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은 오스트리아의 황후다. 뭇 여인들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왕비의 삶을 살았으니 동경할지 모르겠지만, 이면을 보면 그 어느 누구보다도 굴곡진 삶을 살아온 비극의 황후이기도 하다. 엘리자벳이 결혼한 계기만 보면 ‘오스트리아 버전 신데델라’ 그 자체다. 엘리자벳의 어머니가 요제프 황제에게 시집보내려고 한 이는 원래 엘리자벳이 아니다. 엘리자벳의 언니를 황제에게 시집보내려고 애썼지만 황제가 반한 건 엘리자벳의 언니가 아니라 자유분방한 엘리자벳이었으니, 신데렐라의 언니들이 무도회에서 왕자에게 호감을 보이려고 온갖 애를 썼지만 왕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가 신데렐라가 된 것과 같다.

▲ 뮤지컬 ‘엘리자벳’ 옥주현 ⓒEMK뮤지컬컴퍼니
하지만 엘리자벳의 행복은 요제프와의 결혼식 이후로는 계속되지 않았다. 시어머니 소피가 새벽 5시부터 엘리자벳을 깨우고 왕실에 대한 교육을 해대니, 말만 멋드러진 황후지 실상은 시월드에 입성한 여느 며느리와 다를 바 아니었다. 서어미니 소피가 며느리 엘리자벳에게 가하는 시월드의 혹독함은 잔소리가 아니었다. 며느리를 비롯하여 아들 요제프, 왕실의 모든 것을 소피가 다스리고 지배하기를 바라는 독점욕 때문에 엘리자벳이 힘겨워하기에 이른다.

부부싸움은 여러 가지 원인 때문에 일어나지만, 시월드와 관련된 부부싸움이라면 아내인 며느리와 어머니인 시어머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부아가 나서 일어나는 경우가 십중팔구다. 겉으로는 어머니에게 예 예 하면서 안으로는 어머니 몰래 아내를 다독여주어야 시월드 때문에 힘든 아내에게 위로가 되지만,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갈팡질팡 했다가는 어머니와 아내 둘 다에게 이도저도 아닌 ‘박쥐’ 취급을 받기 쉬운 게 시월드에 끼인 남편의 처지다.

▲ 뮤지컬 ‘엘리자벳’ 최동욱 ⓒEMK뮤지컬컴퍼니
엘리자벳의 남편 요제프 역시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남편에 다름 아니다. 아니, 되레 노골적으로 어머니 소피 편을 든다. 아내에게 어머니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아내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어머니 편을 든다. 궁정에서 자기편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된 엘리자벳이 문을 걸어 잠그고 남편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감옥 같은 궁정이 싫어서 궁정 밖으로만 다닌 것 모두 시어머니에 대한 반발과 엘리자벳 자신의 편을 들지 않는 남편 요제프에 대한 미움이 뒤섞인 행동 아닌가. 만일 남편 요제프가 어머니 말에 순종하는 마마보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과연 엘리자벳이 요제프와 결혼했을까?

마마보이 요제프의 어머니에 대한 순종, 며느리를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합스부르크 왕실 모자의 행태는 엘리자벳 한 명에게만 피해를 준 게 아니다. 엘리자벳의 아들 루돌프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정을 그리워하지만, 할머니 소피는 손자가 나약하게 자라는 걸 바라지 않기에 어머니 엘리자벳과 손자가 함께 있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아버지 요제프가 아들과 아내 엘리자벳을 위해서라면 어머니 소피의 이런 행동에 브레이크를 걸었어야 했지만, 불행하게도 요제프는 아들과 아내를 위한 그 어떤 제스처도 취하지 않는다.

▲ 뮤지컬 ‘엘리자벳’ 전동석 ⓒEMK뮤지컬컴퍼니
어머니 엘리자벳에게 아들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루돌프는 손을 내밀어 보지만, 아들에게조차 차갑게 마음을 닫아버린 엘리자벳이기에 따뜻하게 보듬어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루돌프는 어떤 처신을 했어야 할까? 그건 <엘리자벳>과 쌍생아처럼 얽혀있는 <황태자 루돌프>에서 루돌프가 택한 길을 살펴보면 된다.

<엘리자벳>은 겉으로 보기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황실에서 호강하는 황후 이야기로 보이지만, 실은 모든 걸 통제하는 시월드에서 해방되고 싶어 하는 며느리의 투쟁기로 보는 게 정답이다. 또한 루돌프의 죽음 뒤에는, 가족에게조차 마음을 두지 못한 아들의 비극도 깔려 있다. <엘리자벳>은 시어머니 소피의 지배욕이 며느리 엘리자벳을 넘어서서 손자 루돌프에게 어떻게 전파되어 가는가를 보여주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잔혹사이기도 하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