 나타내기도 한다는 것은 밝혀 둘 필요가 있다. 번역본의 가제가 ‘빚의 유대’였던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었을 것이다. <빚의 마법>은 빚 체제와 빚짐의 복잡한 면모와 전복적인 도약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유대로서의 빚짐에 대한 문제의식은 다소 뭉툭해진 감이 있다는 생각이다.

한 헤지펀드 중개인이 칼럼에서 사용했다는 ‘자본주의의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이란 말은 이 책에서 극적인 가능성으로 활용된다. 빚 체제를 전유해 사회적 유대, 상호의존을 만들어 내는 것, 구체적인 방법으로 현 시점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과거’를 축조해내는 것은 사회운동, 아니 속박을 넘어 사회적 유대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의 몫일 것이다.

덧>
U2의 ‘개념 가수’ 보노의 부채탕감 운동이 갖는 한계와 기만성을 폭로하는 4장, 5장 프라다 쇼핑공간의 스펙타클이 보여주는 공간전략, 6장 맑스가 막내딸 엘리노어에게 들려준 마법사 한스 로클의 이야기를 통해 분석하는 빚짐의 양상 등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를 돋우는 장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금은 곤혹스런 독서경험을 안겨 주기도 한다. 특히 7장의 빚짐의 변증법에 이르면 들뢰즈로부터 데리다, 아감벤, 발리바르, 하이데거, 벤야민, 아도르노, 제임슨까지 현란하게 엮여 드는 호흡을 따라잡는 것은 그리 수월한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말의 무게를 달고 문장의 모양과 빛깔을 고뇌했을 역자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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