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은 지금… 춘추전국시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주왕조가 도읍을 옮긴 BC 770년부터 진(秦)나라의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BC 221년까지를 의미한다. 이 기간 동안 수많은 나라들이 전쟁을 통해 세력다툼을 벌이며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비운을 겪었다. 한 나라만을 놓고 보면 일국의 흥망성쇠는 세계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건에 불과해 춘추전국시대의 여러 나라의 흥망성쇠 또한 그다지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시대를 살았던 개인을 역사의 중심으로 놓고 생각해 보면 그토록 참혹했던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백성들은 끊임없는 전쟁으로 생업을 포기해야 했고 국가의 막대한 전쟁 비용을 대느라 과도한 세금에 시달려야 했다.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제후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워야 했고 나머지 백성들은 온갖 부역에 몸살을 앓았다. 지금 우리 방송업계가 바로 춘추전국시대다.

케이블TV 방송의 역사

지상파 방송과 각 지역의 중계유선방송이 전부였던 우리나라는 1994년 1월 광역시도를 중심으로 53개 종합유선방송업자(SO)가 1차로 허가를 얻어 케이블 방송신호를 송출하면서 케이블방송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그리고 1997년 5월 중소도시에 24개 종합유선방송업자가 2차로 케이블 방송신호를 송출하기 시작했다.

다채널이 특징인 케이블방송은 방송 콘텐츠를 제작·공급하는 프로그램공급업자(PP), 프로그램을 채널별로 편성하고 방송신호로 송출하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다채널의 방송신호를 받아 각 가입자들에게 전달하는 전송망사업자(NO)의 협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1999년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가 프로그램공급업(PP)과 전송망사업(NO)을 겸영할 수 있도록 종합유선방송법이 개정되고 2000년 지역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들도 종합유선방송사업자로 전환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케이블TV 방송업계의 무자비한 약육강식이 시작되었다.

적과의 동침, SO와 RO의 협업

2001년 이후 지역의 중계유선방송업자(RO)들도 자의에 의해서건 타의에 의해서건 케이블TV 방송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1·2차 종합유선방송업자 허가를 통해 80여개에 달하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지역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의 종합유선방송업으로의 전환을 허용하면서 한 지역에 복수의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가입자를 둘러싼 치열한 전쟁이 예고되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기존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은 영세한 중계유선방송업자(RO)이 연합하여 신규 SO로 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들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거나 유선을 직접 설치하고 들어가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의 가입자를 전부 빼앗겠다고 위협하여 협업계약을 체결하였다. 즉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가 케이블TV 방송신호를 송출하면 지역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이 받아서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의 기존 가입자들에게 전송하도록 하는 전송망사업(NO)을 담당하게 한 것이다.

종합유선방송업자(SO)의 횡포

협업계약 체결 과정에서 가입자의 관리, 수신료 징수는 오로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만 할 수 있도록 약정하였는데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은 이를 악용하여 지역 중계유선방송업자(RO)을 몰락을 길로 내몰았다. 대부분의 협업계약서에는 종합유선방송업자(SO)들의 전산에 지역중계유선방송사업자(RO)의 가입자들을 등록하여 관리하고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가 가입자들로부터 수신료를 징수한 후 계약서에 기재된 수신료 배분율에 따라 수신료를 정산해 주도록 약정되어 있다. 그런데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는 지역중계유선방송사업자(RO)로부터 그들의 가입자 정보를 넘겨받았음은 물론 가입자들과 계약을 맺은 당사자는 지역중계유선방송사업자(RO)임에도 불구하고 종합유선방송업자(SO)의 전산에 등록한 후에는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의 가입자 정보 열람을 제한하였다.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들은 가입자 정보 열람이 제한되면서 가입자 수신료 배분의 정산, 방송 장애문제 해결, 전송망 관리·보수 등 자신들의 업무 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하기 위해서는 가입자 현황 등을 그때그때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가입자 열람이 제한되면서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은 자신들의 가입자 수, 가입자들의 약정만료 기간, 상세 주소 파악을 하지 못해 민원이 들어오면 매번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사원들에게 연락하여 회신을 기다린 후 업무를 처리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어 가입자들로부터 항의를 받기 일쑤였다.

뿐만 아니라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들이 가입자 정보, 정확한 가입자 수, 계약 유지 현황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점을 이용하여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가입자 수를 누락시켜 수신료를 적게 지급하는 것은 물론 수신료 정산 과정에서 부가세를 뺀 금액(가령 부가세를 포함하여 배분할 수신료가 11,000원이고 5:5로 정산하기로 한 경우 부가세를 포함하여 5,500원을 지급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가세 금액을 제외한 5,000원을 정산금액으로 지급)만 지급하는 등 수신료 배분을 제대로 해 주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가 동일한 방송 상품에 대하여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가입자에게는 할인을 해 주고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 가입자에게는 할인을 못하게 함으로써 가입자를 차별해 온 점이다. 방송법 제85조의2 제1항 4호는 부당하게 시청자를 차별하여 현저하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요금 또는 이용조건으로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니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가입자 차별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한편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수입원은 크게 유선방송 가입자들로부터 받는 방송 수신료와 홈쇼핑업체로부터 받는 방송 송출 수수료로 나눌 수 있다.

2014년 11월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발간한 2014년 방송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수익구조를 보면 전체 매출수익 중 가입자들의 수신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34.04%, 홈쇼핑 송출 수수료는 21.85%로 홈쇼핑 방송을 송출하는 대가로 홈쇼핑업체로부터 받는 수수료가 가입자들의 수신료에 맞먹는다.

▲ 주요 MSO 매출액 구성내역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홈쇼핑 송출 수수료는 가입자 수, 즉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점유율과 홈쇼핑업체가 종합유선방송의 어느 채널(지상파 방송과 가까운 채널의 방송 송출료가 높음)을 배정받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때 위 수수료 산정의 기준이 되는 가입자 수에는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들의 가입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홈쇼핑 송출 수수료 산정 기준이 되는 가입자 수에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들의 가입자 수가 포함되어 있고 홈쇼핑 광고가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들의 전송망을 타고 가입자에게 전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은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에게 홈쇼핑 송출 수수료를 아예 지급을 하지 않거나 미미한 금액만을 지급하여 과도한 이익을 챙겨 왔다. 방송법 제85조의2 제1항 제2호는 다른 방송사업자 등에게 적정한 수익배분을 거부·지연·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바, 이들의 행위는 법을 위반한 불법행위인 것이다.

현재 디지털방송과 VOD 방송으로 고품질 방송으로의 전환을 방해하고 있는 것도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직접 가입한 가입자들에게 디지털 방송과 VOD 방송을 이미 실시하고 있다.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도 자신들의 가입자들에게 디지털 방송과 VOD 방송을 제공할 수 있도록 디지털 방송신호 송출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송출을 거부하거나 수신료 배분을 거부하여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의 가입자들의 디지털 방송 시청을 방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해당 지역에서는 가입자들에게는 마치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들이 장비를 갖추지 않아 그런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물론 가입자들이 디지털 방송을 보기 위해서는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에서 이탈하여 자신들에게 가입해야 한다고 영업을 하여 가입자들을 빼앗아 가고 있는 실정이다.

CJ헬로비전과 티브로드의 SO 인수 전쟁

이와 같은 가입자의 이탈은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의 경영 상황을 악화시키고 결국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들은 헐값에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에게 사업체를 매각하게 된다. 그리고 티브로드, CJ헬로비전과 같은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들은 이러한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은 하나씩 집어삼키며 몸집을 불려왔다.

케이블TV 방송의 1,2위를 다투고 있는 티브로드와 CJ헬로비전이 지역의 종합유선방송사(SO)를 인수하고 합병하면서 몸집을 불려나가는 과정을 보면 마치 작은 물고기가 큰 물고기에게 먹히고 큰 물고기는 더 큰 물고기에게 먹히는 먹이사슬을 떠올리게 한다. 수신료 배분에서의 불이익, 홈쇼핑 송출 수수료 미지급, 디지털 방송신호 송출 거부 그리고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의 가입자에 대한 수신료 차별 등 이들은 종합유선방송사(SO)를 인수한 후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이 하던 갑질을 이어받아 협업 상대방인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에게 기존 SO와 똑같이, 혹은 더욱 진화한 ‘갑질’을 해대고 있다.

높은 산과 골짜기가 많은 강원도 지역은 지상파 방송신호가 거의 닿지 않은 난시청 지역이다. 인구도 별로 없는 두메산골의 안방까지 방송을 전달하기 위해 각 가정까지 케이블 선을 직접 연결하고 설치한 이들이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들이다. 수십년 전 온 동네 사람들이 TV 한 대에 옹기종기 모여 울고 웃던 시절처럼 이들에게 유선방송은 이웃들의 볼거리를 책임진다는, 돈벌이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제후들의 피비린내 나는 땅따먹기에 의해 백성들이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것처럼 티브로드, CJ헬로비전 등 케이블TV 방송 업계의 과열 경쟁에 지역 가입자들의 시청권과 이들의 시청권 보호를 위해 노력했던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들의 피땀 어린 노력은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최근 CJ헬로비전과 협업을 맺고 있는 강원 지역의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들이 그동안 짓밟혔던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자 용기를 내어 종합유선방송사업자들이 그동안 저질렀던 갑질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우리가 보고 있는 TV 한 장면을 위해 콘텐츠를 제작자, 방송신호 송출자, 방송신호 전송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늦은 밤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TV 한 장면에서 고달픈 우리의 삶을 위로 받는다. 돈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방송의 가치, 문화의 가치를 훼손하며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의 약육강식 전쟁이 멈추고 방송 질서를 교란시키고 있는 이들의 갑질이 이번 기회에 근절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방송은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하는 문화적 자산임을 이들이 항상 잊지 않기를 바란다.

성춘일 변호사는 제51회 사법시험을 합격, 41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현재 법률사무소 유림에서 일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사법위원회와 민생경제위원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아 청소년폭력예방재단과 서울변협이 함께 하는 청소녀지킴이 변호사단 상담위원으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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