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해킹 의혹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보수언론은 문제에 대한 해명이 상당히 이뤄졌다는 입장을 취하며, 관심을 돌리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보수언론이 아닌 다른 신문들은 여전히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정원의 설명에 대한 반론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한겨레는 29일 1면에 국정원이 “민간인 사찰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파장을 축소하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고, 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직원 임모씨가 모든 책임을 져왔기 때문에 전모를 알 수 없게 됐다고 국회에 보고한 것에 대해서도 “전형적인 꼬리자르기식 행태”라고 비판을 제기했다.

▲ 한겨레 29일자 1면 기사

한겨레는 “실제 임씨가 아르시에스(RCS) 도입 과정에서 주도적 구실을 한 것은 사실로 보이지만, 그가 숨지면서 아르시에스 도입과 운용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매우 낮다”면서 “한겨레가 해킹팀 유출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 아르시에스 도입·운영에 관여한 국정원 직원은 적어도 5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해킹팀을 꾸준히 접촉한 일명 ‘데빌엔젤’이 해킹팀에 문의한 이메일 등을 보면 ‘사용자 권한’을 5명에게 부여하고 있다고 표기돼있고 국정원과 해킹팀을 중개한 나나테크 허손구 대표도 “이 일에 관련된 국정원 직원은 5명 안팎으로 안다”고 설명한 바 있다는 것이다. 또, 한겨레는 해킹팀에서 유출된 다른 이메일에도 2010년 12월 7일 ‘고객 5명과 나나테크 및 해킹팀 직원’이 서울시내 호텔에서 만났다고 기록돼있고, 2011년 10월 28일에도 ‘나나테크의 고객 2명’이 해킹팀 본사를 방문한다고 기록돼있으며 2013년 2월 말 해킹팀의 RCS 교육 출장 기록에 “교육에는 부서장을 포함해 국정원(SKA) 직원 4명이 참가했다”는 대목이 나오고 있어 복수의 국정원 직원이 이에 관여한 정황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 한겨레 29일자 5면 기사

한겨레는 이어지는 5면 기사에서 국정원이 해킹팀에서 유출된 자료에 등장하는 IP주소 3개에 대해 “국정원 소유 스마트폰으로 실험용으로 썼던 아이피들”이라고 설명했지만 당시 해킹팀에 보냈던 이메일에서는 해킹 대상을 ‘실제 타깃(real target)’이라고 지칭했었다고 보도했다. 또, 한겨레는 해당 IP가 어떤 시간에 어떤 대상에 할당됐는지는 SK텔레콤의 서버 기록을 확인해야만 알 수 있는데도 그러한 절차가 이뤄지지 않았다곧 보도했다. 한겨레는 국정원장이 “실시간 카카오톡 도청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지만 RCS로 관리자 권한을 가로채면 해킹 대상의 모든 키로그와 스크린 캡처가 가능하므로 이 역시 사실이 아니라는 의혹이 불거질 수밖에 없으며, 국정원의 해명대로라면 자살해야 할 이유가 없는 임모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고, ‘자체 실험용’이라 밝힌 31건에 대해서도 내부 직원 감찰용일 수 있다는 의혹이 남는다고도 보도했다.

한겨레는 이날 <의혹 해소는커녕 더 키운 국정원이 어설픈 해명>이란 제목의 사설에서도 같은 내용의 의혹들을 언급하고 임모씨가 삭제한 해킹 자료에 대한 국정원의 설명에 “그 정도 파일 복구는 기술적으로 1~2분도 안 걸릴 일이라는데 국정원이 일주일만에야 복구했다고 하는 것부터가 이상하다. 무엇보다 임씨가 삭제했다는 파일이 국정원이 관리해온 해킹 타깃의 전부인지 알 수 없다”면서 “민간인을 겨냥한 다른 타깃이 훨씬 많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과 실제 그럴 가능성이 있는데도 국정원은 자료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고 썼다. 또, 한겨레는 “승진으로 부서가 달라졌다는 임씨가 몇 달 전의 근무 부서 컴퓨터에 있는 자료를 삭제하는 것이 보안에 철저하다는 국정원에서 가능한 일인지 의아하다”면서 “국회는 ‘사실상의 청문회’의 한계를 인정하고 국정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서둘러야 한다. 국회나 검찰수사로도 의혹을 해소할 수 없다면 특별검사 동원도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고 썼다.

경향신문 역시 한겨레가 지적한 것과 같은 의혹을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이날 <“불법사찰 없었다”는 국정원 말을 누가 믿겠는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불법행위로 의심받고 있는 기관이 자체 검증한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명한다고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국정원은 대선개입 댓글 사건 때도 ‘정치 관련 글은 없다’고 장담했으나 나중에 사실로 드러난 바 있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국정원이 국회 현안 보고에서 객관적 증거를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고 삭제 파일에 대해서도 목록만 제공됐을 뿐 이름이나 내용은 적시하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또, 경향신문은 애초 “단순 기술자였다”는 임모씨의 지위에 대해 국정원이 다른 설명을 하고 있는 것과 “해외 활동 북한 공작원이 대상”이라던 것과 달리 삭제된 해킹 파일 중 31개가 국내 실험용인 것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며 국정원이 성실히 조사에 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의혹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는 이들 신문과는 달리 보수언론은 소극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이날 동아일보는 국정원 해킹 의혹과 관련된 기사를 아예 지면에 배치하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6면 하단에 국회 현안 보고 소식을 짤막하게 다루고 사설에서는 정권에 불리한 사건을 야권이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전하면서 “메르스 사태나 국정원 해킹 의혹 사건에 대한 야당의 접근 방식도 야당의 지지세를 확산하는 데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조선일보 29일자 칼럼

조선일보도 위 신문들과 마찬가지 태도를 보이고 있다. 조선일보는 5면 우측에 국회 현안보고 소식을 작게 다루고 김창균 부국장 겸 사회부장 명의의 칼럼에서는 야당을 강하게 비난했다. <“국정원은 범죄집단” 자기최면에 걸린 野>라는 제목의 이 칼럼에서 김창균 부국장은 새정치민주연합이 권력기관의 불법적 사찰을 기정사실화 하면서도 검찰에 제출한 고발장에는 국정원 직원 및 사찰 대상자의 이름 등을 한 명도 제시하지 못했다면서 “일반 형사사건에서 이처럼 허술하게 남을 고발했다가는 무고죄로 되치기를 당할 것”이라는 법조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김창균 부국장은 국정원이 사찰을 시도한 재미과학자 안수명씨가 미국 국적인데다 대북용의점이 있는 인물이고 나나테크 허손구 대표가 언급한 “국정원의 주 타깃은 중국 내 내국인”이라는 발언 역시 중국에서 활동하는 조선족을 지칭한 것이며 국정원 해킹 대상에 SK텔레콤 국내IP가 포함된 것 역시 국정원 소유의 휴대전화였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김창균 부국장은 “민간인 사찰 의혹을 뒷받침할 근거들이 차례차례 허물어지자 야권은 다른 시빗거리를 찾고 있다”면서 외국인을 상대로 한 해킹에 불법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미국과 중국의 상호 불법해킹 문제 등을 언급하며 “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것이 전 세계 스파이들의 숙명”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결국 보수언론의 관점에서는 여러 남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이 민간인 사찰을 한 바 없고 다소 법을 어긴 사례가 있더라도 대북공작이라는 차원의 연장선상에서 불가피했다는 게 사실로서 인정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생산적인 언론의 역할은 의혹을 할 수 있는 만큼 충분히 제기해 정부가 이 사안에 대한 해명을 충실히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수언론을 제외한 언론의 보도를 보면 여전히 남는 의혹이 있고 이에 대한 해명이 필요한 상황인데 이런 것들에는 모두 침묵하면서 오로지 국정원과 정부 여당의 주장을 옹호하며 가끔씩 하나마나한 ‘해명 촉구’를 반복한 게 그간 보수언론이 보여 온 태도였다. 이런 태도로 일관하면서 야당의 행보와 다른 언론의 태도를 문제 삼는 것은 정당한 태도가 아니다. 보수언론이 자기의 역할을 다 하는 제대로 된 언론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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