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만일 함께 사는 인연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면 어떤 심정을 갖게 될까. 뮤지컬 <아리랑>의 수국을 보고 난 후 맨 처음 든 생각이다. 수국에겐 득보라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세월의 풍화는 수국과 득보의 사랑을 결혼이라는 종착역으로 인도해주지 않는다. 도리어 수국의 어머니를 살해한 양치성과 함께 살게 되는 얄궂은 인생의 굴곡을 겪게 되는 여인이 수국이다.

윤공주는 2003년에 뮤지컬에 데뷔했으니 그동안 뮤지컬계에 있으면서 다양한 경험을 축적했을 법한 배우이다. 그동안 쌓인 관록에 따라 공연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을 텐데 윤공주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뮤지컬 공부’라는 신조를 가진,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달릴 줄 아는 뮤지컬 배우다. 윤공주는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는 말처럼 “힘들지만 행복한 공연”으로 <아리랑>을 압축해서 표현하고 있었다.

- 공연 초반에는 더블캐스팅인 임혜영 씨가 다른 공연을 소화하고 있어서 윤공주 씨가 원캐스팅처럼 일정을 소화했다.

“분량이 많지 않아 보여 처음에는 ‘혼자서 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공연을 해보니 분량이 많지 않은 게 아니었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했던 그 어떤 뮤지컬보다도 감정 소모가 큰 뮤지컬이다.

그래서 최대한 몸을 사리려고 했다. 하지만 몸을 사릴 수 있는 공연이 아니다. 첫 주에는 목이 좋지 않았다가 두 번째 주 들어서면서 목 컨디션이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더블캐스팅이면 지금처럼 반씩 나누어서 공연하는 게 정상이다. 그럼에도 <아리랑>은 매일 매일 하고 싶은 공연이다.”

▲ 뮤지컬 ‘아리랑’ Ⓒ신시컴퍼니
- 제작발표회 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제작발표회뿐만 아니라 ‘아리랑’이라는 이야기만 나와도 목이 메고 가슴이 저려왔다. 제작발표회 전에 대본을 읽을 때에는 작품을 잘 알지도 못할 때인데, 엄마가 꿈속에서 나오는 장면에서 ‘엄마가 이상하게 어디로 가네? 꿈이니까 반대야’라는 대사에서 목이 메어 대사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제작발표회 때도 아리랑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감정에 빠져들어 눈물이 나온 거다. 그만큼 가슴에 와 닿는 작품이 아리랑이다.”

- 그 정도로 눈물이 많다면 숯덩이가 된 엄마 감골댁을 발견하는 장면에서 매번 가슴이 울컥할 텐데?

“전체 동선 중 가장 잘 표현하고 싶은 장면이 그 장면이다. 수국이 큰 변화를 겪게 만든 장면이면서 가장 어려운 장면이기도 하다. 수국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연기가 아니면 객석에 감정을 온전히 전달하기 어려운 캐릭터다. 이 부분에서 어떤 동선을 가져야 하는 차원의 연기를 넘어서서, 수국은 배우가 먼저 극 속의 감정에 푹 빠져야 하는 캐릭터다. 매번 연기할 때마다 숯덩이로 변한 엄마를 처음 본 것처럼 느끼기 위해 노력한다.

연습실에선 이 장면을 연기할 때마다 더 많이 울었고 힘들어했다. 하지만 제가 너무 울면 관객에게 울 여유를 전달하기 어렵다. 연출님이 항상 강조하는 게 있다. ‘애이불비’다. 속으로는 슬프지만 겉으로는 슬픈 척 하지 않아야 한다. 수국의 슬픔을 최대한 억누르려고 노력했다. 공연 때 최대한 감정을 누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너무 아프면 아프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다. 너무 슬프면 눈물조차 나지 않게 된다.”

- 사랑하던 득보와 결혼하지 않고 양치성과 결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국은 만주에서 득보가 나타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것 같다. 이 세상에는 믿을 사람이 엄마 외에는 아무도 없다고 수국이 생각할 때, 나를 이끌어주는 양치성에게 끌려가다시피 해서 양치성과 함께 산다. 당시에는 엄마도 없어서 이성적으로 생각할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 뮤지컬배우 윤공주 Ⓒ신시컴퍼니
- 다른 뮤지컬배우에 비해 주연급으로 성장한 속도가 빠른 배우에 속한다.

“노력하지 않는 뮤지컬배우는 없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역할을 맡았다. 20대 중반에 샌디라는, 2% 부족하지만 풋풋한 역할을 맡아 시작할 수 있었으니 운도 중요했다.”

- 4월에 프로야구 시구를 한 적이 있다.

“야구장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시구를 한 다음 야구를 보았을 때 ‘이래서 야구를 보는구나’하는 야구의 재미를 느꼈다. 연인이나 친구들이 와서 맛있는 걸 먹으면서 경기를 즐기며 응원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나도 신기하면서 좋았다.”

- 프로야구 시구와 엇비슷한 타이밍에 <불후의 명곡>에도 출연했다.

“당시는 <드림걸즈>를 공연했을 때였다. <드림걸즈> 콘셉트로 뮤지컬할 때처럼 무대에 올랐다. 노래가 짧아서 당시 출연했던 배우들의 개인적인 역량을 모두 보여드리지 못해 아쉬운 점은 있었다. 뮤지컬을 할 때는 같은 역할을 하는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런데 <불후의 명곡>을 연습할 때에는 같은 역할을 하는 배우와 호흡을 맞출 수 있어 너무나도 좋았다. 뮤지컬 배우로서 우리만의 무대를 보여드리는 게 뿌듯했다. 홍경민 오빠와 무대에 설 기회도 가지게 되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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