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과 통신의 융합 환경에서 방송통신에 대한 기본 사항들을 통합하고 재구성하기 위해 마련한 ‘방송통신발전에 관한 기본법’(이하 방통기본법)을 의결했다. 이 법은 12월중 법제처 심사를 마치고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하지만 공청회에 이 법을 만든 팀원들이 패널로 참석하는 등 절차적 문제가 불거졌으며, 공공복리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결여되고 방통위의 권한만 확대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미디어행동은 방통위가 이 법을 의결한 날인 24일 대안법률로서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을 들고 나왔다.

▲ 24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는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창립20주년 기념 기획 ‘방송통신기본법에는 '기본'이 빠졌다’ 토론회가 열렸다 ⓒ방송기술인연합회보
△“방통기본법, 절차적으로 문제” = 지난 21일 방통위가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개최한 공청회에는 패널로 방통기본법 제정을 위한 ‘통합법제추진TF’에서 활동한 홍대식 서강대 교수, 노기영 한림대 교수, 최선규 명지대 교수와 조은기 성공회대 교수(사회자)가 참석했다. 방통위는 지난 6월경부터 TF팀을 운영하면서도 활동 내용에 대해 일절 밝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언론노조는 24일 발표한 ‘방통위는 방통발전기본법(안)을 폐기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TF팀 중 일부가 공청회 토론자와 사회자로 버젓이 참석하여 자신들이 만든 법을 설명하고 자화자찬 하는가하면 법 조항의 보완을 주문하는 등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을 연출했다”며 “(방통위는) 통합법제TF의 구성 배경과 지금까지 논의한 회의록을 공개하고 이들을 공청회 사회자와 토론자로 참여시켜 시민 대중을 기만한 것에 대해 공식사과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복리 구체적 내용 결여…방통위 권한 확대 몰두” = 또, 언론노조는 “방통기본법에는 방송의 개념을 규정하는 ‘공중(公衆)과’ ‘편성’이 빠졌다. 방송 개념이 빠짐으로 해서 국민에 대한 방송의 보편적 서비스는 사라졌다”며 “모든 법은 시민 대중의 권익이 먼저여야 하는데 방통위가 제정하고자 하는 방통기본법은 통신의 사업자 편익과 방송을 기능적으로 통신에 통합하고 통제하려는 방통위의 권한 강화법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24일 오후 1시부터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창립 20주년 기념 기획 ‘방송통신기본법에는 ‘기본’이 빠졌다’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은 “방통기본법에는 공공복리의 증진이나 산업 발전이란 추상적인 목표만 언급될 뿐 이를 실현할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내용이 결여돼 있다”며 “방통위의 권한과 관할영역을 넓히는 데 몰두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패널로 참석한 김경환 상지대 교수도 “이 법이 (방송·통신에 관한) 하나의 기본적 철학을 담는 그릇이라면 이렇게 거칠게 만들어선 안 된다. 유·무료방송의 문제, 공·민영방송의 문제, 수신료 문제 등을 다 덮어놓고 방송과 통신 부문 중 적당한 것만 짜깁기해서 던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을 제안한다” = 이날 토론회에서는 미디어행동이 7월부터 TF를 구성해 마련해온 대안법률(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이 첫선을 보였다.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이란 명칭은 ‘방송통신’이라는 병렬을 지양하고 전통적인 매스 커뮤니케이션과 개인 커뮤니케이션을 포괄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전자커뮤니케이션법은 ▲시민과 이용자의 권익보호 ▲사업자 간의 공정경쟁 ▲수평적 규제체계의 유연한 도입 등을 핵심 문제의식으로 한다.

방통기본법이 방송·통신의 개념을 “유선·무선·광선 및 기타의 전자적 방식에 의하여 방송·통신 콘텐츠를 송신하거나 수신하기 위한 일련의 활동과 수단”이라고 정의한 데 반해, 전자커뮤니케이션법은 방송·통신을 “유선 무선 광선 및 기타의 전자적 방식에 의하여 공중(개별계약에 의한 수신자 포함)에게 신호를 송신하거나, 송신자(개인과 집단을 포함)와 수신자(개인과 집단을 포함)가 신호를 송신하거나 수신하기 위한 일련의 활동”(전자커뮤니케이션)으로 정의했다.

조준상 부소장은 “방통기본법의 방송·통신 개념은 통신 개념의 단순한 확장에 불과하다”며 “현행 전파법과 방송법에 따르면, 방송 개념의 핵심은 ‘공중(公衆)을 중심으로 한 송신’이므로 이러한 방송의 고유성을 살리기 위해 ‘공중’이라는 존재가 명시되는 방향으로 개념이 재정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공공복리의 증진’이란 별도의 장을 신설해 ‘시민’(대한민국 영토 내 모든 공공의 구성원)을 정의하고, ‘이용자’(전자커뮤니케이션 사업자가 아닌 자로서, 전자커뮤니케이션 망을 통하여 신호를 송신하거나 수신하는 사람, 전자커뮤니케이션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 전자커뮤니케이션을 활용하는 시민의 능력을 높이는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해당 단체를 포함한다)를 정의했다.

조 부소장은 “대통령 직속의 합의제 행정기구라는 위상을 갖고 있는 방통위의 정치적 독립성과 위원장에 의한 독단적 운영에 대한 우려가 점점 더 짙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제2장은 방통위를 옛 방송위원회처럼 독립 합의제 행정기구로 자리매김하는 내용으로 채웠다. 옛 방송위와 달리,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위원장에 대해 국회가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이라며 “한나라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국가기간방송법과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의 관계와 관련해선, 국가기간방송법 제정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의 후속작업으로 ‘보편적 방송서비스사업법’을 마련하는 작업을 벌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민 권익을 중심으로…앞으로 논의해 나가자” = 이날 토론회 인사말에서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는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국민들과 시청자의 이익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고 방통기본법을 처리하려 한다”며 “모든 방송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법안이기 때문에 이번 토론회를 기점으로 언론노조를 포함한 모든 시민사회가 힘을 모으자”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김명준 미디액트 소장도 “융합이라는 거대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이자 사회문화적 격변에 대한 법제를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법을 만들고 공청회를 하다니 정말 다이내믹 코리아”라며 “지금 상황이 긴급하긴 하지만 긴 호흡을 가지고 제대로 된 법제를 만드는 기회로 삼자”고 강조했다.

전자커뮤니케이션법을 만드는 데 참여한 김지현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미디어융합특위위원은 “(방통기본법에) 공공복리의 구체적 내용이 아예 없거나 부분적으로만 다뤄지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간 방통융합 논의 주체는 사업자, 국회의원, 정부 관료들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마련한 전자커뮤니케이션법에는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구조에서 시민들의 권리에 대한 부분이 명기돼 있다”며 “이 법안은 완성적 내용이라기보다 앞으로 좀더 보완돼야 할 내용들이고 여러분들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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