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은 오스트리아의 황후다. 뭇 여인들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왕비의 삶을 살았으니 동경할지 모르겠지만, 이면을 보면 그 어느 누구보다도 굴곡진 삶을 살아온 비극의 황후이기도 하다. 엘리자벳이 결혼한 계기만 보면 ‘오스트리아 버전 신데델라’ 그 자체다. 엘리자벳의 어머니가 요제프 황제에게 시집보내려고 한 이는 원래 엘리자벳이 아니다. 엘리자벳의 언니를 황제에게 시집보내려고 애썼지만 황제가 반한 건 엘리자벳의 언니가 아니라 자유분방한 엘리자벳이었으니, 신데렐라의 언니들이 무도회에서 왕자에게 호감을 보이려고 온갖 애를 썼지만 왕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가 신데렐라가 된 것과 같다.
부부싸움은 여러 가지 원인 때문에 일어나지만, 시월드와 관련된 부부싸움이라면 아내인 며느리와 어머니인 시어머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부아가 나서 일어나는 경우가 십중팔구다. 겉으로는 어머니에게 예 예 하면서 안으로는 어머니 몰래 아내를 다독여주어야 시월드 때문에 힘든 아내에게 위로가 되지만,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갈팡질팡 했다가는 어머니와 아내 둘 다에게 이도저도 아닌 ‘박쥐’ 취급을 받기 쉬운 게 시월드에 끼인 남편의 처지다.
마마보이 요제프의 어머니에 대한 순종, 며느리를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합스부르크 왕실 모자의 행태는 엘리자벳 한 명에게만 피해를 준 게 아니다. 엘리자벳의 아들 루돌프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정을 그리워하지만, 할머니 소피는 손자가 나약하게 자라는 걸 바라지 않기에 어머니 엘리자벳과 손자가 함께 있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아버지 요제프가 아들과 아내 엘리자벳을 위해서라면 어머니 소피의 이런 행동에 브레이크를 걸었어야 했지만, 불행하게도 요제프는 아들과 아내를 위한 그 어떤 제스처도 취하지 않는다.
<엘리자벳>은 겉으로 보기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황실에서 호강하는 황후 이야기로 보이지만, 실은 모든 걸 통제하는 시월드에서 해방되고 싶어 하는 며느리의 투쟁기로 보는 게 정답이다. 또한 루돌프의 죽음 뒤에는, 가족에게조차 마음을 두지 못한 아들의 비극도 깔려 있다. <엘리자벳>은 시어머니 소피의 지배욕이 며느리 엘리자벳을 넘어서서 손자 루돌프에게 어떻게 전파되어 가는가를 보여주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잔혹사이기도 하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