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는 미디어일까? 아닐까? 어떤 블로거는 저널리스트‘도’ 될 수 있는 것일까? 아닐까? 흥미로운 질문들이다. 그리고 아직 명확한 답이 내려지지 않은, 논쟁중인 질문이기도 하다. 대개의 흥미롭고 논쟁적인 질문들이 그러하듯, 아직 답은 도착하지 않았지만, 이미 현실은 훌쩍 앞서가고 있는 중인 질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현재, 블로그는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오늘 블로그의 위치를 더듬어 보는데 유용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모든 것은 기록될 필요가 있다>는 문패를 사용하고 있는 스타 블로거 한윤형씨의 블로그(yhhan.tistory.com)에 포스팅된 ‘기륭전자와의 서신 교환 내용’이란 제목의 글은 오늘 블로그가 당도한 사회적 위상과 편견을 동시에 보여준다.

▲ 경향닷컴에 게재된 한윤형의 '뻔뻔스러운 기륭전자 기자회견' 글 화면 캡처.
그 포스팅의 내용은 이러하다. 지난 10월29일 <경향닷컴>은 한윤형의 글(“뻔뻔스러운 기륭전자 기자회견”)을 오피니언면에 게재했다.

그 글은 1200여일을 향해 치닫고 있던 기륭전자 파업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는 글이었다. 당시 <조선일보> 등은 기륭전자 파업을 두고 노조원들의 파업으로 인해 기업이 망가지고, 수출이 줄고 결국 고용인력까지 줄고 있다며, 노조원들이 합의가 다 된 사안에 대해 무리한 돈을 요구해 협상이 결렬됐다고 보도했었다.

이에 한윤형은 기륭전자 사태의 본질은 ‘딸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도 해고당할까 봐 잔업까지 하고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는 직장, 몸이 아파 졸도해 앰뷸런스에 실려 갔다는 이유로 해고당해야 하는 직장이 정당한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해야 하는 비상식적인 고용형태의 문제라고 주장하며, 기륭전자가 협상안을 파기한 딱 하나의 이유는 (회사가) ‘정규직화’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논박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문제를 정치적으로 가져가려는 노동운동 전문가들이 중소기업 하나를 탄압하고 있다’는 관점의 보도를 하다가, ‘기륭전자가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한 것은 노조 파업과 무관하며, 적자의 주된 이유는 노조파업이 아니라 다른 경영상 이유인 것으로 밝혀졌다’는 정정보도문을 게재한 바 있었다. 한 마디로 반노조적 편향의 태도였다.

그리고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른 지난 11월18일 기륭전자는 한윤형에게 ‘경향신문 기고문 정정보도 요청의 건’이란 이름의 이메일 서신을 보냈다. ‘사실과 조금 다른 점이 있어 정정 및 삭제를 요청’한다는 평이한 문장이었지만, 사실상 내용을 살펴보면 법적 조처를 취할 예정이니 얼른 삭제하라는 윽박지름의 다름 아니었다.

기륭전자 서신의 핵심적 내용과 요구는 한윤형이 든 사례(딸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도 해고당할까 봐 잔업까지 하고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는 직장, 몸이 아파 졸도해 앰뷸런스에 실려 갔다)에 대한 삭제 요구와 김소연(기륭노조 분회장)씨를 비롯한 시위대는 정당하게 계약이 만료된 자들이므로 ‘노조’라는 표현을 삭제해 달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선 친절하게 예시 표현까지 적시해줬다. ex)노조=>금속노조 산하 시위대

서신의 회신 기한을 11월21일 오전 10시까지로 못박았는데, 그 때까지 회신이 없을 경우에는 별도의 안내 없이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 등을 적용, 언론중재위원회 중재 요청과 민형사상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임을 밝혔다. 요새 네티즌들이 자주 쓰는 말로 ‘후덜덜’한 무시무시한 협박이다.

약이 바싹 올라 보이는 기륭전자 사측의 두서없음과 달리 자칭 타칭 ‘키보드워리어’로 불리는 한윤형의 대응은 의연하고 또 침착했다. 11월20일 이메일로 발송되었다는 한윤형의 답신은 ‘귀사와 전화통화를 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다만, ‘귀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교통사고, 앰뷸런스 등에 대한 근거 요구와 관련해서는 자신이 직접 들었으며, 이미 <PD수첩>에도 나왔다는 충고를 했고, 덧붙여 <PD수첩> 인터뷰 당시 시위에 참여한 일부 해고 노동자들의 이름 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던 기륭전자의 임원들이 이들의 해고사유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납득할 만한 논리를 펼쳤다. 아울러 ‘노조’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는 요구와 관련해서는 ‘노조’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기사들을 찾기 어려울 지경인데, 그 모두에게 정정보도 요청을 하고 있느냐고 반문했다. 한 마디로 <PD수첩>을 보고, 조선일보에 정정보도 요청을 해야 할 뿐이므로, 안타깝지만 기륭전자의 요청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윤형의 말처럼 기륭전자가 관련 보도를 한 모든 언론에 정정보도 요청을 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번 사건을 통해 개인 블로거가 조선일보, 기륭전자 사측과 같은 거대 집단과 팽팽한 접전을 펼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물론 ‘촌 놈 겁주는 듯 협박’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 듯 보이는 기륭전자 사측의 대응을 보면, 기존의 권력들은 아직 블로거들을 인정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블로그는 ‘미디어’인가, 아닌가. 블로거는 저널리스트인가, 아닌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는 노벨상 수상자(폴 크루크먼)도 자신의 블로그에 수상 소감을 올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이다. 한윤형의 상식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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